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내 라디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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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미션 임파서블? 파서블!] 안병진 경인방송 PD

설 명절에 이런 기획을 했다. “고향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명절에 고향에 가면, 자신이 생각하는 고향의 소리를 휴대전화에 녹음해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원하는 시간을 목소리로 녹음해주면 방송 시보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은은히 파도 소리가 들리고)
#어설프고 낯설지만 어딘가 매력적인 청취자의 목소리#
“파도가 시원한 내 고향 덕적도에서 10시를 알려드립니다.”

라디오로 나를 이끈 내 인생의 영화, <일 포스티노>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 경인방송은 2015년 설 명절을 앞두고 시청자들에게 시보 공모를 했다. ⓒ경인방송

계획대로 되면 청취자 참여도 높이고, 매시간 다양한 목소리가 생동감 있게 들을 수 있겠지. 게다가 시보 광고가 끊어진 상황이어서, 이걸 계속하다보면 소규모 광고 유치도 가능하겠다는 속셈도 있었다. “야식이 땡기는 시간, ◯◯치킨집에서 자정을 알려드립니다.”

그래서 결과는? 참가자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시보를 만드느라 담당자가 한 달 내내 고생을 했다. 지난해 이야기이다.

이런 걸 지금 해보면 어떨까? 아마도 이제는 24시간을 꽉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젊은층은 이제 휴대전화를 녹음기기로 갖고 놀기 시작했다. 오디오를 기반으로 한 SNS가 등장한 것이다. 앵커(ANCHOR), 플립라디오(PLIP RADIO), 스푼(SPOON) 등이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목소리가 텍스트와 이미지를 대신한 것이다.

SNS는 텍스트 매체로 시작해 이미지 그리고 동영상으로 중심이 이동하고 있지만 이 흐름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목소리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감성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10대와 20대가 주로 이용한다. 팟캐스트가 주로 30~40대의 놀이터인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왜 갑자기 이런 SNS가 나왔을까? 오디오 SNS는 일단 만들기가 쉽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만든다. 자려고 누웠다가도 누군가에게 전화하듯 녹음해서 공유하면 끝이다. 팟캐스트처럼 어떤 주제가 필요하거나 말발이 없어도 된다. 내가 지금 느끼고 표현하고 싶은 걸 말하면 된다.

▲ <사진 왼쪽부터> 라디오 애플리케이션 앵커(ANCHOR), 플립라디오(PLIP RADIO), 스푼(SPOON)

팟캐스트와 달리 실시간 LIVE 방송도 가능하다. 밤새 이런 저런 어플을 깔고 실행해보니까 생각보다 더 재미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목소리를 미지의 영역으로 보내는 일은 우주에 첫발을 내딛는 것처럼 설레는 일이다. 또한 누군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언가를 읽거나 보는 행위보다 사적이고 따뜻한 느낌이다. 목소리에는 체온이 있기 때문이다.

오디오 SNS는 스스로 라디오란 이름을 달고 있듯이 개인화된 라디오처럼 보인다. 소리를 통한 감성의 공유와 공감, 라디오와 그 영역이 같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그렇다면 이들은 왜 기존 라디오는 듣지않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라디오를 체험하지 못한 세대이기 때문일까? 지금의 라디오가 이들의 이야기를 공감해주지 않아서일까. 지상파 TV가 겪고 있는 이유와 같은 것일까. 아니면 듣기만 하는 라디오 시대가 이제 저무는 것일까. 이것이 새로운 시작일지 애정을 담아 지켜볼 일이다. Radio is A 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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