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일하고 싶다는 ‘요즘 젊은 것들’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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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 일하고 싶다는 ‘요즘 젊은 것들’의 목소리
[제작기] SBS ‘SBS스페셜-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 백시원 PD
  • 백시원 SBS PD
  • 승인 2016.09.2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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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는 이렇게 시작됐다. 친했던 지인 몇몇이 사표를 썼다. 모두 내 기준에서는 총명하고 훌륭한 인재들이었다. 회사에서는 ‘제발 조금만 더 다녀주쇼’라고 바짓가랑이를 잡아도 될만큼. 그렇게 회사를 그만 둔 이들은 뜬금없이 해외로 유학을 가거나, 연봉을 반절도 못 받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량 같은 삶을 살거나, 경력과는 전혀 상관없던 김밥집을 차리겠다고 했다. 이들의 입에서는 한결같이 “여기는 헬(HELL)이야. 그래서 더이상 기업에서는 희망을 못 찾겠어”라는 말이 나왔다.

그 무렵, 우연히 일본 ‘유토리 세대(ゆとり世代)’에 대한 기사를 접했다.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소위 ‘프리터’들이 많은 사회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높은 최저임금이라는 요인 외에도 수직적인 기업문화가 이들의 ‘프리터 이탈 증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기사였다. 이들은 직장 안에서는 직장상사와 갈등을 겪거나, 혹은 반대로 직장에 적응하지 못해 퇴근 후 따로 ‘스피치 학원’을 다니는 등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의 한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 예상했다. 비슷한 시기에 또 하나의 통계를 접했다. 한국경제인총연합회에서 낸 ‘1년 이내 퇴사하는 신입사원이 무려 27%’라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전체 신입사원의 4분의 1이 입사 후 한 해도 지나지 않아 퇴사를 한다는 소식은 주요 일간지에서 너도나도 스트레이트 기사로 내보냈다. 하지만 ‘왜?’에 대한 분석이 너무 단선적이었다. 분명 문제는 그렇게 단순해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어쩌면 ‘사표’라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조직문화’, 그리고 ‘일을 왜 해야하는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다. 사표를 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 SBS ‘SBS스페셜-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 ⓒSBS

이번 다큐에서는 시도한 건 크게 세가지다.

첫 번째는 ‘인터뷰 다큐’라는 형식이었다. 젊은 직장인 27인, 중간 관리자 5인, 그리고 유명대기업 임원 등 40여명의 심층 인터뷰를 메인 구성 형식으로 가자고 했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형식을 원했던 건 아니었다.

어찌어찌 주요 출연자인 곽승훈씨의 사표 제출 과정을 취재할 수 있었는데, 막상 취재해보니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사표를 이미 쓴 출연자의 경우 그 후의 정착 과정이 후일담처럼 보여 정작 ‘사표의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어려웠다. 반대로 사표를 품고 살아가는 현직 직장인의 이야기는 생생했지만, 이들의 생활을 촬영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단,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 해야만 했고, 사표를 쓸 예정인 직장인의 회사 생활 취재 허락을 얻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또 몇 명의 특수한 사례만으로 전체를 이야기한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결국 통계인 27%에 해당하는 27인의 인터뷰를 통해 다큐멘터리의 객관성도 조금 더 확보하고, 풍부한 현장 이야기도 들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취재하면서 놀랐던 점은, 생각보다 사표 쓴 젊은이들이 정말 많았다는 사실이다. 직장 3년차인 한 출연자는 동기 40인 중 20인이 그만뒀다고 했고, 또 다른 대기업 여직원은 자기 부서 내에 자신을 제외한 모든 여성 직원들이 그만뒀다고 했다. 심지어 한 출연자는 5년 동안 무려 열 한 번 직장을 옮겼다고 한다.

또 하나 놀란 점은 사표를 낸 이들이 기성세대의 생각처럼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표란 어디까지나 ‘다른 선택’을 위한 결정이고, 회사란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거쳐가는 곳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자기의 삶을 보다 적극적으로 개척해나가는 모습이었다. 과연 ‘요즘 젊은 것들’다웠다.

▲ SBS ‘SBS스페셜-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 ⓒSBS

이런 적극적인 삶의 태도와는 별개로,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방송에는 소개되지 못했지만 특히 여성 직원들의 고충은 듣는 것만으로도 안타까웠다. 남자들과 똑같이 경쟁하고 입사했지만, 입사 첫날부터 ‘넌 여자라서 승진 어차피 안 될거야’라고 기를 확 죽이는 선배를 만난 사원, 사장의 커피 심부름을 1년간 했는데, 커피를 건넬 때마다 손을 만지고 음담패설을 해서 곤혹스러웠다는 퇴사자, 해외 출장을 가서 단체로 집단 성매매를 하고, 같이 간 여사원에게 이를 자랑했다는 사원 등등.

분노하지 않고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 밖에 방송에 나가지 못한 황당한 이야기들도 있다. 사무실 전체에 CCTV를 설치해 잡담이라도 하면 사원들을 혼낸다는 사장부터, 2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이틀 이상 휴가를 내본 적이 없는 비정규직 직원,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70만원만 주고, 그마저도 임금을 3개월 이상 체불한 회사 등 젊은이들의 사표 너머에는 여전히 열악한 한국의 노동 환경이 있었다.

사실 여담이지만, 방송에서 다뤄졌던 회식 문화, 보고서 문화 등은 퇴사자들의 주된 ‘퇴사 사유’라고 보긴 좀 어렵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 시간’과 ‘인간적인 대우’였다. 거의 모든 출연자가 반복해서 했던 말들이 있다.

“내 인생을 일만 하며 보내고 싶지 않다.” 
“선배들을 보면 내 5년 후가 너무 암울하고, 10년 후는 생각조차 하기 싫다.” 
“나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인데,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누군가는 남의 돈 받기가 쉬운거냐고 반박할 수 있지만, 이 세대의 특징은 확실하다. 일과 삶에서의 확실한 ‘라이프 밸런스’를 추구하는 세대, 소중하게 자라왔기 때문에 남도 소중하게 대하는 세대, 그리고 그 어느 세대보다도 ‘자아와 적성’에 대한 고민이 많은 세대라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세대를 포용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획기적인 조직 문화의 재편이 필요하다. 

“두세 시간만 더 일찍 퇴근했더라면…”, “그때 나한테 그렇게 욕을 퍼붓지만 않았더라면” 그만 두지 않았을 거라는 능력있는 젊은이들의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아마 현재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직원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SBS ‘SBS스페셜-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 ⓒSBS

두 번째로 다큐에서 시도한 건 ‘리얼리티 콩트’다. 리얼리티라고 굳이 부르는 이유는 콩트 내용이 실제 출연자들의 인터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콩트 역시 처음부터 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인터뷰 다큐멘터리다보니, ‘현장 그림’이 너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상황 재연’을 넣자고 했다. 대신 드라마처럼 좀 신경 써서 말이다.

그렇게 결정을 한 후 몇몇 배우들과 접촉하다 우연히 친한 PD를 통해 배우 권혁수 씨를 소개 받았는데, 막상 섭외해 놓고나서 생각해보니 권혁수 씨는 재연 드라마보다는 콩트가 어울리는 배우였다. 사실 PD와 작가 모두 생짜 교양PD, 작가였다. 콩트는 물론이고, 시사프로그램의 재연 외에 대사가 들어간 극을 연출해 본 적도 사실 없었다.

다행히 우리에겐 출연자들의 인터뷰라는 좋은 소스가 있었다. 엘리베이터에도 상석이 있다는 걸 모르고 실수했다는 한 백화점 직원,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고기를 종류별로 굽는 법을 배웠다는 직원, 상사의 담배와 커피 취향까지 파악해야 해서 아예 메모장에 ‘상사별 취향리스트’를 쓴다는 직원 등 ‘웃픈’ 직장인들의 사례가 있었다.

몇 번의 회의 끝에 대본을 완성했고, 고심 끝에 권혁수 씨와 같이 회사 생활을 해줄 동료들로 드라마 <미생>에서 고 과장 역할을 했던 배우 류태호 씨와 감초 역할을 맡아 줄 인터넷 시인 하상욱 씨까지 섭외했다. 대본 작성보다 어려웠던 게 촬영이었다. 스케줄이 서로 맞지 않아 하루만에 여덟 개의 콩트 에피소드를 찍어야만 했다. 심지어 촬영 장소도 회식 장소와 사무실로 분리돼 있었고, SNS 시인 하상욱 씨는 연기를 거의 처음 해보는 초짜라 걱정이 많았다.

결국 ‘에라, 일단 해보자’ 모드로 촬영에 들어갔다. PD 인생 8년 중 이렇게 ‘비싼 배우’들을 모셔놓고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이 찍은 건 처음이었다. 대사가 틀리지 않는 이상 무조건 NG 없이 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워낙 상황을 잘 콘트롤하는 배우들이라 큰 무리 없이 촬영을 마쳤다. 심지어 연기 초짜였던 하상욱 씨도 배우의 피가 흐르는지 신들린(?) 연기를 보여줬다.

세 번째로 별건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아마도 최초로(?) 인물 모자이크 대신 ‘인물 애니메이션’을 시도했다. 정확히 말하면 ‘로토스코핑(rotoscoping)’이라고 불리는 애니메이션인데, 실사 영상 화면을 한 컷 한 컷 참고해서 애니메이션화하는 기법이다.

그런데 이 역시 애초부터 하려던 건 아니고, 촬영 중반 쯤 어쩔 수 없이 내렸던 결정이었다. 주요 인터뷰이(interviewee·인터뷰에 응하는 사람) 중 대부분이 신분 노출을 극히 꺼렸기 때문이다. 모자이크 처리를 하자니 인물의 표정을 가려야 하는 부분이 아쉬웠고, 또 모자이크 장면이 덕지덕지 너무 많이 나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결국 어렵게 레퍼런스를 구하고, 기한이 너무 짧아 도저히 못하겠다던 제작사를 더 어렵게 설득해서 작업을 진행했다. 실사 화면이 아닌 애니메이션을 시청자들이 너무 낯설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신선한 시도라는 평이 많았다.

▲ SBS ‘SBS스페셜-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 ⓒSBS

PD라면 방송이 끝난 다음에 으레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시청률 체크. 두근대는 마음으로 시청률표를 봤다. 4%. ‘에휴…’ 한숨이 새나왔다. 폭삭 망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절대 잘 나왔다고 할 수 없는 점수. 정확히 말하면 ‘좋지 아니한’ 숫자였다. 곧바로 포털사이트를 켰다. 오잉? 방송 다음날인데도 실시간 검색어에 랭크돼 있다. 연이어 기사들이 수십건 추가로 올라오고, 블로그에 쓴 리뷰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올라왔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수천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고, 주요일간지에서는 다큐를 소재로 칼럼들이 나왔다. 소위 말하는 ‘입소문’이 난 것이다.

<SBS스페셜-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는 그러니까, 시청률에서 ‘4’장됐지만, 이에 공감하는 직장인들 덕분에 인터넷 공간에서 꿈틀꿈틀 부활했다. 그 반응에서 확인한 건 씁쓸하지만 두 가지였다. ‘우리는 왜 일하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가슴 속에 사표를 품고 산다는 사실이다. PD로서는 직장 문화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가 생겨나는게 반갑지만, 또 가슴 한 구석에서는 찝찝할 수밖에 이유다.

개인적으로는 제작에 허덕이느라 좀 더 명확한 결말을 내지 못한 부분이 참으로 아쉽고 부끄럽다. 그리고 아직 취직을 하지 않은 젊은 직장인 후배들이 행여나 다큐를 보고 그나마 있던 취업 의지마저 꺾였을까 두렵다. 이들이 얘기하는 ‘헬조선’에서 너무 쉽게 포기할까봐, 그냥 대책없는 회의에 또 무거운 돌을 하나 올린 게 될까봐 말이다. 그래서 ‘꼰대’ 같지만, 지면에서나마 조금 더 힘내서 우리 모두 같이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 얘기하고 싶었다. ‘요즘 젊은 것들’답게! 패기있고, 멋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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