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사과문이 사과문으로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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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사과문이 사과문으로 보이는가
[시론] 김창룡 인제대 교수
  • 김창룡 인제대 교수
  • 승인 2016.09.0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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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사과문은 사과로 보이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좀 지켜봤지만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조선일보>가 무서워서인지, 사과에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내보내고 같은 지면에서 반발하는 이중성을 보이는데도 대부분 입을 닫았다. 권력에 핍박받고 있다는 동정심 때문인지, 같은 언론기관이라고 봐주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서 한국 언론은 더 욕먹고 한통속으로 지탄받고 있다.

<조선일보>가 지난 8월 31일자 신문 1면에 대우해양조선으로부터 호화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송희영 전 주필 사건에 대한 사과문을 게재했다. 신문 하단에 조그만 크기로 게재한 사과문에서 “본사는 30일 송희영 전 주필 겸 편집인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했다…(중략) 송 전 주필은 2011년 대우조선해양 초청 해외 출장 과정에서 부적절한 처신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사의를 표명했다…(중략)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언론인의 일탈 행위로 독자 여러분께 실망감을 안겨 드린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망해가는 대우조선으로부터 2억 원대의 향응을 받아 세인을 깜짝 놀라게 한 부도덕한 주필에 대한 사과치고는 너무 짧고 너무 부실하고 너무 성의가 없었다. 사과문을 보면서 “이건 뭐 사과는 하지만 한 판 붙겠다는 결의와 울분으로 느껴졌을 정도”였다.

▲ 8월 31일 <조선일보> 1면에게 게재된 사과문

<조선일보>는 같은 날짜 사설 ‘언론인 개인 일탈과 권력 비리 보도를 연관 짓지 말라’에서 “8월 30일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가 <연합뉴스>를 통해 ‘<조선일보> 간부가 대우조선 사장 연임 로비를 하다가 안 되고 유착관계가 드러날까 봐 우병우 처가 땅 기사를 쓰게 했다’는 식으로 주장했다”며 “하지만 주필이 취재 기자에게 직접 기사 지시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조선일보>는 심지어 “청와대 인사가 권력형 비리 의혹 보도의 당사자가 된 것은 권력 측에서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특히 그 청와대 인사가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다고 해서 현장 취재 기자들이 권력 비리의 의문을 갖고 발로 뛰어 파헤친 기사를 그 언론에 있는 다른 특정인의 도덕적 일탈과 연결 지어 음모론 공격을 펴는 것은 적어도 청와대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공격했다.

어떤가. 사과는 짧고 역공은 길고 거칠다. <조선일보> 사과의 진정성도 성의도 없다는 것은 이런 문제 외에도 우선 문제가 터졌을 때부터 보여준 오만한 행태에서부터 비롯됐다. 송 주필의 부도덕한 초호화향응 주장이 터져 나왔을 때 자체 진상조사를 했던가. 신속한 변명부터 늘어놓았는가.

2억 원대 향응을 200만 원대로 100분의 1로 축소해서 그리스 사태 초청 취재에 응했다는 것이 최초의 ‘조선일보식’ 대응이었다. 이어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실명을 밝히고 구체적 타락상을 공개하자 그 다음 조선일보는 주필직에만 물러나게 했다. 물론 사과도 진상조사도 없었다.

뒤늦게 사표제출 형식으로 그를 물리친 진짜 배경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온 것이 ‘대충’ 사과문이었다. 오죽하면 <조선일보> 기자들이 사과문을 비판하며 ‘집단삭발’, ‘삼보일배’ 운운하겠는가. ‘대통령을 만드는 신문’이라고 하는 <조선일보> 경영진의 오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 ⓒ뉴스1

사과문에는 ‘부적절한 처신’ ‘언론인의 일탈행위’ 등 모호한 표현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용이 없는데, 사과한단다. 뭘 사과한다는 말인가.

- 논설을 주관하는 신문사 주필이 2억 원대의 향응을 받았을 정도면 뇌물성 금품수수는 어느 정도였을까. 향응에는 뇌물이 따르는 법이다.
- 청와대에 인사 청탁 등 부정청탁을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자 <조선일보>가 비난성 보도를 내놓았다는 청와대의 해명이 과연 거짓이기만 할까. 주필의 ‘부적절한 처신’을 보면 부정청탁을 하고도 남는데?
- <조선일보>의 주필만 이런 식의 향응과 뇌물성 금품수수의 특권을 누렸을까. 주필이 이 정도의 악취를 풍기며 다니는데 아무도 몰랐다면 언론 기관이 아니다.
- 검찰이 주필에 대해 수사를 한다고 하지만 과연 제대로 할까. 검찰총장을 날린 <조선일보>를 현재의 검찰총장도 기억하고 있을 텐데….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대립을 보는 이들 각자의 생각과 판단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저널리즘 차원에서 세 가지는 선결돼야 <조선일보>가 살고, 한국 언론이 산다.

첫째,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이라면 <조선일보> 자체 진상조사를 통해 진상공개가 우선돼야 한다. 검찰 수사에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무책임한 언론의 행태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즈> 등 유수의 언론사도 내부의 법적‧윤리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철저한 자체 진상 조사단을 꾸려 진상은 물론 향후 대비책까지 내놓지 않았던가.

둘째, 사과문에 진정성과 성의가 없다는 것은 국민의 신뢰를 기대하는 언론이 아니다. <워싱턴포스트>가 ‘지미의 세계’라는 보도로 퓰리처상까지 받았지만 조작된 보도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 1면 전체를 할애해서 사과문을 게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제야 드러난 주필의 타락상은 언론인이 아닌, 타락한 언론 권력가의 이권개입일 뿐이다. 개인 일탈로 치부하기에는 <조선일보>가 너무 무책임하고 염치가 없는 것 아닌가.

마지막으로 대책이 나와야 한다. 언론사에는 자율 제재가 필요하다고 해서 윤리강령을 만들었지만 한국 언론은 거듭 타락상을 노출했다. 개별 언론사가 직접 책임을 추궁할 수 있도록 개별 윤리강령을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그것도 <조선일보>는 만들었다. 이런 윤리강령, 취재 가이드라인이 무슨 소용이 있나. 주필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 권력이 된 <조선일보> 전체의 문제로 비화된 현 시점에서 언론 본연의 자세로 돌아갈 대안을 스스로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비겁한 사과는 눈속임에 불과하다. <조선일보> 주필의 타락상과 사과행태에 남의 일보듯 지켜보는 한국 언론은 도매금으로 욕을 먹는 법이다. 윤리가 무너진 언론사, 오만한 사과로 진실을 비켜가는 언론사가 ‘1등 신문’이라는 주장은 한국 언론 전체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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