“만만한 박유천, 이건희·이정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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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의원·언론인권센터 ‘유명인 범죄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검색 서비스 ‘빅카인즈’에서 ‘이정현 녹취록’과 ‘이건희 동영상’, ‘박유천 성폭행’을 검색하면 각각 727건, 48건, 145건의 기사가 뜬다. ‘박유천 성폭행’이 ‘이건희 동영상’보다 15배, ‘이정현 녹취록’보다 5배 많이 보도된 것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선 ‘박유천 성폭행’(3034건)에 대한 기사가 ‘이건희 동영상’(333건)보다 10배, ‘이정현 녹취록’(635건) 5배 더 많이 검색된다.

언론은 왜 연예인 등 유명인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은 사안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보도하는 반면, 정치인과 재벌 등 권력자들에 대한 대한 보도는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걸까.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언론인권센터는 공동으로 지난 30일 ‘유명인 범죄보도,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이 같은 언론 현실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짚고 대안을 모색했다.  

유명인은 공인일까

토론회 참석자들은 유명인 범죄보도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짚기 위해 유명인 범죄보도에 과연 공익성이 있는지를 먼저 살폈다. 한명옥 변호사(법무법인 우원)는 “유명인 범죄 보도는 국민의 알 권리 충족 목적이라고 하기에는 공익적 성격이 없는 단순 호기심 충족 용도”라며 “그렇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포장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도 “한국 언론들이 일반 대중의 호기심 충족을 ‘국민의 알 권리’로 포장하며 사실상 ‘국민의 알 권리’를 ‘기자의 알(알릴) 권리’로 대체하고 있다“며 “결국 국민의 알 권리를 명분으로 기자의 권한을 확대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 30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에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의 공동주최로 '유명인 범죄보도,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PD저널

반면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쇼닥터’로 유명세를 떨쳤던 강모 의사에게 수술을 받고 숨진 고(故) 신해철 씨 사망사건을 예로 들며 유명인 범죄 보도에 공익성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윤정주 소장은 “2014년 위밴드 수술을 받던 중 의료사고로 사망한 고 신해철 씨의 집도의는 여러 번 같은 의료사고를 낸 일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 의사가 방송 출연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귄위 있는’ 사람이었기에 해당 사안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쇼닥터 등의 문제가) 이슈화 될 수 있었다”며 “만약 그렇지 않았지만 신해철 씨와 유사한 피해자들이 계속 발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명인은 과연 공인일까. 김예란 광운대 교수(미디어영상학부) 공인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하면서도 “대략 ‘공적 인물’이나 ‘공개적 인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선 유명인을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처럼 잘 알려진 공개된 인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유명인은 공인이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윤태진 교수는 공인으로 분류하기 위해선 △대통령·장관 등처럼 존재 자체가 국민의 공적 이익과 직결돼 있는지 △언론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 자신과 관련한 보도를 통제할 만한 자원이 있는지 여부 등을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보도를 통제할 만한 자원이 있다는 건 결국 권력이 있다는 의미로, 권력의 보유 유무가 공인과 유명인을 가르는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한명옥 변호사는 미국 헌법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면적 공적 인물’의 개념을 인용했다. 한 변호사는 △공동체 내에서 명성이 있는 인물 △전국적으로 알려진 인물 △소속 사회 내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 △광범위한 영향력으로 언론매체에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인물 등이 ‘전면적 공적 인물’에 해당한다고 설명하며 “이 개념에 의하면 국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재벌 총수 역시 공인의 개념에 포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범죄 파급력 큰 권력자보다 만만한 연예인 물어뜯기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언론이 유명인 범죄를 권력자들의 범죄보다 더 많이, 중요하게 보도하는 이유로 이른바 ‘먹고사니즘’을 꼽았다. 또 유명인들이 권력자보다 “만만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윤정주 소장은 “(정치인과 재벌) 등 권력자의 범죄는 유명인 범죄보다 죄질도 나쁘고 (대중에 미치는 영향과) 규모가 훨씬 크지만 은폐 혹은 왜곡되기 일쑤”라며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이 물어뜯기에 더 만만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윤정주 소장은 또 “경쟁이 심화되며 언론들이 수익을 좇는 데 급급하다 보니 공익 보도를 해야 한다는 정도 또한 내팽개친 지 오래”라며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미국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로 언론사의 책임 방기 행위에 대해 엄청난 액수의 배상금을 물도록 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제도의 도입도 검토해 볼만 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표창원 의원 또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라면 언론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대로 무제한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언론 자유의 남용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쳤다면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같은 책임 추궁과 피해구제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태진 교수도 “박유천 관련 기사가 이정현 대표, 이건희 회장 관련 기사보다 터무니없이 많이 생성된 건 언론사들이 ‘클릭수 장사’에 혈안이 돼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보도들이 언론사의 수익문제와 연결돼 있는 상황에서 ‘기자들이 저널리즘 윤리를 준수해야 한다’하는 식의 결론은 너무나 이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결국 가장 최선은 선정적인 보도를 하는 기자들이 자연스레 주변화되는 문화가 조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직 기자로서 토론에 나선 문소영 <서울신문> 기자(사회 2부장) 역시 “언론들이 수익성을 좇다 보니 유명인 사생활과 관련된 범죄를 기업인, 공직자의 권력형 비리보다 더 많이, 더 크게 보도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는 언론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인 만큼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 주장하며 도피하는 권력자들의 이중압박, 언론인들 ‘칠링이펙트’ 느낀다

문 기자는 그러나 권력의 언론에 대한 ‘칠링이펙트(Chilling Effect·겁주기 효과)’의 문제도 함께 짚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명인과 권력자 모두 언론 보도를 놓고 중재부터 소송까지 제기할 수 있지만, 권력자 집단에서 이를 더 많이 활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는 설명이다.

실례로 최근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도 자신의 처가 부동산 의혹을 보도한 <조선일보> 등 언론에 대해 곧바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고, 일본 <산케이신문> 등의 사례처럼 세월호 참사 직후 박근혜 대통령 관련 보도에 대해 청와대가 소송을 제기한 건도 여럿이다. 또 삼성을 비판하는 언론과 광고의 상관 관계 등에 대한 얘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논란이 된 사안이다.

문 기자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함에도, 이런 권력 행사들이 언론에 위축효과를 주고 언론인들이 자체 검열을 하도록 만드는 등의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표창원 의원은 “언론인들이 (권력자들의 압박에) 칠링이펙트를 느낀다고 말했는데 이는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범죄 행위를 한 권력자들이 인권을 내세워 스스로를 (언론 등의) 심판으로부터 도피하게 하는 상황들에 대해 (국회의원으로서) 책임있는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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