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비평 SBS [드라마 스페셜 - 옛사랑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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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비평 SBS [드라마 스페셜 - 옛사랑의 그림자]
서스펜스와 심리극의 잘못된 만남
  • 승인 1998.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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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sbs에서 새로 시작한 [드라마 스페셜]은 사전 제작된 8부작 미니시리즈들로 이어지리라고 한다. 기존의 16부작 미니시리즈들이 복잡한 인간 관계와 에피소드들이 얽혀 실상 이름에 걸맞지 않은 ‘맥시’시리즈인 것과 다르게, [드라마 스페셜]에서는 주제와 형식의 짜임새를 중시하고자 하는 의욕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 미스테리멜로의 성격도 가미된다고 한다. 복잡다단하고 맺고 끊는 것 없는 현실을 잊고 화끈하게 허구의 세계를 즐겨 보라고 하는 뜻인 듯도 싶다.그 첫 타자가 김한영 연출의 [옛사랑의 그림자]이다. 마지막 두 회분을 남겨 놓은 상태에서 판단하건대 이야기 구성상의 초점이 확실하게 맞춰져 있다. 부잣집 여자와 결혼한 옛사랑의 남자 주변을 버림받은 여자가 그림자처럼 맴도는 가운데 벌어지는 긴장된 상황과 심리적 갈등이 내용의 핵심이자 전부이다.이런 줄거리라면 식상할 만큼 많이 보아 왔다. ‘구파’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고색 창연한 신파 혹은 순애보의 주요 소재가 바로 버림받은 여자 아니던가. 그러므로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드라마로서의 새로운 성취의 관건이 될 것이다.이 드라마의 새로움이라면 버림받은 여자의 대응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순애보의 주인공 같으면 그 남자를 단념한 채 마음으로만 사무치게 그리워했을 텐데, 방은희가 연기한 선주(미영)는 이 상황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선주는 옛사랑인 현우(김주승)의 삶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간다.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선주와 현우 그리고 그의 처 명희(옥소리) 세 사람의 심리 변화와 갈등이 이 드라마에서 공을 들이는 주요 부분이다. 말하자면 멜로 드라마가 끝난 지점에서 이 드라마는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어떤 모습으로 시작되고 있는가? 길은 두 갈래이다. 헐리우드 미스터리멜로 영화 식으로 가는 길이 하나 있다. 이 경우는 ‘정보를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핵심적이다. 관객은 공격하는 자의 계획을 알고 있지만, 공격받는 자는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몰라야 한다. 그래야 관객들이 서스펜스와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헐 리우드는 다시 두 가지 방식으로 결말을 준비한다. 하나는 적대적 관계에 놓인 양자 사이의 ‘무대포 정신’에 입각한 난투극이고, 다른 하나는 우연한 계기로 위험을 감지한 공격받는 자의 역공이다. 상황은 역전되고 이제 모르는 자는 애초 공격하는 자의 몫이 된다. 관객은 공격받는 자의 아슬아슬한 역공 시나리오를 지켜보며 몸이 간질간질해지는 것을 느낀다.또 하나는 심리극으로 가는 길이 있다. 서스펜스를 추구하기보다 미묘한 심리 변화를 추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설정된 상황이 곧 문제적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즉, 어떤 상황에 던져진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반응과 대응 양상은 삶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나타내며 관객들은 삶에 대한 성찰적 자세를 요구받는다.그렇다면 [옛사랑의 그림자]는 어떤가? 기획 의도를 “섬세하고 밀도 있는 심리묘사로서 시종일관 긴장감 있게 그려 나가면서”라고 밝힌 것을 보면 그 두 갈래 길의 행복한 만남을 추구한 듯한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 두 길의 잘못된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다.우선 이 드라마는 긴장감을 유발하는데 실패했다. 선주의 계산에 따른 접근과 명희의 무지 사이의 구도, 그리고 들킬락말락하는 김주승의 외줄 타기 신세 등은 서스펜스를 유발하기 위한 구도를 닮아 있기는 해도 그 전형과는 많이 다르다. 서스펜스의 전형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선주에게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하고, 그것에 이르기 위한 각본이 치밀해야 하며, 그것을 추진해 낼만큼 냉혈한 성격으로 묘사되어야 한다. 즉, 모든 상황을 선주가 주도해야 하고, 그 상황은 복선을 타고 한 단계 한 단계 목표점을 향해 전개돼 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선주의 목표는 다만 현우의 주변을 맴도는 것일 뿐, 그의 삶으로 점점 깊이 파고들어 이혼을 요구하는 것은 그녀 자신도 애초 의도하지 않은 상황 논리에 빠져든 탓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세 사람은 모두 그 상황 속에서 어쩔 줄 모른 채 쩔쩔 매고 있고 선주는 펑펑 울거나 술에 취함으로써 다잡아야 하는 극의 긴장감을 느슨하게 풀어놓는다.더불어 심리묘사에서도 밀도를 잃고 있다. 현우는 죄책감과 당혹감, 적개심이 복합된 인물일텐데 그저 선주에 대한 짜증 수준으로밖에 묘사되고 있지 않다. 명희의 경우는 서서히 사태를 파악해 가는데 따른 심리 변화가 아주 묘미 있게 다뤄질 수 있는 부분인데 너무 오랫동안 무덤덤한 자세를 유지한다. 눈치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깜짝 놀랄 만한 역공을 가하기 위해 모른 척하는 것인지 혹은 자기 치부를 드러내기도 인정하기도 거부하는 가진 자의 인내심 때문인지 도무지 가늠이 서질 않는다. 다만 선주의 (현우로 인한 반복된 중절에 따른) 불임과 현우의 딸 예지에 대한 애정의 상징성, 또 비록 한 가정을 침범하는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그 심성이 악한 것은 아님을 드러내는 점 등 선주의 성격 창출에서는 일정한 성취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방은희의 일종의 열연이 인상적이기는 해도 서스펜스 유발이나 미묘한 심리묘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감정의 과잉 표출이 되고 만다.드라마 스페셜처럼 하나의 핵심을 쭉 밀고 가고자 하는 시도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치밀한 대본이 중요하다. 인기 스타와 코믹 연기들로 한 몫 잡으려는 다른 미니시리즈들과 비교할 때 이런 기획은 일단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처럼 드라마의 핵심을 중시하고자 할 때에는 현실 적합성과 형식 적합성 사이에서 불가피하게 선택을 해야 한다.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면 주제 의식에 치중해야 하고, 형식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거두절미하고 미스테리물로 나갔어야 한다. 하지만 [옛사랑의 그림자]는 비록 상황에 도전하는 여성상을 제시함으로써 신파조 순애보를 넘어서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성중심의 가정을 행복의 원형으로 제시하고 있고 거기에 도전하는 여인이 결국 스스로 파멸한다는 결말을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현실 적합성 측면에서도 주제의 성취를 이루는데 실패했고, 앞서 길게 논의한 것처럼 형식에 충실한 드라마가 되는데도 실패했다.
|contsmark1|pd연합회 방송비평모임대표집필:손병우|contsmar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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