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어른들이 만든, 페레그린이 없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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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감기] 팀버튼 감독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고작 세 살. 시리아의 꼬마 난민 아일란 쿠르디가 터키 휴양지 해변에서 엎드려 잠든 모습의 시신으로 발견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IS의 위협을 피해 엄마, 그리고 형과 함께 소형 보트에 몸을 싣고 지중해를 건너려 했지만 배가 전복됐고, 결국 쿠르디는 숨졌다. 쿠르디는 배가 전복되던 그 순간까지도 자신이 왜 위험천만한 순간을 견뎌야만 하는지 과연 이해하고 있었을까.

지난 28일 개봉한 팀 버튼 감독의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엔 그들만의 특별한 능력을 ‘이상하게’ 여기며 터부시하는 어른들의 시선을, 그리고 아이들을 통해 생명을 연장하고 잃어버린 인간의 모습을 회복하려는 할로게스트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페레그린(에바 그린)과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페레그린은 시간을 조정하는 능력을 지닌 ‘임브린’으로, 세계가 2차 대전을 벌이던 1943년의 어느 하루를 반복하며 독일 공군의 폭격과 할로게스트의 위협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한다.

동급생들과 좀처럼 섞이지 못하고, 부모로부터도 이해 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던 제이콥(에이사 버터필드)이 페레그린과 아이들을 만난 건, 2016년의 어느 날 할아버지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다. 할아버지가 남긴 단서를 따라 영국 웨일스의 작은 섬에서 페레그린과 아이들의 집을 찾은 제이콥은 인류의 대부분을 차지한 평범한 사람들 ‘코얼포크’와 달리 특별한 능력을 지닌 ‘크립토사피엔스’의 존재를 알게 된다.

▲ 팀 버튼 감독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아 납으로 만든 구두를 신지 않으면 공중에 몸이 뜨는, 공기를 다루는 엠마(엘라 퍼넬)와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능력을 지닌 에녹(핀레이 맥밀란), 괴력의 소유자 브론윈(픽시 데이비스), 식물의 성장을 조종하는 피오나(조지아 펨버튼), 투명인간 밀라드(카메론 킹), 뱃속에 벌이 있는 소년 휴(마일러 파커), 손끝에서 불을 뿜어내는 올리브(로렌 맥크로스티), 뒤통수에 입이 달린 소녀 클레어(라피엘라 채프먼), 꿈을 시각화하는 능력의 호레이스(헤이든 킬러 스톤), 그리고 미스터리한 쌍둥이(토머스, 조셉 오드웰) 등. 제이콥은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 역시 크립토사피엔스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제이콥은 페레그린과 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 더욱 위협적인 할로게스트를 보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할로게스트는 사실 페레그린과 아이들처럼 어떤 특별한 능력을 지닌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 이상을 원했고, 그 탐욕을 이루고자 했던 실험은 파국을 맞았다. 신이 되고자 했지만 괴물, 어쩌면 악마일지도 모를 그런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영혼이 생겨나기 이전의 존재로 그려지는 할로게스트들은 크립토사피엔스들을 먹으면서 이들의 능력을 흡수하며 조금씩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특히 바론(새뮤얼 L.잭슨)은 임브린인 페레그린을 사냥하면 자신이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악착같이 페레그린과 아이들을 쫓는다.

바론과 할로게스트들이 악마와 괴물 그 어느 지대에 놓인 존재가 된 건 불멸을 향한 스스로의 욕망, 아니, 탐욕 때문이다. 탐욕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건 탐욕을 향해 질주하다 괴물이 된 자신이어야 하건만, 이들은 그 희생을 아이들에게 치르게 할 뿐 아니라 아이들과 페레그린을 통해 탐욕을 완성하려 한다.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페레그린과 떨어져 자신들의 삶을 보호해주던 루프 밖으로 던져진 아이들은 탐욕스러운 어른인 바론과 할로게스트들에게 쫓기면서 현실에 맞서는 법을 배운다. 같은 하루를 무한하게 반복하며 나이를 먹으면서도 아이로 남아있던 특별한 아이들은 제이콥과 함께 루프 밖 현실의 세계로 한 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 팀 버튼 감독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영화 속 이상한 아이들, 즉 크립토사피엔스들을 적극 사냥하고 위협하는 건 바론과 할로게스트들이다. 하지만 페레그린의 보호 아래 무한한 하루를 반복하던 아이들이 던져진 세상에서 아이들을 더욱 위협할 존재는 평범한 인류일 것이다. 인류는 때로 특별한 능력을 지닌(지닌 것으로 보이는) ‘다른’ 존재들을 신성시 여기며 추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류는 ‘다른’ 존재에 대한 공포를 ‘종교’ 등을 앞세워 터부시하고 짓밟으면서 역사를 쌓아왔다. 인류를 위협했던 전쟁 속에서도 공습을 당하기 직전까지의 평온한 하루를 무한하게 반복하며 살아왔던 아이들은 루프 밖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생명을 위협받지 않는 평온한 하루를 위해 좁은 보트 위에 몸을 실었지만 결국 당도하지 못한 채 해변으로 밀려와 잠든 듯 숨을 거두었던 쿠르디와 같은 아이들에게, 사랑이 향하는 대상이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숨기거나 애써 증명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인류의 모두인 ‘다른’ 사람들 앞에 팀 버튼이 앞으로 어떤 세계를 펼쳐 보일지 궁금한 이유다. 그리고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이 당도할 현실의 끝이 지금의 이 세계는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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