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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은 PD의 뽕짝이 내게로 온 날]

지난 9월에 경주 지진 발생으로 대한민국이 크게 동요했다. 멀리 전라북도 전주에서도 느껴진 진동이니만큼, 진앙 인근 주민들의 충격과 불안은 오죽했을까 싶다. 며칠 동안 여진도 이어졌고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안전 점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잇따랐다. 문화재에 대한 관심도 급증했다. 천년 고도 경주를 사랑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국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단일 도시 여행지로 경주를 가장 많이 다녀왔는지도 모른다. 현재 중장년층의 수학여행과 신혼여행지로 그만큼 경주는 주목받던 도시였다.

경주의 첫 기억이 담긴 어린 시절의 사진 한 장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안개 자욱한 송림을 뒤로하고, 외할머니와 어머니와 함께 서 있는 머리를 양 갈래로 곱게 땋은 유치원생 어린이가 바로 나였다. 3대가 나란히 있는 흔치 않은 장면 중의 하나였는데, 그 내막을 들어보면 좀 서글픈 사연이 담겨있다. 월남 파병을 자원한 큰 외삼촌을 부산에서 배웅하고 경주로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부산항의 어마어마한 규모와 월남 파병 용사를 배웅하는 가족들의 행렬, 뭔가 눈물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어린 나이에도 특별했던 것 같다. 누군가 나를 어깨에 무동을 태워서 그 모든 광경을 보여주었다.

부산항 제 3부두는 1965년부터 1974년까지 월남전 참전자들의 수송전용 부두로, 부모·형제의 이별에 통곡하며 눈물 흘렸던 이별의 부두였다. 당시 이곳 부두에서 가족과 병사들이 만날 수 없었지만, 가족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제3부두로 나와 배를 타고 떠나는 자식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송별인사를 나눴다. 제 3부두에서는 33만 5517명의 병사가 월남으로 떠나서 그 중 5099명이 전사하여 돌아오지 못했다. 또 1만 1232명의 전상자들과 수만 명의 고엽제 후유증 환자들이 남아서 아직도 전쟁의 상흔으로 고통 받고 있다. 지금은 부산 제 3부두가 북항 재개발에 밀려서 옛 모습은 사라지고 없으며 이정표의 흔적만 남아있다고 한다.

얼마나 멀고먼지 그리운 서울은
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갑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
배 떠난 부두에서 울고 있지 않을 것을
아아~바다가 육지라면 이별은 없었을 것을
어제 온 연락선은 육지로 가는데
할 말이 하도 많아 하고파도 못합니다
이 몸이 철새라면 이 몸이 철새라면
뱃길에 훨훨 날아 어데론지 가련만은
아아~바다가 육지라면 눈물은 없었을 것을

(조미미 노래 / <바다가 육지라면> 가사)

외할머니 입장에서는 큰아들을 사지(死地)로 보내는 심정으로, 그 마음이 얼마나 짠하고 서글펐을까! 그렇게 이뤄진 가족여행이라서인지 사진 속 외할머니의 표정에는 여행을 만끽하는 자유로움이 없었다. 오직 아들의 안위만이 걱정이셨을 것이다. 다행히 외삼촌은 무사히 복무를 마치고 당시에는 귀하던 TV까지 들고 귀향을 해서 외갓집의 자랑이 되셨다.

경주여행의 두 번째 사진은 중학교 수학여행 때 찍은 단체 사진이다. 불국사 백운교의 계단에 줄지어 앉아서 찍은 단체 사진은 똑같은 단발머리에 하얀색 교복을 입고 있어서 사실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다. 나도 내 얼굴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그 가운데 기억나는 친구가 있다. 얼굴이 하얗고 눈이 커다란 J는 곡예사의 첫사랑을 자주 불렀다. 각 반 대항 장기자랑에서 이 노래를 불러 상품도 탔던 것 같다.

줄을 타며 행복했지 춤을 추면 신이 났지
손풍금을 울리면서 사랑노래 불렀었지
공 굴리며 좋아했지 노래하면 즐거웠지
흰 분칠에 빨간 코로 사랑얘기 들어줬지
영원히 사랑하자 맹세 했었지
죽어도 변치말자 언약 했었지
울어 봐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어릿광대의 서글픈 사랑
줄을 타며 좋아했지 춤을 추며 신이 났지
손풍금을 울리면서 사랑노래 불렀었지

(박경애 노래 / <곡예사의 첫사랑> 가사 중)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서 초등학교 때는 남원 KBS 어린이 노래자랑 공개방송을 쫓아다니고 중고등학교 내내 합창반에서 활동했던 J는 대학졸업 후 유치원을 운영하며 열심히 살다가, 2∼3년 전 급작스러운 뇌출혈로 생을 마감했다. 자녀 3남매 중 막내가 초등학생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녀의 이른 이별이 너무 안타까웠다. <곡예사의 첫사랑>을 들으면 J의 서글서글한 눈매와 유쾌한 입담이 생각난다. 저 세상에서도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그 후 출장 및 가족여행 등 두어 번의 경주행이 있었다. 갈 때마다 한두 개씩 추억이 쌓이고 경주에 대한 사랑과 애정도 깊어진다. 3년 전에는 경주 근교에서 결혼한 후배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일행이 경주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그해 경주 불국사를 생각하니 어느새 몸이 먼저 기억하고 웅크려진다. 그만큼 추었던 날이었다. 우리 일행은 모처럼의 경주 나들이에 토함산과 석굴암을 보기로 하고 칼바람을 헤치며 토함산을 올랐다. 일출은 보지 못했으나 꽁꽁 동여맨 외투 사이로 찬바람 대신 자비의 바람이 불어온다고 생각하니 차츰 마음이 훈훈해졌던 날이다.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된 석굴암은 다시 보아도 경이롭다. 어떻게 이렇게 석굴을 만들고 천장을 구축해서 부처님을 모셨는지, 그 정성과 정교함에 절로 숭고한 마음이 들고 고개가 숙어진다.

토함산에 올랐어라 해를 안고 앉았어라
가슴속에 품었어라 세월도 아픔도 품어버렸어라
터져 부서질 듯 미소 짓는 님의 얼굴에도
천년의 풍파세월 담겼어라
바람 속에 실렸어라 흙이 되어 남았어라
님들의 하신양 가슴속에 사무쳐서 좋았어라 아하
한발 두발 걸어서 올라라 맨발로 땀 흘려 올라라
그 몸뚱이 하나 발바닥 둘을 천년의 두께로 떠받쳐라
산산히 가루져 공중에 흩어진 아침
그 빛을 기다려
하늘을 우러러 미소로 웃는 돌이 되거라
힘차게 뻗었어라 하늘 향해 벌렸어라
팔을든 채 이대로 또다시 천년을 더 하겠어라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찾는 님 하나 있어
천년 더한 이 가슴을 딛고 서게 아하

(송창식 노래 <토함산> 가사)

경주 지진 이후, 많은 사람들의 우려 때문인지, 불국사 홈페이지에는 ‘불국사 문제 없습니다.’라는 공지사항이 떠있다. 불안 심리로 인해서 학생들의 수학여행도 상당수 취소되어 지역 경제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고 한다. 이런 때일수록 경주를 더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혼자 조바심이 난다.

불국사에서 안개가 낀 송림을 배경으로 찍은 한 장의 사진, 외할머니와 어머니와 손녀딸의 3대가 있는 사진은 가족의 애환과 시대의 역사를 품고 있다. 그 사진마저 없었더라면 내가 어떻게 그 시대를 기억할 것인가.

불국사 백운교에서 찍은 중학교 수학여행 단체 사진 속 친구들도 이제 하나둘 사라져 간다. 해맑게 웃고 있는 여중생들은 벌써 쉰 살을 넘긴 중년이 되었지만, 백운교 계단 한 칸 한 칸마다 우정과 사랑이 걸쳐있으니 그 또한 개인의 역사다.

몇 년 전 경주근교에서 결혼했던 후배는 한 아들의 엄마가 되어서 얼마 전에는 아들 돌잔치를 거하게 치렀다는 소식이다. 그 사이, 남편은 열심히 공부해서 승진했다는 소식도 함께 들려준다. 참 잘 살아줘서 고맙고 대견하다. 그 후배 결혼식 덕분에 불국사와 토함산, 석굴암을 찾을 수 있었으니 그 또한 고마운 일이다.

경주에 지진이 났다고 다들 경주를 꺼리지만, 이런 때일수록 세계적인 우리의 문화유산도 살펴보고 아이들에게 그 가치를 알려주고 싶다. 두 아들은 사실 수학여행을 놀이동산이나 일본으로 다녀온 세대라서 경주 여행이 낯설 터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가족과 함께 다시 경주를 찾고 싶다. 가서,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 다보탑 석가탑이 든든하게 서 있는지, 석굴암이 무사한지 두루 살펴보고, 부처님은 무고하신 지 인사도 드리고 후대를 위해 정성의 돌 하나 얹고자 한다. 경주여, 부디 안녕하시라!

▲ 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필자는 대학졸업 후 신문기자를 거쳐 라디오 PD로 일하고 있다. PD로서 지역의 문화와 지역 발전을 위한 다수의 프로그램을 제작해서 이달의 PD상, 방송문화진흥회 공익프로그램 상 등을 수상했고, 수필가로서 전북여류문학회장 등의 활동을 펼쳤다. 저서로 『뽕짝이 내게로 온 날』, 『그리운 것은 멀리 있지 않다』가 있다. 전북수필문학상, 전북여류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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