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에 오른 우리의 인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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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

오지랖의 삶을 살다 보니 거리에서 별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중에는 꽤 깊이 사귀고 새로운 인연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다음 기회가 되면 꼭 소개하고 싶은 희성, 성노 두 청년이 그 예다. 요즘 핫한 <불타는 청춘>을 패러디 하여, ‘뜨거운 청춘’이라는 팀을 결성하고 맹렬히 쟁투 중인 청년 난민들이다. 왕십리 행당동에서 쫓겨난 재개발 철거민인 이 친구들은 이제 단순히 자신들에게 들이닥친 부당한 행사에 대해서만 아닌, 도심 이곳저곳에서 자행되는 부정한 현실에 몸으로 결합하는 열성 중이다. 지금은 아현동 작은 촛불을 시민들과 함께 지켜나가고 있는 터인데, 이들로부터 사부라 불리는 나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참한 활동을 알리고 싶다.

오늘은 이들처럼 선한, 힘든 운동에 열중인 다른 사람 한 명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임인자. 요즘 가장 주목받는 젊은 연극인이 아닐까 싶다. 그런 그녀를 나는 몇 해 전 형제복지원 싸움을 하던 중 만났다. 한종선이라는 피해자와 함께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을 쓰면서 이 문제를 세상에 다시 드러낸 나는, 이 싸움이 인권단체나 대책위 주도로 가는 게 재미없었다. 세월호 싸움을 결국은 피해자 유가족들이 끌어가듯이, 형제복지원 투쟁도 피해자당사자들이 중심이 되어 활동을 펼쳐야 한다고 종선에게 계속해 당부했다. 그렇게 해서 꾸려진 피해자 모임에 당시 인자는 총무라는 이름으로 참여했다. 당사자도, 피해자도 아니면서.

그녀는 한종선과 같은 인간들을 짐승으로 분류하고 우리에 감금해버린 국가폭력의 문제를 집요하게 시비했다. 이들을 부랑인으로 간주하고 ‘우리’로부터 배제시킴으로써 결국은 국가권력의 인간 청소 작업에 가담한 나의 책임을 철저하게 되물었다. 민주화의 주도적 서사, 산업화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삭제되어버린 대감금의 또 다른 현대사 복구를 위한 노력에 악착같이 달라붙었다. 한국의 강제수용소 문제, 한국의 아우슈비츠 현실로부터 눈 돌린 채 진행되는 학계의 허위적인 ‘호모 사케르’ 유행병을 통렬하게 풍자했다. 천성이 이야기꾼인 그녀는 빼어난 글과 진심의 활동으로 바로 이 땅의 ‘벌거벗은 삶들’의 고난사 기록을 위해, 이들의 사회 귀환과 공동체 구성을 위해 오직 인간적으로 힘썼다.

온갖 부당한 욕도 봐야 했다. 대책위로부터는 피해자들을 이간질시킨다는 말도 안 되는 비난을, 거꾸로 일부 피해자들로부터는 외부인이 다해먹는다는 어처구니없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흥분한 피해자들끼리의 거친 싸움판에 끼어있어야 했고, 언젠가는 힘들어 자해소동을 벌인 전주 종선의 얼음 같이 차디찬 셋방에 밤새워 달려가야 했다. 우연히 한종선을 만나 함께 책을 쓰고 당사자 모임을 만들라 재촉하면서 자연스레 엮여버린 나와는 전혀 다른 처지의 그녀였다. 순전히 인간의 이야기에 관심 갖고 인권의 문제에 누구보다 깊은 책임을 느껴 순전히 자발적으로 결합한 인자씨다. 그런 그녀는 이제 누구보다 종선과, 종선과 같은 친구들과 더 가까운 친구가 됐다.

▲ 연극 <시민L-낙인과 배제의 개인사> 10월 13~16일, 대학로 연우소극장

참 할 일이 많은 친구다. 청년 연극인, 여성 예술가, 진보적 작가로서 제 본연의 책무를 소홀히 하는 법이 없다. 좋은 연극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리며, 훌륭한 전시로 광주 비엔날레 등에서 높은 평판을 당당히 얻어낸다. 그렇게 인정받은 작가로서 개인 활동에만 전념하면 되는데, 그녀는 시대의 모순과도 딱 맞닥뜨린다. 작가활동가로서 용기를 내, 올해 내내 한국 연극계 아니 예술계 전반에 들씌워진 검열의 수상한 현실을 가차 없이 폭로했다. 모든 일에 열심이고 열성인 우리 인자씨는 부당한 검열 정황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국가검열은 옳지 않다는 단순 명백한 신념을 갖고 부정한 시류를 악착같이 거슬렀다.

무서운 게 없어 보이는, 참 용감한 인자씨. 그녀는 진실만을 이야기로 구했고, 진실을 위배한 국가를 말로써 심문했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자유로운 창작이라는 가치를 달고 검열 현실을 고발했다. 검열하는 국가권력을, 검열기관으로 전락한 예술위원회를 고발했다. 물론 검열의 정황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데는 여러 많은 이들의 수고, 이런저런 계기가 있었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수줍은 연극인 박근형 선생을 둘러싼 이상한 일도 검열문제를 회자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내 눈에는 열성인 그녀가 단연 돋보였다. 형제복지원으로 대표되는 대감금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국가검열의 퇴행적 전체주의는 결코 허락할 수 없다는 여성 청년 작가의 단호한 휴머니즘이 빛났다.

마침내 그녀가 끊임없이 고발했던 국가검열, 정치검열, 인간검열의 어두운 막이 폭로됐다. 1만 명에 이르는, 엄청난 수의 예술인과 작가, 창작자들의 명단이 세상에 까발려졌다. 국가가, 정권이 절대 그런 일 없다고 잡아 뗀 배제와 훈육의 블랙리스트다. 특정 정치인을 지지한다고, 세월호 시국선언을 하고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찍힌 총 9473명의 통제 리스트다. 여러 분야를 총망라한, 명단에 올라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오르지 않아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명단이다. 특정 인구를 가난하고 길거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구속·살해한 부정한 국가권력은 폭력적인 낙인찍기, 야만적인 예술 부정의 파시즘으로 그 끔찍한 귀환을 재차 확인시켜준다.

이를 예고하고 경고했던 우리의 인자씨도 저 흉악한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다. 일일이 체크해 보니, 혹시나 했지만 역시다다. 그녀는 이 뉴스를 어떻게 접하고 있을까? 그녀가 느꼈을 감정은 슬픔일까, 분노일까, 아님 두려움일까? 그 전부일까, 아니면 악의의 검열체제에 대한 실소의 웃음이 먼저 터져 나왔을까? 검열문제를 집요하게 고발한 한 젊은 창작자의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 총체적인, 총망라의 검열국가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가? 이 집단적인 인신구속, 의도적인 인간 통제의 사태를 우리는 대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다수의 예술가들을 상대로 자행되는 반문화적 분할 통치는 특정 비선의 제작자를 위한 특혜만큼이나 폭력적이고 부정하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역사적 전체주의는 인간의 신체와 영혼 그 두 개를 동시에 노린다. 죽음에 노출된 형제복지원의 벌거벗은 삶들이 전자의 실례라면, 악의적인 차별에 고스란히 노출된 블랙리스트의 예술가들은 후자의 결정적 증거다. 외부적이고 내부적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감금의 양상에 있어서는 그 어떤 차이도 없다. 맞다. 저 악독한 블랙리스트는 영혼의 감금 목록이다. 자유로운 의사표현, 자율적인 예술창작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파시즘의 구속 리스트다. 이 폭력적인 목록에 오른 인자씨여, 그래서 너무나 서글픈가? 우리의 인자씨는 주눅이 들기는커녕 그 씩씩한 웃음을 씩 날리며 대학로로 향할 것이다. 자신이 만든 연극 ‘시민L, 낙인과 배제의 개인사’를 올리기 위해서다. 검열 공화국에 딱 어울리는 검열 이야기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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