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 예능만으로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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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 본방 사수 허물어진 시대, ‘편성의 실험’을 얘기하는 이유

지상파 방송 3사가 추석을 맞아 파일럿(시범 제작) 예능 프로그램을 대거 선보였다. 연휴 기간을 콘텐츠를 발굴하는 시험무대로 삼아 파일럿 예능에 총력전을 기울인 것이다. KBS <노래 싸움-승부>, MBC <아이돌 요리왕>, SBS <부르스타> 등 흥행 요소를 앞세우거나 실험적인 소재를 활용한 파일럿 예능만 해도 열 편이 훌쩍 넘었다. 방영 직후 일부는 정규 편성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고, 일부는 진부한 포맷이라는 평이 이어졌다. 과연 파일럿 예능이 예능계 새로운 판도를 짤 수 있을까.

파일럿 예능들을 훑어보면 트렌드를 따른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음악 예능과 ‘쿡방’ 예능의 흥행요소를 버무린 KBS <노래싸움-승부>, MBC <아이돌 요리왕>부터 춤 서바이벌을 내세운 KBS <붐샤카라카> 등이 방영됐다. 시청자 참여와 SNS 활용을 접목한 MBC <상상극장 우.설.리.>·<톡 쏘는 사이>를 비롯해 마술, 추억 등의 키워드를 내세운 SBS <트릭 & 트루>, KBS <구라차라 타임슬립 새소년>도 있었다. 이 중 <노래싸움-승부>가 시청률 10.6%(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정규 편성이 점쳐졌고, 나머지 프로그램들은 2~6%대의 시청률 성적표를 받았다.

▲ KBS 추석 파일럿 예능 <노래싸움-승부> 9월 16일 방송 ⓒKBS

이처럼 방송사들은 파일럿 예능을 통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렇지만 시청률 저조라는 총체적 난국에 빠진 예능계에 파일럿 예능이 구원투수가 될지는 미지수다. 현재 지상파 방송사와 종합편성채널의 주요 예능들은 파일럿 예능으로 첫 발을 뗀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화제성이 예전만 못하다. 음악예능의 흥행에도 SBS <판타스틱 듀오>, MBC <듀엣 가요제>은 한 자릿수 대 시청률에 머물고 있다. JTBC <비정상회담>은 방송 100회를 넘기며 안착했지만 진부한 포맷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고, ‘쿡방’ 예능의 선두주자인 <냉장고를 부탁해>의 경우 한 때 시청률 8%까지 치솟았으나 최근엔 3%대(12일 기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파일럿 예능으로 방영됐을 당시 시청자의 호응에 힘입어 정규 편성된 경우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방송사들은 트렌드에 발맞춰 먹방·쿡방, 육아 예능, 음악 예능의 일환으로 기획했으나, 정규 편성 이후 방영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 효력을 파일럿 예능 때만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물론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MBC <복면가왕>처럼 파일럿 예능으로 시작했더라도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즉, 파일럿 예능이 정규 편성돼 안착하더라도 시청자 호응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 tvN은 추석 연휴 기간에도 <삼시세끼>(사진) 등의 정규 프로그램을 그대로 방송했다. ⓒtvN

파일럿 예능의 효과가 예전만 못한 이유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과거 ‘본방 사수’가 유효했던 시절에는 방송사들이 파일럿을 편성 부담을 더는 동시에 탐색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성공률이 낮은 드라마에 비해 지속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발굴하는 기회로 본 것이다. 따라서 ‘중박’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한 파일럿을 정규 편성할 경우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방 사수’의 벽이 허물어진 자리에 시청 패턴의 다양화와 더욱 짧아진 유행 주기로 인해 파일럿 예능의 편성만으로 시청자의 관심을 붙잡기란 어렵다.

이렇게 날이 갈수록 미디어 환경과 시청자의 입맛이 시시각각 변하는 가운데 일부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을 제외하고선 파일럿 예능만으로 시청률 저조와 뒤처진 화제성을 타개하는 데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지금 상황을 보면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돼온 시즌제 예능 도입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케이블채널 tvN은 연휴 기간에 특별한 파일럿 없이 정규 예능과 드라마를 기존대로 방영하는 데 집중했다. 시기를 타기보다 시즌제 예능을 안착시켰기에 가능한 선택지로 읽힌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그간 파일럿 예능을 통해 실험적인 기획을 꾸준히 시도해온 만큼 지속가능한 예능, 화제성을 이어가는 예능을 만들기 위해선 ‘편성의 실험’이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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