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어떻게 우리 시대의 공기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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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드라마 드라마] 선망 아닌 질투의 시대, 우리들의 달라진 자화상

<질투의 화신>(SBS)의 인물들은 그 이름에 성격이 들어가 있다. 표나리(공효진)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지만 기상캐스터로 활동하는 인물. 뉴스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녀가 하는 기상예보는 그리 ‘표가 나지’ 않는다. 그녀는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를 ‘표가 나게’ 하고 싶다. 얼마나 표가 나지 않으면 그녀의 이름을 잘못 본 기자 이화신(조정석)이 그녀를 ‘피나리’라고 부를 정도. 표가 나기 위해 ‘피가 나게’ 뛰어다니는 인정 욕구가 그 누구보다 강한 그녀가 바로 표나리라는 인물이다.

이화신은 이 드라마의 제목이 중의적인 의미로 다가오게 만드는 인물이다. 그는 제목처럼 ‘질투’하는 인간이다. 표나리가 자기가 좋다며 쫓아다닐 때만 해도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로서는 특이하게도 유방암에 걸리고 그래서 역시 유방 수술을 받게 된 표나리와 둘만의 비밀을 공유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 SBS <질투의 화신> ⓒSBS

그런데 표가 나지 않는 표나리를 남달리 보고 있었던 이화신의 둘도 없는 친구 고정원(고경표)이 그 사이에 끼어들면서 관계는 복잡해진다. 고정원이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다 여겨졌던 자신의 기상예보 방송을 챙겨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표나리는 그것 때문에 그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해왔던 이화신은 표나리가 고정원과 가까워지는 걸 보며 질투를 느끼는 자신을 통해 그가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질투의 화신>은 이처럼 ‘질투’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제시하면서 그것이 ‘사랑’의 다른 말이라고 얘기한다.

질투를 사랑의 표징으로 내세우는 것이 새로운 건 아니다. 하지만 남자주인공의 캐릭터가 ‘질투하는 인물’로 세워진 것은 특이한 지점이다. 보통의 남자주인공들은 질투를 하기 보다는 질투를 받는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이 지금까지 멜로드라마의 경향이 아니었던가. 모든 걸 다 가진 인물이거나, 심지어 초능력자거나, 다 가지지 못했어도 매력이 철철 넘치고, 그것도 아니라면 너무나 인간적이고 착해서 여성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인물들이 주로 남자주인공이었다는 걸 상기해보면 <질투의 화신>의 이화신은 독특한 인물이다.

그러고 보면 이 드라마의 남자주인공 이화신은 특이하게도 유방암에 걸리기도 하고, 그래서 보정 브래지어를 하고 있다가 엄마에게 들켜 흠씬 두드려 맞기도 한다. 그래서 이화신은 멋있다기보다는 웃기고 어떤 면에서는 짠함이 느껴진다. 이런 짠함은 표나리나 이화신이 공유하고 있는 정서다. 다만 이 대척점에 서 있는 고정원이라는 인물은 예외적이다. 재벌 2세인 그는 친구를 잠깐 보기 위해 태국행 비행기를 타는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질투란 본래 결핍에서 비롯되는 법. 표나리가 표가 나게 살아가는 아나운서나 기자들을 부러워하고, 이화신이 고정원이라는 뭐든 다 가진 듯한 친구 옆에서 그와 표나리가 가까워지는 걸 부러워하듯이 질투는 결핍으로부터 생겨난다. 물론 고정원 역시 결핍이 없는 건 아니다. 그가 표나리를 만나는 걸 반대하는 엄마가 그 결핍을 만든다.

▲ SBS <질투의 화신> ⓒSBS

하지만 이 상황은 그다지 시청자들의 마음을 끄는 요소는 아니다. 고정원이 멋있게 등장해도 시청자들의 마음이 상대적으로 짠해보이는 이화신으로 향하는 건 그래서다. 나는 없는데 타인은 가진 것. 그러니 이화신 같은 질투하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서 있고, 그의 사랑법이 어떤 공감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건 확실히 우리네 시대의 정서를 읽게 만드는 일이다.

가진 자들이 모든 걸 누리는 그런 판타지도 더 이상 흥미가 없고, 그렇다고 없는 자들의 지질한 삶 역시 구질구질하게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중간에 놓여 가진 자들을 질투하는 인간형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는 게 아닐까. 어차피 가진 자들이 더 많이 가지고, 없는 자들은 더 없어지는 현실이 공고해지다보니 이제 질투하고 투덜대는 것이 훨씬 더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질투하면 지는 거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이 표현에는 질투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자아가 그림자처럼 숨겨져 있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질투하게 만들었을까. 우리 시대의 결핍은 왜 이리도 큰 걸까. <질투의 화신>은 질투하면 지는 것이 아니라 질투하는 그 자아가 인간적이라고 말함으로써 지금의 대중들을 공감시킨다. 그 공감대가 크다는 건 그래서 우리 시대의 결핍이 그만큼 크고, 또 질투하는 자아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걸 얘기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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