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플러스와 콘텐츠 큐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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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플러스와 콘텐츠 큐레이션
[배기형 PD의 글로벌 프로듀싱]
  • 배기형 KBS 월드사업부 PD
  • 승인 2016.09.07 2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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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지난 7월 콘텐츠 통합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BBC+를 출시했다. 그동안 뉴스, 스포츠, 날씨 등 관심사에 따라 BBC News, BBC Sports, BBC Weather 등 다양한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에서 개별적으로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했던 것에서 벗어나, BBC 홈페이지에서 이용할 수 있었던 방대한 동영상 콘텐츠를 이제 하나의 어플리케이션에서 통합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의 특성상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편리하게 소비할 수 있다 (time and place shift)‘는 점에서 보다 진일보된 시청자 서비스를 구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 출시된 BBC+가 소비자 친화적이라고 평가하는 데에는 단순히 다양한 콘텐츠를 한데 모아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BBC+가 ‘큐레이션’을 통하여 보다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있다. 즉, 시청자들이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와 관심 없는 주제를 선별할 수 있고, 선호하는 콘텐츠만을 선택적으로 시청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여기에는 사용자들의 어플리케이션 이용 기록 등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큐레이션’이 핵심 서비스로 마련되어 있다.

큐레이션(curation)은 통상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기획자가 일정한 주제에 맞춰 작품을 선별해서 전시하는 것을 뜻하는데, ‘콘텐츠 큐레이션’은 플랫폼과 콘텐츠가 넘쳐나는 작금의 미디어 환경에서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유의미한 콘텐츠를 찾아 분류하고, 가공하는 일을 의미한다. 즉, 수많은 콘텐츠를 특정한 목적을 갖고 수집하고 편집하여, 시청자들의 니즈에 부합하는 콘텐츠만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알짜배기 즉, 가치 있는 콘텐츠의 선별과 공유가 보다 중요해짐에 따라 이제 큐레이션이 필수적인 전략이 된 것이다.

그동안 지상파나 케이블 TV와 같은 레거시 미디어는 시간대별, 채널별 편성권을 쥐고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제공했다. 이에 따라 소비자는 주어진 편성 프로그램에서 제한적인 채널 선택권만을 가진 채, 그 시간대에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보거나 아니면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상영되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이제 방송 콘텐츠 산업은 그동안의 무선 주파수(RF) 기반에서 인터넷 프로토콜(IP) 기반으로 점차 전환되고 있으며, OTT 서비스를 애초 경쟁 상대만으로 바라보던 지상파 TV도 이제 OTT 시장에 뛰어들어 아예 자체 OTT 서비스를 출범시키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훌루(Hulu), 영국의 BBC+와 우리나라의 푹(Pooq)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 BBC가 7월 18일 BBC 플러스(+) 어플리케이션 출시 소식을 홈페이지를 통해 알렸다. ⓒBBC

OTT 서비스를 둘러싼 미디어 환경의 기술적 변화는 콘텐츠 산업의 가치 사슬 구조를 재편했고 소비자들의 콘텐츠 이용 행태의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TV 시청이 방송사업자가 정한 편성에 따라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선형적(linear) 행태였다면, OTT 서비스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스크린을 시청자가 직접 선택하는 비선형적(non-linear) 행태로 변모시켰다. 이제 레거시 미디어에서도 OTT 서비스의 장점인 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며 소비자들의 변화하는 요구에 부응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BBC+의 큐레이션 서비스는 바로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큐레이션 서비스는 채널 선택권이 아니라 개별 프로그램 선택권을 보장한다. 편성권이 개개인 소비자에게 있는 셈이다. 소비자가 언제 어디서 어떤 기기로 무슨 콘텐츠를 이용할지를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콘텐츠 큐레이션 시대에는 굳이 시간에 얽매여 ‘본방 사수’를 할 필요가 없다. 개인화된 시청 소비 습관을 가진 현대인에게 적절한 맞춤 서비스인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OTT 서비스 사업자인 넷플릭스의 성공 요인을 얘기할 때 소비자 중심의 혁신을 빼고서 말하기 어렵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빅데이터를 이용한 콘텐츠 큐레이션이다. 넷플릭스는 빅데이터를 이용하여 소비자의 개인적 취향을 존중하고 반영하는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개인별 콘텐츠 클릭 이력, 대여 목록, 평가 점수 등 가입자 취향을 면밀히 분석하여 데이터화함으로써, 미디어 콘텐츠를 추천할 때 이 데이터를 활용했다.

소비자는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콘텐츠를 넷플릭스에 알려주고, 넷플릭스는 그 요구에 부응하여 콘텐츠를 사서 틀어주거나 아니면 직접 제작하는 셈이다. 소비자의 요구와 필요 그리고 취향을 반영하는 똑똑한 서비스인 것이다. 유능한 큐레이터는 소비자들과 소통하며 그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내고 분류하며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콘텐츠를 변화시킨다. 소비자들의 피드백이 바로 콘텐츠에 반영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글과 사진 검색 기능으로 큐레이팅(curating) 하던 포털에 권력이 있었다면, 지금은 영상 콘텐츠를 큐레이팅하는 플랫폼이 미디어 생태계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 BBC+ 어플리케이션 ⓒ애플(apple) 앱스토어 화면 캡처

콘텐츠 플랫폼의 서비스는 이제 단순히 콘텐츠를 전달해주는 것을 넘어 점차 오픈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콘텐츠 플랫폼의 서비스가 그동안 패키저(Packager)였다면 이제는 디지털 스토어(store)로 진화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콘텐츠 큐레이션의 확산은 미디어 이용의 패러다임이 개인화(personalization)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핵심 과제는 개인화 된 소비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콘텐츠를 개별적으로 소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 사업자는 이에 따라 개인의 다양한 콘텐츠 이용 이력과 취향을 분석하여 소비자 정보로 삼는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개인화된 소비자에 대한 고객 맞춤 서비스(customization)가 콘텐츠 비즈니스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콘텐츠 서비스가 기존의 패키지 판매에서 탈피하여 시청자가 원하는 프로그램만 선별적으로 제공하는 알라카르테 (A-La-Carte) 형태의 서비스로 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그동안 방송 편성에 맞추어 콘텐츠를 이용하는 ‘수동적(lean back) 시청’에서 ‘능동적(lean forward) 시청’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어쩌면 이제 소비자의 고유한 권리는 클라우드에 존재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과 선택권이다. 이러한 미디어 패러다임 변화를 읽어 내고, 보다 소비자들의 권리를 존중해야 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우리 PD들 모두에게 주어진 매우 절박한 숙제다. 우리가 큐레이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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