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과자 쉬운 해고? 사람을 죽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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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KBS ‘추적 60분-사표 대신 받아드립니다’ 조나은 PD

KBS <추적 60분> ‘사표, 대신 받아드립니다’에는 나쁜 악당이 등장한다. 여기 새로 발표된 정부 시책 아래에서 그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에 맞서 ‘사람을 죽이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던 몇몇 공익 제보자도 등장한다. 그리고 앞선 일련의 클리셰에 어울리는 아주 난감한 상황들이 함께 펼쳐진다.

# 상황1_ 오 나의 제보자

지난 여름 한 제보자는 수화기 너머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주었다. 위탁 교육업체에서 회사에서 소위 찍힌 직원들을 잘라준다는 것이다. 위탁 교육업체에서 기업 인사팀에 어떻게 세일즈를 하며 다가오고, 계약을 성사시키고, 어떤 방식으로 퇴직 유도를 지도해주는지 본인이 겪었던 모든 프로세스를 알려주었다.

정부는 올해 초 2대 지침을 발표하며 저성과자 해고를 할 때 반드시 지켜야할 일정한 요건을 제시했다. 해고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1)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로 대상자를 선정해야 하고 (2)교육훈련 제공, 업무 배치전환 등 해고회피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침에는 명기돼 있다.

▲ KBS <추적 60분> ‘사표 대신 받아드립니다’(9월 28일 방송) ⓒKBS

급히 시행된 정책에는 이를 악용하는 장사꾼이 꼬인다. 이들에겐 주어진 요건을 역이용한 발상이 가능했는데, 바로 ‘공정해 보이는 평가’를 하고 ‘재배치를 위한 직무능력 향상 교육’을 제공만 한다면 누구든 해고 대상자가 될 근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을 대신해 교육 과정에서 각종 페널티를 설계하고 경고장을 발부해 해고의 근거를 축적해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은퇴자를 위한 전직 교육 시장이 포화상태가 되자 ‘저성과자 있으세요?’라고 물으며 역량 향상 교육을 미끼로 다가오는 위탁 교육업체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제보자의 입에서는 규모 10위 안에 드는 국내 대기업의 계열사 이름, 퇴출을 의뢰받아 사표를 받아낸 사람의 정확한 숫자, 계약 액수가 나왔다. 심지어 그는 위탁 교육업체 직원이 세일즈를 하는 육성, 기업 인사팀과 이야기할 때 주고받은 내밀한 이야기 등 확정적 증거들을 우리에게 상세히 보여주고, 들려주고, 사라졌다.

신변의 위협을 심각하게 느낀 제보자. 자신이 속한 기업도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그의 입장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작진 입장에서는 모든 걸 알게 되었지만 확보했다고 모든 증거들을 덮어두고 시작해야만 했다. 위탁 교육업체와 대기업 인사팀이 맺었던 계약 정보와 퇴직 유도 행위를 입증할만한 근거들을 밝혀내야하지만, 제보자를 특정하지 않아야 하며 그가 준 정보를 이용하면 안 되는 모순적이고 힘든 상황. 시작은 최첨단 무기를 장착하고 첫 발을 떼었으나 곧바로 무장해제 당하고 작대기 하나만 들고 맨몸으로 싸워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KBS <추적 60분> ‘사표 대신 받아드립니다’(9월 28일 방송) ⓒKBS

#상황2_ 믿었던 부르투스 너마저

또 다른 상황. 방송 한 달 전 ‘저성과’만을 단독 이유로 해고한 첫 사례라며 모 중공업의 세 명의 해직자를 뉴스에서 소개했다. 이들을 취재하기 위해 울산으로 왕복 12시간을 걸려 촬영을 하고 올라왔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현 정권 하에서 KBS를 신뢰할 수 없으니 영상을 사용하지 말라. 사용 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해당 노동조합 측의 통보를 받았다. 홀로 1인 시위하던 다른 사례자를 촬영하던 중에 받은 그 전화는 말 그대로 청천벽력 같았다.

하필 통보를 받은 그날은 제보자가 사라진 날과 꼭 같았다. 9월 6일.

그 이후 위탁교육업체 교육생들도 간신히 설득해 약속만 잡으면 촬영 전날 취소통보를 해왔다. 부인이 아직 알지 못해 알아볼까봐 너무 걱정된다는 남편, 딸이 고등학교 3학년인데 수능을 앞두고 방송을 볼 경우 받을 충격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아버지, 방송이 나가면 회사에서 본인임이 특정된다는 교육생 등등. 

나는 감히 그분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방송이 뭐 길래 그들의 고용을 불안하게 한단 말인가. 방송 2주 전이지만 CP를 찾아가 말했다. “방송 엎겠습니다.” 그리고 제보자께 전화를 드했다. “못하겠습니다. 선생님. 인터뷰도 안 해주시잖아요.” 그러나 방송 자체로 본인이 위험할 수 있지만 사회에 알려져 ‘사람 죽이는 일’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제보자의 말은 우리가 왔던 길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추석 내내 제작진은 쉴 수 없었다. 지역 3도를 돌며 제작진보다 분명 더 힘든 상태일 전·현 교육생들을 붙잡고 촬영을 부탁했다. 결국 본인이 피해가더라도 현실을 알려야겠다는 교육생들의 결심에 힘을 얻고 증언들을 담을 수 있었다. 위탁 교육업체의 퇴출유도 행위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는 제보자가 가져다 준 포럼 자료집에서 나왔다. 그 자료집에는 ‘40% 퇴출유도 성공’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있었다. 그리고 업체 스스로 모든 것을 시인하는 유튜브 영상이 있었다.

결국 제보자는 웃었고, 교육생들도 웃었으며, 우리 제작진들도 웃을 수 있었다. 울산의 중공업 노동조합에서도 프로그램의 취지를 오해해서 미안하다며 화해의 문자를 보내왔다.

▲ KBS <추적 60분> ‘사표 대신 받아드립니다’(9월 28일 방송) ⓒKBS

그런데 우리만 웃은 게 아니다. 우리 프로그램의 주인공이자 악당, 영상 속의 위탁 교육업체 임원도 방송이 끝나고 여전히 웃으며 지낸단다. 법적으로 그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에 걱정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후문. 추석 이후에 들어온 계약 건이 아주 많다던데 여전히 바쁘려나.

자, 이제 공은 고용노동부로 넘어갔다. 감사하게도 방송 끝나고 고용노동부에서 실태조사에 들어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변질된 저성과자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위탁교육업체를 규제할 법적 근거는 현재 없다. 왜냐하면 위탁교육업체는 부당한 인사처분의 행위자인 ‘기업’도 아니고, 불법적 노무 지도 시 공인노무사법에 근거해 처벌받는 ‘노무사’도 아니기 때문이다.

부디 고용노동부에서는 정부 지침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업체들을 규제하는 대책을 강구해주길 바란다. 그래야 다시는 양심 앞에 고민하는 제보자도, 고용의 위협을 느끼는 교육생들도, 그 사이에 괴로워하는 제작진도 없어지지 않을까. 앞으로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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