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성폭력 범죄 보도의 끝은 ‘피해여성=꽃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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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 ‘미디어 속 여성차별과 폭력’ 토론회…여성민우회, 지상파·종편 성폭력 보도 분석

“연예인 성폭력 범죄 의혹과 관련한 사건을 보도하면서 언론은 ‘고소인(피해자)’이 사건 이후 태연하게 행동했으며 격렬하게 저항했는지 확실히 않다는 등의 내용을 내보내 고소인들이 성폭력 피해자가 아닐 것이라고 추정하게 만들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 속 이미지를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통념을 기반으로 하는 보도는 대중들로 하여금 피해사실과 피해자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방송 등 미디어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 보도 등에 있어 차별적인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 등을 보도할때 CCTV와 삽화 등을 통해 선정성에 집중하고, 연예인 성폭력 범죄와 관련해선 피해자(고소인)들에 대한 ‘꽃뱀 신화’를 유포하는 등의 모습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12일 서울 저동 인권위 인권교육센터에서 ‘미디어 속 여성차별과 폭력’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인권위는 이날 토론회에서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이하 민우회)에 의뢰해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성범죄와 여성 살해 사건과 관련한 지상파 방송 3사(KBS‧MBC‧SBS) 및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4사(JTBC‧TV조선‧채널A‧MBN)의 방송 뉴스를 모니터링한 결과를 발표했다.

모니터를 진행한 민우회는 “이들 방송사가 무분별하게 성폭력 및 여성 살해 보도를 하는 과정에서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이런 보도 행태가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 성폭력 관련 통념을 강화, 피해자의 책임 유발론 

“다 착실한 사람들이잖아요. 기사난 건 60~70% 과장해서 나오고 있어요.”
“(여교사가) 안 왔으면 문제가 없었죠. (만취해서) 가라고 했는데...”
“남자들이니까 아시잖아요. 혼자 사는 남자들이 (나이가 80이라도) 그런 유혹 앞에서는 견딜 수 없어” (6월 7일 ‘신안 여교사 성폭행 사건’ 채널A 보도에서 인용된 신안 주민들 인터뷰 일부)

이날 모니터 결과를 발표한 이윤소 민우회 사무국장은 신안군 여교사 성폭행 사건 관련 보도에서 언론이 성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묻는, 즉 책임을 전가하는 보도가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이윤소 사무국장은 “채널A의 경우 주민들의 인터뷰를 인용하면서 ‘황당한 감싸기’, ‘엉뚱한 주장’ 등의 설명을 덧붙이기는 했지만, 이런 내용들은 인용 자체만으로도 대중들에게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 CCTV 등을 통한 선정적인 화면 구성, 범행 수법·과정 등 상세한 보도

박유천 성폭행 논란 당시, 박 씨를 고소한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한 범행 장소가 화장실이었다는 점이 밝혀지자 종편에선 관련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성폭력이 이뤄졌는지 상세하게 보도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건을 보도한 대다수 방송사들은 관련 CCTV 영상을 확보해 살해 장소에 피해자와 피의자, 그리고 피해자의 지인, 행인 등이 드나드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그러면서 “피의자가 피해자를 살해하기 전 총 6명의 남성을 그냥 보냈다”는 식으로 범죄 수법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또한 성폭력 범죄 등을 보도할 때 삽화와 재연 등을 통해 사건의 한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경우도 많았다.

이 사무국장은 “모니터링 결과 총 61건의 뉴스 보도에서 이런 문제점이 발견됐다”며 “영상을 구하지 못할 경우에는 삽화나 상황재연 등의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범죄 과정이나 현장 검증을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보도행태는 성범죄나 살인 사건 그 자체보다는 구체적인 피해 사실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한 것으로, ‘옐로 저널리즘(선정적인 보도로 관심을 유도하는 보도 행태)’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 무분별한 수사 상황 보도, 꽃뱀 신화의 유포

최근 발생한 유명인 성범죄 의혹 관련해서 보통 유명인은 가해자 혹은 피고소인이 되고, 상대방은 피해자 혹은 고소인이 된다. 그런데 이 중 대다수가 피고소인은 ‘무혐의’, 고소인은 ‘무고죄’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허민숙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경찰의 무분별한 수사 정보 제공과 언론의 무지‧부주의로 인해 대중들이 ‘무고죄’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에 따르면, 무고죄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했는데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증거를 전혀 찾을 수가 없고, 이런 사건이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을 때, 그리고 진술을 한 피해자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걸 명확히 알면서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 경우,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인정한 경우 이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되어야만 무고죄가 성립이 된다.

허 교수는 “그러나 한국에서는 수사 중 검사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무고죄가 결정된다”며 “피해자가 조사 과정에서 수치심, 부담감, 불안감을 느끼고 자신이 제출한 증거가 공정한 수사가 아니라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데 이용되며, 수사기관이 수사 의지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그때 고소를 취하한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이어 “이런 수사 정보가 경찰을 거쳐 언론으로 흘려지면, 언론은 곧바로 ‘무혐의’라고 보도하는데, 대중들은 ‘무혐의=무고죄 성립’을 동일시해서 피해자를 ‘꽃뱀’ 취급하기까지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허 교수는 “언론의 임무는 전후 사정을 제대로 알려 문제의 본질을 밝히는 것인데, 수사가 종결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언론이 경찰로부터 받은 수사정보로 부정확한 보도를 일삼아 오히려 피해자가 비난 받는 상황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리우 올림픽 기간 논란이었던 ‘스포츠 보도의 성차별’ 문제에 대한 논의도 진행됐다.

민우회는 리우 올림픽이 개최된 지난 8월 한 달간 지상파 방송 3사(KBS‧MBC‧SBS)와 종편 3사(JTBC‧TV조선‧채널 A)의 메인뉴스를 모니터링한 결과, 방송사들이 성별에 따른 차별 용어를 사용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여성 선수의 활약에 대해 보도할 땐 ‘요정’, ‘진주’, ‘인어’, ‘낭자’ 등 보호가 필요한 듯한 여성적 이미지의 용어들을 사용한 반면, 남성 선수에 대해선 ‘인간 탄환’, ‘마린보이’, ‘황제’ 등 강인함과 권위를 포함하고 있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설명이다.

민우회는 “이런 보도와 중계는 여성 선수를 여성으로만 보게 하고, 전문가로서의 실력이 가려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성별이 아닌 실력과 기량을 중심으로 한 보도와 중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에선 스포츠 보도와 성범죄, 여성 살해 관련 보도 등에서 성차별이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앞서 방심위는 지난 8월 SBS의 리우올림픽 여자 유도경기 중계 당시 “살결이 야들야들한데” 등의 발언이 나온 데 대해 심의를 진행한 후 “문제없음”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문소영 <서울신문> 기자는 “성차별 보도 행태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방심위가 앞장서야 하는데, 현재는 방심위원이 전원 남성으로 구성돼 있어 이런 문제가 잘 시정되지 않는 것 같다”며 “방심위의 성별 구성을 다양화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모니터링을 진행한 민우회는 “보도를 맡는 기자 개개인이 인권보도 가이드라인 등을 숙지해야 하며, 방송통신위원회도 성평등, 인권과 관련한 방송평가 항목을 신설해 이를 평가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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