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교수’가 교단에 남아있는 이유 세 가지
상태바
‘성범죄 교수’가 교단에 남아있는 이유 세 가지
[시론] 김창룡 인제대 교수
  • 김창룡 인제대 교수
  • 승인 2016.09.23 0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범죄로 징계받은 교수 10인 중 4인은 그대로 재직하고 있다"는 놀라운 통계조사가 나왔다. 최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3년부터 올해 6월까지 전국 38개 대학에서 성범죄로 징계를 받은 교수 47인 중 43%에 해당하는 20인이 재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성범죄를 저지른 교수가 다시 강단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바로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다. 파면이나 해임은 자동으로 학교를 떠나야 한다. 그러나 정직 처분이나 경고, 견책이나 감봉 등의 징계는 다시 강단으로 돌아올 수 있다.

교수가 대학교 내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악용하여 여학생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러도 학위포기 등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으면 쉽게 신고조차 할 수 없는 구조다. 공개적으로 드러났다는 것은 대부분 상습범으로 수년간 다수의 여학생들을 상대로 성희롱이나 추행, 심할 경우 성폭행까지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대법원은 지난 1월 제자들을 수년 간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넘겨진 강석진 전 서울대 교수에 대한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확정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11월 27일 '서울대 K 교수사건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피해자 X' 회원들이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강 교수의 성추행 사건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뉴스1

몇 년전 세상을 경악시킨 ‘인분교수’ 사건은 드문 사례이기는 하지만 한국 대학내에서 교수가 얼마나 절대적 권한을 남용할 수 있는가를 볼 수 있는 실증적 사례다. 특히 대학원생들의 연구 보조금 액수를 결정하고 학위 결정에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교수들에게 대학원생들은 절대복종할 수 밖에 없다.

수년간에 걸쳐 여제자 7인을 성추행한 혐의로 강석진 서울대 교수에게 대법원이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확정했다. 서울대 교수가 법정구속된 것도, 실형이 확정된 것도 개교 이래 처음이라고 난리가 났다.

법원은 여제자 7인으로 낮춰줬지만 실제로 피해자들은 수십 명에 달한다는 주장까지 나온 상습범에게 서울대는 학생들의 반발도 무시하며 진상조사를 거부했다. 신속하게 강 교수의 사표를 수리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파면 조치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서울대 교수가 성추행으로 개교 이래 처음으로 법정 구속되고 실형까지 선고된 것이 언론에게는 놀라운 사실일지 모른다. 진짜 놀라운 사실은 장기간에 걸쳐 수십명의 여학생들이 피해를 당하면서도 신고조차 제대로 없었다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왜 한국의 대학교에 성범죄자가 여전히 강단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그의 얼굴을 다시 마주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고문같은 일이지만 현실은 피해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돌아간다. 나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해본다.

첫째, 가해자편을 드는 사회문화 때문이다.

여성 피해자들은 우선 수치심 때문에 웬만해서는 신고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피해자이면서도 오히려 그런 사실이 알려질까 더 두려워한다. 물론 여기에는 신고해봐야 남성중심사회에서 제대로 피해회복은 되지못하고 오히려 본인만 이중삼중의 보복이나 불이익 등의 피해가 두려운 것도 한몫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평소 남성편력” “먼저 꼬리를 쳤다” 등의 추측성 보도로 이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긴다.

공멸을 각오하지 않으면 신고할 수조차 없는 사회문화는 역설적으로 가해자 편이다. 불사조처럼 강단으로 돌아오는 성상습범 앞에서 신고의 용기를 가지라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드러난 수치보다 훨씬 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이 있을 수 있음에도 가해자들은 ‘딸 같아서’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시키며 사회문화에 편승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교수들의 보신주의 때문이다.

성범죄가 사실로 확인되는 과정도 어렵다. 그 다음 단계는 더 어렵다.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가 끝나 사실로 확인했다 하더라도 교수 중심으로 징계위원회가 구성된다. 교수들은 동료교수의 비위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중징계 결단을 두려워한다.

안면때문이기도 하지만 동료의 불행을 ‘우리가 보호해야 한다’는 동지의식이 발동한다. 미래에 누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보험처리 하는 식이다. 아무래도 교수의 친구는 학생이 아니고 교수다. 가해자 교수를 위해 탄원서를 만들어 돌리고 사인을 독려하는 것도 동문교수들이다. 학연은 끈끈하고 피해자는 외롭다. 법원에 솜뭉치 판결이 나오도록 밑자료를 변호사와 상의하여 잘도 만들어낸다.

▲ 고려대 반성폭력연대회의 학생들이 지난 2014년 12월 11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타이거플라자 앞에서 고려대학교 공대 L교수의 대학원 성추행 사건에 대한 학내구성원들 기자회견을 마친 뒤 면담요청서 전달을 위해 총장실로 향하고 있다. 당시 연대회의 측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L교수에 대한 사표수리를 철회하고 징계 및 조사절차 재개와 함께 성폭력 사건 재발방지 대책 마련, 피해자의 재활치료와 사회복귀 지원 등을 요구했다. ⓒ뉴스1

마지막으로 법적 제도적 장치도 피해자 중심이 아닌 가해자 중심이다.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성범죄는 피해자들이 물증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내용을 공개, 신고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대학 교내에 양성평등위원회나 성범죄신고센터 등이 있지만 실질적 역할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성범죄 예방 교육을 의무화 했다고 하지만 대부분 형식적이다.

피해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강단에 서지 못하게 해달라고 하지만 그는 교육부로 법원으로 달려가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학자이며 술 때문에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동료교수들이 만들어 준 자료로 면죄부를 받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여기다 술에 관대한 한국사회는 법원조차도 “술 마시고 그 정도는…” 식으로 너그럽게 봐준다. 법원 판결로 유죄로 확정되기가 너무 멀고 험란하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직업에는 높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은 상식이다. 대학은 신고 접수부터 편하고 쉽게 할 수 있도록 피해자 중심으로 배려하고 비밀유지를 보장해야 한다. 교수 중심의 징계위원회 구성은 즉각 개선돼야 한다. 성범죄에 술은 가중처벌 요소로 인식, 법원이 판결로 말해야 한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에게 보다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사회 문화 형성이 최우선이다. 당연한 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뜻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