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시사교양 PD, 아직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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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기의 ‘톡톡’ 미디어 수다방] 시사 프로그램 존재이유를 증명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영화 <다이빙벨> ‘논란’이 불거질 당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와 토크쇼를 진행한 적이 있다. <다이빙벨>에 대한 ‘평가’를 묻는 이상호 기자의 질문에 필자는 이렇게 답했던 것 같다.

“이상호 기자에겐 미안하지만 <다이빙벨>이 빼어난 수작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그 프로그램에 나가는 ‘정도’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실 이상호 기자가 이런 문제제기를 영화를 통해 해야 하는 상황을 오히려 이상하게 봐야 하는 거죠. 현재 한국의 시사프로그램이 얼마나 무기력한 지는 <다이빙벨>이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이 평가는 지금도 유효하다. 최근 개봉한 영화 <자백>의 경우 <다이빙벨>과는 ‘다른 맥락’에서 비슷한 평가를 내릴 것 같다. 물론 영화의 밀도감이나 흡입력 그리고 사안의 본질을 파헤치려는 끈질긴 추적 등에서 두 영화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자백> 역시 영화보다는 <PD수첩>이나 <추적60분>을 통해 나갔어야 할 ‘프로그램’이다.

▲ 10월 2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살수차 9호의 미스터리 -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의 진실’ ⓒSBS

‘다이빙벨’과 ‘자백’이 시청자가 아닌 관객을 ‘찾아가야’ 하는 현실

<다이빙벨>과 <자백>이 시청자가 아닌 관객을 ‘찾아가야’ 하는 현실, TV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어야 하는 현실 -우리 앞에 놓인 이 두 상황은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이 여전히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22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의 진실>은 그런 점에서 시사 프로그램의 ‘정상화’ 가능성을 보여준 일종의 ‘사건’이다. 이날 <그것이 알고 싶다>는 시사프로그램이 지녀야 할 ‘기본기’ - 검증과 추적 그리고 사안의 본질 파헤치기에 충실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고 백남기 농민에게 발포했던 물대포의 실제 위력을 알아보기 위해 당시 상황과 비슷한 조건에서 비교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직사물대포의 위력은 엄청났다. 강화유리가 깨졌고, 철강도 물대포의 수압에 휘어지면서 튕겨져 나갔다. 수백 장 쌓아올린 벽돌은 부서졌고, 일부는 깨지기도 했다. 이번 실험에 참여한 살수차 직원은 “사람이 (이런 수압의 물대포에) 맞으면 살이 다 찢어져 나간다”고 말했다.

검경이 논란을 부채질 했던 백남기 농민 ‘사인’에 대해서도 <그것이 알고 싶다>는 전문가 검증에 나섰다. 윤일규 신경외과 전문의는 인터뷰에서 백남기 농민 당시 상태에 대해 “두개골이 박살이 났는데 이게 어떻게 단순골절이냐”며 “의학적으로 이미 뇌간사망 상태의 환자를 연명 치료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 10월 2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살수차 9호의 미스터리 -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의 진실’ ⓒSBS

이미 백남기 농민 주치의였던 백선하 서울대병원 교수 주장을 반박하는 숱한 증언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를 주목한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은 없었다. 아니 지상파는 백남기 농민이 쓰러져서 사망에 이를 때까지, 심지어 사인과 관련한 불필요한 논란이 계속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이를 검증하려는 노력은커녕 시도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날 <그것이 알고 싶다> ‘백남기 농민 편’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호평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검증과 추적, 본질 파헤치기라는 ‘기본기’에 충실했던 ‘그것이 알고 싶다’

하지만 필자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가장 주목해서 봐야할 부분은 프로그램 후반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 물대포의 위력’과 ‘백남기 농민 사인과 관련한 검증’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이 사안의 본질적인 측면 - 백남기 농민이 왜 민중총궐기에 참여하려 했는지, 10만 여 명의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외치려 했는지를 <그것이 알고 싶다>는 외면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집회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또한 경찰은 그 집회가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다. 이 과정에서 공권력에 의한 희생이 있었다면 그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것이 이뤄지지 않은 채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진행자 김상중의 마무리 멘트가 돋보인 이유다.

그런데 한편에선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그것이 알고 싶다>가 10여 년 전에 똑같은 내용을 방송했다면 ‘이 정도’ 주목과 호평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하나의 가정이자 추정일 뿐이지만 ‘범작’에 그쳤을 지도 모른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적어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은 지금처럼 존재감이 없는 무기력한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 10월 2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살수차 9호의 미스터리 -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의 진실’ ⓒSBS

‘백남기 농민’ 편이 공영방송이 아니라 민영방송인 SBS에서 방송됐다는 사실은 필자로 하여금 공영방송의 역할과 존재 이유에 대해 회의하게 만든다. 공영방송에 매달 수신료를 꼬박꼬박 납부하는 한국의 시청자들은 언제까지 <다이빙벨>과 <자백>과 같은 ‘작품’을 보기 위해 수신료 이외에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걸까.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백남기 농민’ 편은 그런 점에서 공영방송사 시사교양 PD들에 보내는 일종의 ‘옐로우 카드’인지도 모른다. 두 번 연속 ‘옐로우 카드’를 받으면 어찌 될까? 그 답은 지상파 구성원들이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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