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날, 박근혜 대통령이 직시해야 할 세 개의 현실
상태바
방송의 날, 박근혜 대통령이 직시해야 할 세 개의 현실
[위클리포커스] ①‘이정현 녹취록’부터 ‘후퇴한 언론자유’까지…잃어버린 ‘공정방송’
  • 김세옥 기자
  • 승인 2016.08.31 1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53회 방송의 날(9월 3일)을 이틀 앞둔 1일 저녁 방송의 날 축하연이 열린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영상을 통해 축하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첫 행사 참석이었던 2013년 축사에서 “공정성과 중립성, 사회적 책임” 등을 방송의 핵심 가치로 꼽으며 “국민의 높은 기대를 충족하기 위한 방송인의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로 전 이명박 정부에서 발생한 정권의 방송 장악 현실의 개선 의지를 전제하지 않은, 공정성 등의 실현 대책은 빠진, 듣기만 좋은 원칙의 말에 언론인들은 대선 후보 시절 박 대통령이 약속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해직언론인 문제 해결 등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후 방송의 날 축하연에서의 박 대통령 축사에선 산업으로서의 방송의 가치에 대한 얘기들만 무성했고, 언론으로서의 방송의 역할은 수사로도 머물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해직언론인 문제 해결이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 박 대통령이 했던 약속들도 실현되긴커녕 등장조차 못했다. 이런 가운데 열리는 제53회 방송의 날에서 박 대통령은 어떤 얘기들을 할까.

아마도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전망이 많지만, 그럼에도 <PD저널>은 박 대통령이 직시해야 하고, 이제는 말해야 하는 방송가의 최소한의 현실을 짚는다. 너무도 오랫동안 풀리지 않아, 이제는 당연한 듯 인식되는 지금의 현실이 결코 당연한 건 아니니 말이다.

▲ 2014년 9월 2일 제51회 방송의 날 기념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축사를 하고 있다. ⓒ한국방송협회

현실 하나. 이정현 녹취록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지난 6월 30일 김주언 전 KBS 이사와 언론노조 등을 통해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현 새누리당 대표와의 전화 통화 내용을 담은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 속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은 욕설까지 섞어가며 김 전 국장에게 해경 비판 보도 자제와 보도 속 일부 단어의 삭제까지 요구했다. 앞서 김 전 국장이 회사(KBS)와의 소송 과정에서 재판부에 제출하며 내용이 알려진 비망록(국장업무 일일기록)으로 정권이 길환영 당시 KBS 사장 등을 통해 유사한 보도 통제를 무시로 한 정황이 알려져 있긴 했지만, 녹음된 육성이 주는 충격은 컸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정권의 보도통제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를 곧바로 주장하고 나섰다.

논란이 커지자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 출마를 앞두고 있던 이정현 의원은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을 설명하며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봤을 때 국민들과 언론인 여러분들께 죄송하다”며 잘못을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정부‧여당 관계자들이 앞 다퉈 “홍보수석 본연의 업무”라고 주장하자 태도를 바꿨다. 그리고 그는 지난 8월 9일 전당대회에서 새누리당 대표로 선출됐고, 정부‧여당은 물론 다수의 언론에서조차 더 이상 그가 얽힌 보도통제 논란은 사라지다시피 했다. 당장 이 대표 당선 당일 지상파 방송 3사의 메인뉴스에선 ‘녹취록’이란 단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당사자인 KBS는 인터뷰까지 했지만 어떤 관련 질문도 않았다.

이정현 녹취록에 침묵하는 방송‧언론들은 특정 보도를 빼라는 청와대 홍보수석의 말을 통상의 업무요청이라고 정말로 믿고 있는 걸까. 하지만 한국기자협회가 지난 8월 5~10일 현직 기자 3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선 응답자의 76%가 ‘이정현 녹취록’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청와대의 언론통제”라고 답했다. 당사자인 기자들이 통제로 인식하고 있는 말을 통상업무를 수행하는 위한 언어라고 주장하는 청와대와 여당의 언론관은, 그 언론관에 질문하지 않는 현재의 방송‧언론의 모습은 과연 통상적으로 말하는 저널리즘의 올바른 모습에 부합하는 걸까.

▲ 언론노조 등이 지난 6월 3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4월 21일과 30일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대표)과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의 통화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언론노조

현실 둘. 보도지침과 공영방송 지배구조

지금 방송가는 때 아닌 보도지침 논란으로 시끄럽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관객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데도 평론가들이 낮은 평점을 준 사실을 비판적으로 보도하라는 취재 지시를 거부한 KBS 기자들은 감봉 2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또 현장의 취재 결과와 다른,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경북 성주군민들의 시위에서 외부 인사 참가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하라는 ‘윗선’의 거듭된 지시에 저항하며 이 사실을 폭로한 KBS 전국기자협회 소속 기자들은 특별 감사 대상에 올랐다. 또한 사드와 관련해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 한국의 경제적 이익 등을 언급하며 신중론을 말하는 KBS 해설위원의 논평에 대해 고대영 사장이 임원회의에서 불만을 표시했다고 알려진 직후 해당 해설위원은 보도본부 밖 방송문화연구소로 발령받았다.

이런 풍경은 KBS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언론노조 YTN지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에 따르면 조준희 사장은 자사 프로그램 <국민신문고> 8월 11일 방송에서 국민행복기금의 문제점을 보도한 데 대해 ‘국민행복기금 이사장과 친분이 있는데 방송을 보고 매우 불쾌했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고 밝히며 ‘한 쪽 얘기만 듣는 이런 논란의 여지가 있는 아이템은 하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조준희 사장은 또 일본군 위안부 아이템과 관련해 ‘한중 관계가 안 좋은데 한일 관계까지 악화되면 안 된다’는 발언을 했다고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해당 방송사들은 저마다 정당성을 주장하며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리포트 지시를 거부한 기자들의 경우 취업규칙 제4조(성실)를 위반했고, KBS 전국기자협회 소속 기자들은 허위사실로 회사의 명예를 실추했으며, 방송사의 사장은 대표자로서 공정한 방송을 독려하고 챙길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하지만 현행 방송법은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제4조 2항)고 명시하고 있으며, 일련의 현실에 놓인 언론인들 또한 연명 성명 등을 통해 방송법 위반을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선 방송법의 해당 조항 속 “누구든지”에 방송사 경영진 등 내부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보도지침과 편성 개입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구성부터 공영방송 이사 선임, 그리고 공영방송 사장 선임까지 모두 청와대와 여당의 ‘입김’을 배제할 수 없는 현재의 지배구조를 감안할 때 사장을 비롯한 방송사 경영진을 단순한 ‘내부’의 일원으로 보기란 쉽지 않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오죽하면 2012년 대선 당시 사실상 언론 관련 공약을 거의 제시하지 않았음에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만은 말했을까.

▲ 언론노조 KBS본부가 부당전보와 사드 보도지침 규탄 결의대회를 지난 7월 21일 정오 서울 여의도 신관 광장에서 진행하고 있다. ⓒ언론노조

현실 셋. 해직언론인과 최저점을 기록한 언론자유지수

지금 한국엔 정권의 방송통제에 저항하다 해고된 언론인이 여전히 아홉 명이나 있다. 그중엔 벌써 2888일(9월 1일 기준)째 해직 상태인 언론인도 무려 셋이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속한 정당에서 앞서 배출했던 이명박 대통령 시절 정권에서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과 낙하산 사장으로 인한 방송통제에 반대하다 해고된 이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문제인양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해직언론인 문제를 언급조차 않고 있다. 언론사 내부의 노사 문제로 이 상황을 규정하는 정부‧여당의 인사들은 해직언론인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책임은 부정한 채 “언론 자유”를 위해서라도 이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주장이 곧 사실은 아니다. 우선, 사법부는 공정방송을 주장한 언론인들의 해직 문제를 단순한 노사의 문제로 보지 않고 있다. 실례로 애면글면 법정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MBC의 해직언론인들은 1심 재판부에서의 승소 판결에 이어 2015년 4월 2심 재판부에서도 “해고는 무효”, “공정방송은 근로조건”이란 판단을 받아냈다. 다만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현재까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 또한 이 사안을 단순한 노사의 문제로 보지 않은 정황이 존재한다. 2012년 대선 당시 유력 후보였던 박근혜 의원을 대신해 이상돈 교수(현 국민의당 국회의원)가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당시 공정방송 회복을 주장하며 파업을 벌이던 MBC노조(언론노조 MBC본부) 측에 ‘파업을 풀면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당시 MBC에선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직 등 징계를 받은 언론인들이 속출하고 있던 때였다. 이상돈 의원은 자신이 메신저로서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약속을 전달했음을 지난 2015년 8월 <시사IN>(411호)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해직 언론인 등의 문제가 단순히 언론사 내부의 노사 갈등이 아닌, 정권에서 비롯한, 그리하여 정치로 풀어야 할 사안임을 박 대통령은 이미 2012년에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해직언론인들은 여전히 해직언론인이며, 이들이 해직을 감수하며 주장했던 공정방송‧공정언론 회복은 여전히 현실화 하지 못하고 있고, 국경없는 기자회가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노무현 정부 당시 31위를 기록했던 한국은 올해 역대 최하위인 70위까지 떨어졌다. 또 다른 국제기구인 프리덤하우스에서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66위다. 박 대통령이 이미 알고 있고, 해결과 개선을 약속했던 문제들을 직시하고 약속을 이행한다면, 언론자유의 척도로 기능하는 이들 지표는 어떤 모습일까.

▲ 서울고등법원 제2민사부(부장판사 김대웅)가 2015년 4월 29일 오후 2시 서관 제305호 법정에서 열린 정영하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 외 43명이 MBC를 상대로 낸 징계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판결한 가운데, MBC 해직언론인 (사진 왼쪽부터) 최승호 PD, 정영하 전 노조위원장, 박성제 기자, 박성호 전 기자회장, 이용마 전 노조 홍보국장, 강지웅 전 노조 사무처장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PD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