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편의를 위해 안전한 통신을 포기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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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오병일 진보인권연구소 이사

지난 10월 14일, 카카오가 다시 감청 영장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결정의 배경에는 그 전날 내려진, ‘자주 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한 코리아연대’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대법원이 재판에 증거로 제출된 카카오톡 감청 내용이 위법하게 수집되었다며 증거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 상 감청은 ‘실시간 감청’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미 송수신이 완료되어 서버나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는 통상 ‘압수수색’ 영장을 통해 집행된다. 그런데, 카카오는 수사기관의 감청 영장 집행 요구에 대해, 이미 수신이 완료되어 카카오 서버에 저장된 내용을 수사기관에 제공하는 방식으로 협조해온 것이다. 현재로서는 카카오가 ‘실시간’으로 감청에 협조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사실 시민사회 단체들은 이미 이를 ‘편법 감청’이라고 비판해 왔다. 카카오는 자신이 할 수 없는 것(감청)을 굳이 편법을 써서 해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지난 2014년 말 카카오톡 사찰 논란이 일면서 ‘텔레그램’으로의 대규모 사이버 망명 사태가 벌어지자, 카카오는 그 해 11월 13일 카카오톡의 감청 협조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정부와 새누리당, 보수언론의 압박이 심해지자 2015년 10월 6일, 다시 감청에 협조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비록 단톡방의 경우 수사 대상자를 제외한 나머지 대화 참여자들은 익명으로 처리하겠다고 했지만, 근본적으로 카카오가 감청에 협조할 의무는 없었다. 카카오는 감청을 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카카오가 실시간 감청을 할 능력이 있었다면, 그 이전에 감히 감청을 거부할 수 있었겠는가? 검찰이나 카카오나 사실상 감청을 할 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위법하게’ 감청 영장을 집행해온 셈이다.

그러나 이 판결에 대해 검찰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대법원이 견해를 변경하지 않으면, 향후 ‘입법적, 기술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는 통신 사업자에게 감청설비 구비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5년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이 SNS 사업자와 이동통신사를 포함한 통신 사업자들에게 감청 설비 구비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통비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 이전 18대 국회에서도 유사한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 되었다가 폐기된 바 있다.

▲ 지난 2014년 10월 검찰이 본인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비롯해 3000명에 달하는 카카오톡 대화상대방의 개인정보를 사찰했다는 추정치를 폭로했던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같은해 12월 23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자신의 재판에서 확인된 카카오톡 증거자료의 위법성과 대응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는 비단 카카오톡 때문이 아니라, 감청 설비가 없어서 휴대전화 감청이 안된다고 불만을 표출해오던 국가정보원과 검경의 숙원 과제였다. (물론 국가정보원은 자체 감청 설비를 통해서 감청을 해온 것이 드러나기도 했고, RCS라는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하기도 했다. 지금 휴대전화 감청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믿을 수는 없다.)

감청 설비 의무화를 둘러싼 논란은 해외에서의 암호화를 둘러싼 논란과 논리적으로 유사한 면이 있다. 올해 초 테러사건 용의자의 아이폰 잠금 해제에 협조해 달라는 미국 FBI의 요구를 애플이 거부하여 논란이 된 바 있다. FBI가 다른 업체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굳이 애플의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게 되었지만, 이 이슈는 최근 빈발하고 있는 테러 사건들을 계기로 촉발된 암호화를 둘러싼 세계적인 논쟁을 보여주고 있다.

수사기관은 수사상 필요성을 거론하며 언제든지 자신들이 암호화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업체들이 수사기관에 백도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안 전문가들과 인권 활동가들은 이는 암호 시스템 전체를 약화시켜, 수사기관 뿐만 아니라 제3자(범죄자나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이 될 수도 있다) 역시 접근할 수 있어 이용자의 보안과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게 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스노든이 미 국가안보국(NSA)의 대량 감청을 폭로한 이후, 신뢰가 저하된 IT 업체들은 애플과 같이 자신들도 접근할 수 없는 암호 시스템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만일 백도어가 만들어진다면 이들은 다시 이용자들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이미 미국은 90년대 암호 전쟁(Crypto War)을 겪었다. 미국 정부의 암호 수출 규제와 클리퍼 칩과 같은 백도어 시스템이 논란이 되었다. 클리퍼 칩은 전화에 들어가는 암호화 칩으로 통신 내용을 암호화하지만 수사 기관은 이에 접근할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법집행 기관의 요구와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했지만, 사회적인 반발과 함께 이 칩의 결함이 발견되면서 결국 이 사업은 폐기되었다. 보안 전문가들과 인권 활동가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제2의 암호 전쟁을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불필요한 논란으로 보고 있다.

카카오톡 사찰 논란 이후 카카오는 자신들의 서버에도 암호화된 형태로 저장되는 ‘프라이버시 모드’(비밀채팅)를 도입하기도 했다. 만일 감청 설비 의무화법이 통과되어 카카오에게 감청할 수 있는 기술적인 방법을 개발하라고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카카오는 비밀채팅 서비스를 포기해야 하며, 이는 또 다른 망명 사태를 불러올 것이다. 서버도 해외에 있고 암호화된 통신을 제공하는 서비스들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카카오톡을 쓸 이유는 없지 않은가?

감청이 기술적으로 가능할 경우에 적법한 감청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수사 상 필요하다고 세상 모든 것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떼를 써서는 안된다. 가정 폭력이 발생하고 집에 강도가 들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가정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온라인 세계는 이미 오프라인보다 더욱 많은 ‘디지털 족적’을 남기는 공간이다. 휴대전화를 통해 24시간 내 위치가 기지국에 기록되고, 인터넷에 접속하면 나의 온라인 행적과 취향과 대화 내용이 여기저기에 기록으로 남겨진다.

모든 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투명한 세상. 국정원과 수사기관에게는 편리할지 몰라도, 사람들이 살 만한 세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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