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식용개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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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몰랐던 식용개의 비밀
[제작기] EBS ‘하나뿐인 지구- 당신이 몰랐던 식용개 이야기’ 김민지 PD
  • 김민지 EBS PD
  • 승인 2016.10.10 12:0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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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아는 전래동화 ‘해님 달님’의 한 장면이 있다. 호랑이가 엄마 흉내를 내며 손을 문 속으로 집어넣는다. 그러자 방 안의 오누이가 묻는다. “엄마 손이 왜 이래요?”/ “응. 밖에서 일을 많이 해서 그래. 어서 문을 열어다오.” 

식용개 농장을 취재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도 호랑이와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누이를 잡아먹기 위해 위장을 했던 호랑이와 달리, 나는 개농장주의 불법 운영 상황을 적발하기 위해 위장을 했다는 점이다. 개농장 사업에 관심 있는 사람으로 위장한 나는 몰래 카메라를 들고 경기도의 어느 불법 식용개 농장에 들어가 수차례에 걸친 취재를 진행하였다.

“이렇게 목매달아 죽이는 거야. 전기 충격기 쓰면 전기요금이 들어가니까”

몰래 카메라에 담긴 식용개 농장의 실태는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참담하고 끔찍했다. 죽은 새끼 강아지를 닭장에 던져 닭 모이로 주는가 하면, 사람들이 먹다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급여하고, 개를 치사시킬 수 있는 약까지 쓰고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 농장은 전기 요금을 아끼기 위해 개의 목을 매달아 죽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다른 동료 개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우리가 몰랐던, 알면서도 외면해 온 식용개 농장의 민낯은 이번 방송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 EBS <하나뿐인 지구> ‘당신이 몰랐던 식용개 이야기’(9월 30일 방송) ⓒEBS

앞서 열거된 개농장주의 운영 행위는 현행법상 모두 불법이다. 그렇다면 왜 농장주는 그동안 처벌받지 않은 것일까? 그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개를 식용으로 사육하고 도축하는 행위 그 자체가 불법이다. 개는 법률상 ‘식용‘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명백한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과 파는 사람들의 정서적 반발 때문에 정부에서는 그동안 법을 집행하지 않았다. 신고가 들어와도 “그게 좀 애매해서…” 라는 식의 소극적 단속으로 일관해왔다. 그렇게 30여 년 동안 무법지대에서 개들은 방치되어 왔고, 사육과 운송, 도살 과정에서 그 어떤 잔인한 학대를 당해도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식용개들의 현실이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개농장이 존재하는 나라, 한국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전 세계에서 개를 식용으로 사육하고 도축하는 농장이 있는 나라는 한국 뿐이고, 그러한 농장들이 이제는 수천 마리를 키우는 기업화, 대형화 추세로 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농장을 지날 때마다 들려오는 수천 마리 개들의 떼창은 그야말로 곡성(哭聲)에 가까웠다. 그 울부짖음이 내 귓가를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식용개 농장이 갈 곳 잃은 개들의 마지막 종착지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길거리에 버려진 유기견은 물론, 번식장에서 더 이상 번식을 할 수 없게 된 모견, 경매장에서 팔리지 못한 폐견 등 인간에게 쓰임을 다하거나 이윤 추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개들이 종국에는 식용으로 흘러왔다.

▲ EBS <하나뿐인 지구> ‘당신이 몰랐던 식용개 이야기’(9월 30일 방송) ⓒEBS

결국 만연한 동물 학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들여다봐야 할 것이 바로 식용개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방송을 통해 꼭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식용개 농장의 진입 장벽은 하염없이 높았다. 동물보호단체의 고발과 개식용에 대한 비판여론이 점점 거세지면서 식용개 산업 종사자들은 언론에 민감했고 취재 요청에도 폐쇄적으로 대응했다. 특히 20대 국회에서 여야 64명의 국회의원들이 동물보호법을 강화하는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식용개 산업은 강한 규제를 받게 됐다. 식용개 산업 종사자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수 밖에…. 이러한 상황에서 식용개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PD 입봉 2년차에 (맡기엔) 쉽지 않은 취재인데…”라며 주변 선배들도 나를 극구 말렸다. 나에게도 이번 취재는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심도 있는 취재를 통해 제대로 된 팩트(사실)를 내보여야 대안을 제시할 수 있고,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근거가 있을 때, 이 문제의 구조적인 해결을 바랄 수 있었다. ‘저 농장에서 잔인한 학대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제보자의 심증이라면, 어떻게든 물증을 확보하여 정황을 밝혀내는 것이 언론의 역할 아니던가. 결국 나는 몰래 카메라를 사용한 위장 취재를 선택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진실을 파헤치겠다는 내 순수한 용기(?)가 이번 취재에 불을 붙인 것이다.

물론, 문제 될 상황은 항상 염두에 두었다. 농장 운영 과정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일체의 조작이나 요구를 하지 않았고, 취재 대상에 대한 초상권과 인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농장주의 얼굴 모자이크와 음성변조는 물론, 농장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모든 컷들을 가렸다.

특히 이 사안은 이해관계가 걸려있기 때문에 확실한 자료와 근거를 가지고 완벽하게 방송을 준비해야 했다. 실수나 오류가 생기면, 모든 취재가 허수로 돌아간다는 생각 때문에 늘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는 탐사보도물에서 오랜 제작 경험을 가진 파트너 작가의 조언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

▲ EBS <하나뿐인 지구> ‘당신이 몰랐던 식용개 이야기’(9월 30일 방송) ⓒEBS

그렇게 한 달 동안 우리는 몰래카메라와 녹음기를 들고 전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개시장을 포함, 보신탕집, 식용견 경매장 등 식용개와 관련된 업장들을 끈질기게 돌아다녔다. 형사처럼 잠복해 있다가 강아지 학대 현장을 포착하기도 하고, 때로는 흥신소 직원이라도 된 마냥 개들을 실어 나르는 운송차량을 추적하기도 했다. 이렇게 PD가 별짓(?)을 다한 덕분일까? 우리는 뜬장에서 태어나 사육되고 운송되며, 결국 도축돼 식탁 위에 오르기까지 한 식용개의 일생을 모두 카메라에 충실히 담아낼 수 있었다.

방송 일주일 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SNS에 올라온 예고편은 방송 직전에 이미 조회수 30만을 훌쩍 넘어서고, 3000건 이상 공유됐다. 방송이 나가기도 전에 입소문이 빠르게 퍼지며 화제가 된 것이다. 고요한 호수같던 우리 방송국에도 파문이 일었다. 매일 같이 고객센터로 전국의 수십 건의 항의 전화가 오는가 하면, “밤길 조심하라”는 등 익명의 협박 문자를 받기도 했다.

급기야 모 육견 단체에서 방송 중지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방송국에 쳐들어오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들이 부장의 멱살을 잡고 담당 PD 나오라며 고성을 지르는 통에 방송국 로비는 순식간에 공포 분위기로 돌변했다. 면담 자리에서 육견단체 관계자들과 농장주들은 PD의 위장 취재에 문제제기를 하며 방송 중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농장주와 육견단체 관계자들조차 부정할 수 없었던 건 바로 몰래카메라에 기록된 화면이었다. 돈 앞에서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농장주의 태도는 그 자체로 진실이었다. 설령 모든 개농장이 문제의 농장과 같지는 않다고 할지언정, 잘못된 행위는 바로 잡아야 마땅한 것이었다.

▲ EBS <하나뿐인 지구> ‘당신이 몰랐던 식용개 이야기’(9월 30일 방송) ⓒEBS

결국 방송은 무사히 나갔고, 방송국 앞 집회신고는 철회되었다. 문제의 농장은 현재 고발장이 접수된 상황이며 법적인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제대로 된 수사와 엄중한 처벌을 통해 두 번 다시 이런 잔인한 학대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무엇보다 이 농장주가 법의 심판을 받기에 앞서, 대중들에게 따가운 질타를 받고 충분히 부끄러움을 느끼기를 바랐다. ‘저항할 수 없는 약자’인 철창 속 개들에게 인간의 잔인함과 탐욕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가. 취재를 하면서 가장 분노가 치밀고 미워진 건 ‘인간’ 그 자체였다.

개고기를 먹느냐 마느냐의 찬반논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야 봐야 할 문제. 지극히 당연하지만 늘 망각해온 사실이 있다면, 행복과 자유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함께 살아가는 다른 동물의 고통을 줄여나갈 방법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방송이 나간 후에도 줄줄이 보도되고 있는 동물 학대 기사들(<실종된 반려견 올드 잉글리쉬 쉽독을 잡아먹은 마을 주민들(2016.10.04)>, <새끼 오리 토막낸 뒤 강아지에게 억지로 먹인 남성(2016.10.04.)>)을 접하는 마음은 어쩐지 허무하고 속상하다.

▲ EBS <하나뿐인 지구> ‘당신이 몰랐던 식용개 이야기’(9월 30일 방송)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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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2016-10-18 14:31:34
너무 너무 잘읽었습니다.너무나도마음이 울컥합니다...저도 이방송을 보았구.. 정말 ..이런PD님이 계셔셔.,세상밖으로 알게해주셔셔..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식용개...벌써50년이 넘은거같애요...ㅠㅠ 하루빨리 ... 없어졌음하는바램이크고..여러 동물단체에서도..끊임없이 노력하고있습니다.. 동물보호법강화가 빨리 추진됐음 하는 바램입니다..국민들이 많이 식용개대해..둥몰에대해 관심과 인식이 바뀌었으면합니다....

신** 2016-10-18 14:30:54
너무 너무 잘읽었습니다.너무나도마음이 울컥합니다...저도 이방송을 보았구.. 정말 ..이런PD님이 계셔셔.,세상밖으로 알게해주셔셔..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식용개...벌써50년이 넘은거같애요...ㅠㅠ 하루빨리 ... 없어졌음하는바램이크고..여러 동물단체에서도..끊임없이 노력하고있습니다.. 동물보호법강화가 빨리 추진됐음 하는 바램입니다..국민들이 많이 식용개대해..둥몰에대해 관심과 인식이 바뀌었으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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