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남성’의 할리우드,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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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①] 미국= 유건식 KBS America 사장

지난 18일 구글 베니스에서 ‘제4회 미디어의 성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LA’가 열렸다. 이 심포지엄은 아카데미상 수상자인 지나 데이비스(Geena Davis)가 이사장으로 있는 ‘미디어의 성에 관한 지나 데이비스 연구소’와 구글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인도 뭄바이(2월 17일)와 브라질 상파울루(3월 8일), 뉴욕(9월 22일)에 이어 LA에서 열린 이번 심포지엄엔 250여명이 참석해 구글 베니스 강당을 가득 채웠다. 국내에는 지난 9월 뉴욕에서 개최된 심포지엄을 NBC에서 보도한 것을 기사화하여 소개된 적이 있다. LA 행사에서도 뉴욕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필자가 직접 행사에 참석해 국내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은 내용을 상세히 소개한다. (편집자)

▲ 지나 데이비스의 영상 인사 ⓒ유건식

지나 데이비스 연구소, 남녀 출연 분량 자동 산출 시스템 개발의 의미

지나 데이비스 연구소는 2007년 구글의 연구 지원을 받아 LA 게티 뮤지엄 근처에 있는 마운트 세인트 마리 대학에 설치됐다. 이 연구소는 TV 속 여성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나 데이비스는 제작사들이 일부러 여성을 배제한 게 아니라 무의식적인 편견에 따른 결과라고 지적하며, 대본에서부터 남녀 배역의 비중을 조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지난 2012년 11월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BU 총회의 특별행사인 여성미디어포럼 기조연설에서도 지나 데이비스는 “여성을 소외하는 구태가 더 이상은 미디어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는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뿌리 깊게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심포지엄의 하이라이트는 구글과 남가주대학(USC)이 공동으로 영화에 출연한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를 분석해 자동으로 성별을 구별한 후, 성별에 따라 얼굴 노출과 말하는 시간을 계산하는 소프트웨어를 소개한 것이다. 여기에는 비디오, 오디오 및 자연 언어 처리 기술이 활용되었다. 이것은 지디-아이큐(GD-IQ, Geena Davis Inclusion quotient), 즉 지나 데이비스 포용지수로 불리는데, USC와 구글의 ‘신호 분석과 해석 연구소’ 소속 연구원이 2년간 참여해 개발한 결과다.

▲ <그림2> 영화 장면에서 성별 구별과 성별에 따른 시간 측정 흐름도 ⓒ유건식

이 시스템의 장점은 기존의 연구가 성별과 출연 시간을 수작업으로 파악함에 따라 에러도 많고 데이터화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을 해결한 부분이다. 이것을 활용하면 90분 영화를 15분에 분석할 수 있다. <그림 2>처럼 영화에서 성별에 따라 얼굴과 목소리 시간이 추출되는 시스템을 소개하는데, 화면상에 보이는 모든 배우의 얼굴을 컴퓨터가 인식해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 얼마나 화면에 지속적으로 나오는지 계산을 한다.

▲ <그림3> 영화 스파이(Spy)를 활용한 출연 및 목소리 시간 측정 사례 ⓒ유건식

<그림 3>에선 영화 <스파이(Spy)>를 활용하여 성별에 따른 출연 및 대사를 추출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선 화면에 얼굴이 나오지 않아도 대사가 있기 때문에 이를 구분한 후 작업을 하게 된다. 화면에는 남성이 나오지만 대사는 여성이 하는 것을 듣는 리액션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출연과 대사는 일치하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그렇기에 영화의 신(scene)별로 얼굴과 목소리를 남녀 성별에 따라 시간을 자동으로 계산하는 시스템이다.

연구팀은 2014년과 2015년 각각 흥행 성적 상위 100편씩, 총 200편의 영화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2015년 전체 영화 중에서 남성의 얼굴이 나온 화면은 28.5%였지만 여성의 얼굴이 나온 장면은 16%에 불과하였다. 남성의 목소리가 등장한 비율은 28.4%인데 비해 여성의 대사는 15.4%에 불과하였다. 그래프에서 보듯이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며, 얼굴보다는 목소리의 차이가 크게 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 <그림4> 영화 100편 중 남녀 성별 출연 및 대사 분량

연구에 강조하는 것은 무엇보다 남성 주연 영화의 경우에는 당연하겠지만, 여성 주연의 경우에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성은 22.6%인데, 여성 배우의 노출은 24.0%에 불과하고, 대사의 남녀 비율도 각각 23.9%, 26%이다. 2014년에는 대사의 분량에 있어서 여성 29.5%로 남성 17.7%에 비해 의미가 있을 정도로 차이가 있었으나, 2015년은 큰 차이가 발생하지 않았다. 공동 주연의 경우에도 여성의 출연 비율이 16%로 남성 24.8%보다 적다. 이 외에도 영화 장르 중에서는 액션인 경우에 여성과 남성의 비중만으로 볼 때는 2 대 8 정도로 가장 차이가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 남녀 차별이 심하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근거는 박스오피스 실적이다. 2015년 흥행 상위 100개 영화의 실적을 분석했을 때, 여성 주연의 영화는 평균 8994만달러로 남성 주연의 영화 평균 5773만달러보다 15.8%가 많다. 2014년 여성 주연은 1억 890만달러이고, 남성 주연은 7050만달러로 차이가 더 벌어졌다.

‘무의식적인 성 편견’에 대한 토론도 있었다. 줄리 안 크롬멧(구글 엔터테인먼터 산업 국장)이 토론을 주재하였고, 테사 블레이크(NCKS: New Orleans 감독), 필립 정(Yomyomf 대표), 앤드리아 나베도(배우), 프랭클린 네오나르도(더 블랙리스트 대표)가 토론을 펼쳤다. 토론에서는 지나 데이비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는데 공감을 하고, 헐리우드에 일하는 여성들의 권익 신장을 위한 방안이 논의되었다. 제작자들의 인식 전환이 가장 중요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특히 영화나 TV에서 남녀 차별의 해소를 위해 노력한 경험들을 나눴는데, 대표적인 예로 작가가 쓴 대본상의 배역을 큰 문제가 없으면 바꾸도록 요청하여 수정하는 것이다.

지나 데이비스는 인사말에서 “미디어가 여성들이 스테레오 타입의 역할에 갇히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여성들이 후일 전통적인 역할에 머무르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미디어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행사 캐치 프레이즈를 ‘If you can see it, you can be it’으로 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캐치 프레이즈의 의미에 대해 LA 행사를 총괄한 지나 데이비스 연구소의 매를린 디 논노(Madeline Di Nonno) CEO는 ‘영화나 TV에서 준거 집단을 발견한다면, 그것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될 것이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영화 속 인종과 나이별 출연 분량 등도 데이터화 미국 내 미디어 편견을 없애는데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이 백인 일색의 시상식이라고 비판을 받았는데, 지나 데이비스 연구소의 이러한 노력을 통해 남녀 차별뿐만 아니라 인종 차별 또한 해소할 수 있길 기대한다.

▲ 지나데이비스 연구소의 마데린 논노 CEO와 구글 줄리 A. 크롬메트 ⓒ유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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