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외면 익숙한 해고 노동자들, 그들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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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로드 문제 해결 촉구 24시간 필리버스터 현장] 높았던 목소리, 듣지 않는 언론

“티브로드 대량 해고 사태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어느 정도냐고요? 사회‧시민단체에서 기고를 내거나 한 노동전문지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게 다예요. 그 외에 다른 언론들이 관심을 가져줄 때도 있지만, 그건 단식같이 눈에 띄는 행동을 할 때, 아주 잠깐 동안 뿐입니다. 단식을 중단한 지금, 언론들은 또 다시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영진 케이블방송 비정규직노조 티브로드지부장)

지난 20일 정오, 지난 2월 티브로드로부터 갑작스레 해고를 당한 간접고용 노동자 10여 명과 정의당, 노동당 당원들은 해고자 복직과 고용 안정을 요구하는 ‘24시간 필리버스터’를 시작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였다. 이들은 이미 지난 8월 30일부터 국회 앞에서 릴레이 단식 및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선선한 가을이 시작됐다곤 하나 아직 한낮의 뙤약볕이 따가운 때였다. 그러나 날씨는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난 8월 말 단식을 시작해 벌써 20일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이영진 지부장은 “단식 첫 날에 비가 엄청 왔는데 그걸 다 맞고 그냥 여기(국회 앞)서 잤다”며 “단식을 하면서는 잘 씻지도 못하고 그랬지만 ‘남들 사는 만큼 똑같이 살고 싶다’는 그 생각 하나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앞에서 티브로드 해직 노동자 복직 및 고용안정 촉구를 위한 24시간 필리버스터 및 농성이 있었다. ⓒPD저널

티브로드의 모회사인 태광그룹은 기존에 있던 여러 케이블 방송(SO·종합유선방송)을 인수하며 티브로드라는 거대 MSO(복수종합유선방송)를 형성했다. 그런데 이곳 티브로드에 소속돼 케이블 설치 및 수리 기사로 근무하던 노동자들이 지난 2013년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을 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그저 ‘노동법에 보장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누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날 기자와 만난 최오수 희망연대노조 조직국장은 “노조가 생기기 전에는 근무시간, 임금,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최 조직국장에 따르면 원청인 티브로드는 지역 센터에 매일 영업 할당량을 지정해 하달하면 센터의 현장기사들이 4~5개로 팀을 나눠 그날 할당량을 채워야 했다. 만약 한 팀이라도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할당량이 모두 채워질 때까지 센터 기사들 모두가 퇴근하지 않고 기다려야 했다. 이런 상황이 노조가 생기기 전 약 10년 간 이어졌다.

임금 부분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최 조직국장은 “한 번은 원청 측에서 ‘센터가 이번 달 이 정도로 손실을 봤으니, 기사들의 월급에서 얼마씩 삭감해서 손실분을 메우라’며 현장 기사들의 임금을 삭감한 일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무엇보다 현장 기사들의 외주화와 고용 불안이 문제였다. 본래 정규직으로 현장에서 케이블 설치, 수리, 철거 등의 업무를 맡던 현장 기사들이 하나 둘 씩 외주화됐다. 뿐만 아니라 1~2년마다 새로운 협력업체와 계약을 갱신‧해지하는 통에 현장 기사들은 늘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런 이유로 시작된 파업은 한 달 이상 길어졌는데, 다행히도 사태는 금방 마무리됐다. 노사 양측이 상생협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상생협약의 내용은 ‘협력업체가 바뀌더라도 민주노총 서울본부 더불어 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가 결성된 당시 체결된 임‧단협과 노동자들의 고용을 승계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사용자 측인 티브로드가 스스로 상생협약을 무력화시키고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필리버스터 현장에서 만난 케이블방송 비정규직노조 티브로드지부 김승호 사무국장은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2월 티브로드 전주센터에서 기존 센터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센터장이 부임을 하자마자 노조 조합원들만 선별적으로 해고시킨 일을 들 수 있다”며 “당시 센터장은 ‘원청(티브로드)으로부터 고용 승계에 대한 이야기를 못 들었다’며 발을 빼려고 했는데, 원청 측에 물어봐도 협력업체와의 일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는 말만 돌아와 막막했다”고 말했다.

‘언론의 이상한 침묵’…“단식이라도 해야 관심 가져주더라”

▲ 티브로드 해고 노동자 등이 지난 6월 7일 오후 서울 한강대교 아치 구조물 위로 올라가 '진짜 사장 티브로드가 해고자 문제 해결하라'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걸고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뉴스1

케이블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 문제는 비단 티브로드만의 일은 아니다. 동종업계인 딜라이브(과거 씨앤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딜라이브는 지난 2005년 정규직이었던 현장기사들을 외주화해서 기존 업무와 무관한, 서비스센터 내에 있는 생소한 부서로 보냈던 바 있다.

이날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선 김태진 민주노총 희망연대노조 공동위원장이 바로 그 당사자였다. 김 위원장은 “지역 케이블 방송들은 지역 행사나 소식이 있으면 열심히 취재해서 알리는 데 그 존재 의의가 있고, 현장 기사들은 주민들이 그 방송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봉사정신 하나로 고된 케이블 설치 및 수리 업무를 묵묵히 해 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그런 현장 기사들에게 무리한 영업을 강요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가해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은 케이블 방송의 지역성과 공공성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케이블 방송 업계 1위인 티브로드에서 근무하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갑작스럽게 집단 해고라는 불이익을 겪었다. 그러나 언론은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 이날 필리버스터 현장에도 하루 종인 취재기자와 사진기자가 각각 한 명씩 다녀간 게 전부였다.

사실 이런 풍경은 이들에게 익숙하다. 실제로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제공하는 보도검색 서비스인 ‘빅카인즈’에 티브로드 대량 해고 사태가 발생한 지난 2월을 기준(전국 단위 지상파·일간신문 기준)으로 ‘티브로드 해고’라는 키워드를 넣을 때 나오는 기사는 고작 22건이다. 그나마도 이 문제를 집중<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일부 매체에서만 이 문제를 집중 보도하고 있었다.

2013년 노조가 파업을 시작했을 당시인 2013년 9월부터 현재까지 같은 검색어로 찾아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다. 이 기간 ‘티브로드 해고’라는 검색어를 포함한 기사는 총 53건이었다. 지상파 방송 3사와 종합편성채널 4사는 아예 ‘무보도’로 일관하고 있다. 티브로드 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했던 2013년부터 그들이 해직을 당한 올해 2월을 거쳐, 이들이 복직과 고용 안정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한 지금까지 관련 문제를 단 한 번도 보도하지 않았다.

케이블 노동자들의 불안한 노동 환경부터 이에 대한 개선 요구까지, 이들의 목소리는 존재하나 언론에선 ‘없는’ 현실인 듯 도통 시선을 주지 않다 보니, 이 사안에 특별히 관심이 많지 않고서야 일반 시민들은 이런 현실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기 어렵다. 해고된 케이블 노동자들이 시민사회와 함께 국회에 요구 사항을 전달하고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국회 앞에서 단식과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지만, 민의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국회의원들마저 이들을 배경 화면처럼 스쳐 갈 뿐이다.

반면 가던 길을 멈추고 해직 노동자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 적힌 문구를 유심히 읽어보고 가는 시민들이 간혹 있었다. 근처 휴대폰 판매 대리점에서 일한다는 김 모 씨(29)는 “지나가다 잠시 (필리버스터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도 본사에서 ‘이번 달에는 휴대폰 몇 대를 팔아야 한다’는 등 일종의 할당량을 부여 받는 처지여서 케이블 설치 기사들이 영업 압박을 받는 상황이 십분 이해간다”며 “문제가 잘 해결되길 바란다”고 응원의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시민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이영진 지부장은 “방금 저 청년처럼 지나가다가 문구를 유심히 읽어보기도 하고 ‘꼭 복직하라’며 아이스크림을 사다주는 분들도 있다”며 “비록 대부분의 언론이 거의 무관심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관심을 갖고 응원해 주시는 몇몇 시민들을 보고 버티고 있다”며 웃어보였다.

이 지부장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농성장을 지키는 10여 명 해직 노동자들의 표정은 평온했다. 농성 참여자들끼리 ‘농성이 길어지면 성격이 나빠지니 얼른 끝내야한다’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기도 했다.

▲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앞에서 티브로드 해직 노동자 복직 및 고용안정 촉구를 위한 24시간 필리버스터 및 농성이 있었다. 농성 중인 이영진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장. ⓒPD저널

“원청의 직접 고용‧노동자 고용 승계‧노사 상생 이뤄졌으면…”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바는 분명했다. 이런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원청기업이 협력업체와 계약할 때 ‘반드시 기존 노동자들의 고용을 승계하겠다’는 조건을 내 거는 것, 간접 고용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주는 것, 그리고 2013년 노사가 협의해서 이뤄냈던 ‘노사 상생 협약’을 준수하는 것. 이 세 가지를 위해서라면 해직 노동자들은 앞으로 기한 없이 길어질 수도 있는 싸움을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고 했다.

윤찬희 케이블방송 비정규직노조 딜라이브지부장은 “우리 해직 노동자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태광과 티브로드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올바른 방법으로 노사가 상생하는 것”이라며 “태광과 티브로드가 정의롭고 인간적인 기업이 되어서 더 이상 악행으로 유명세를 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장오 티브로드 전주 기술지회부지회장은 “언론이 침묵하고 있는 행태는 매우 아쉽지만, 설령 언론을 통해 태광과 티브로드에 비난이 쏟아져도 그들이 무시하면 그만”이라며 “지금도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일부 정치권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고 있지만 현재로선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쓴 소리를 했다.

박 부지회장은 “중요한 것은 기업이 알아서 각성하고 바뀌는 것”이라며 “그들이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변화할 수 있도록 국민들과 국회, 그리고 언론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그들을 질타하길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날 필리버스터 주자들이 공통적으로 촉구한 내용은 티브로드의 김재필 대표이사를 오는 26일 예정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채택하는 것이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원청인 티브로드가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전면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리버스터 종료 시점이었던 지난 21일, 김재필 대표가 미방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공식 채택됐다. 공을 넘겨 받은 국회는, 그리고 언론은 과연 제 역할을 다할까.

작가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뉴스의 시대>에서 “민주 정치의 진정한 적은 무작위의, 쓸모없는, 짧은 뉴스들의 홍수”라고 말했다. 매일 수천, 수만 건의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데 그 가운데 부당 해고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한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지금 언론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소수자와 사회의 약자를 위한 저널리즘의 길을 걷고 있는가. 언론이 저널리즘의 반대말처럼 기능하고 있는 건 아닐지, 티브로드 해고 사태와 같은 외면받는 노동의 자리에 던지는 언론의 시선이 바로 언론의 현재를 드러내는 리트머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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