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여전한 남녀차별, 싸우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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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②] 미국= 유건식 KBS America 사장

인류 역사를 보면 상당 기간 남성 위주로 사회가 존속했고, 근대 들어서 유럽 중심으로 보편적 인권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대접받지 못했던 여성의 권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미국에선 미국 여성 운동의 시발점으로 <레이디스 매거진(Ladies Magazine)>에 대한 남부 여성의 투서를 꼽고 있다. 이후 양성평등을 위해 도입된 주요한 제도로는 참정권과 임금 차별 금지가 있다. 1920년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참정권을 가질 수 있도록 “여성 보통 선거에 관한 법”이 발효되었다(미시시피주는 1984년 인정). 남녀 임금 차별 금지를 위해 1949년에 “남녀임금차별 금지법”이 제정되었고, 매년 4월 12일을 남녀 임금평등의 날로 정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같은 일을 하는 남자가 1달러를 벌 때, 여자는 75센트를 번다.(▷링크)

할리우드가 있는 캘리포니아에서는 2015년 10월 공정임금법(Fair Pay Act)이 발효됐다. 이것은 남녀임금차별 금지법보다 강화된 것이다. 왜냐하면 남녀임금차별 금지법은 남성과 여성의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을 지불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공정임금법은 남녀의 ‘비슷한’ 노동에 대해서도 같은 임금을 주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월트 디즈니, 파라마운트, 소니 픽쳐스, 워너 브라더스, CBS 스튜디오 등 할리우드 영화사와 방송사들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여배우 등이 소송을 제기할 경우 영화사와 방송사들은 남녀 차별 없이 공정하게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지난 9월 24일 캘리포니아 제리 브라운(Jerry Brown) 주지사는 배우가 요구할 경우 데이터베이스에서 나이를 제거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러한 법안이 만들어 지기까지 많은 논의와 주장이 있었다. 우선 영화와 텔레비전 산업에선 출연료 금액과 출연 분량에서 남녀 차별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됐다. 먼저 출연료의 차이에 대한 주장이다. 영화 <원초적 본능(Basic Instinct)>으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여성 인권을 지속적으로 옹호하는 활동을 하는 배우 샤론 스톤(Sharon Stone)은 2015년 11월 미국 <피플(People)>과의 인터뷰에서 “원초적 본능이 끝난 후 아무도 출연료를 주려고 하지 않았다. 매니저와 식당에 앉아 울면서 출연료 받을 때까지 촬영장에 안 돌아가겠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지금도 여전히 남자보다 더 출연료를 적게 받고 있다”고 했다.

영화 <헝거게임(The Hunger Games)>에서 캣니스 에버딘(Katniss Everdeen) 역을 한 제니퍼 로렌스(Jennifer Lawrence) 역시 2013년 영화 <아메리칸 허슬(American Hustle)>에 출연하면서 영화수익의 7%를 출연료로 받았으나, 이 영화에 출연한 브래들리 쿠퍼(Bradley Cooper), 크리스찬 베일(Christian Bale), 제레미 레너(Jeremy Renner) 등의 남자 배우는 9%를 출연료로 받았다고 밝혀 성 차별 논란을 불렀다. 통상 배우의 출연료는 잘 공개되지 않지만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는 소니 픽쳐스 해킹으로 소니픽쳐스의 이메일이 유출돼 이 사실이 알려졌다.

▲ <그림1> 2014년 미국 남녀 톱 5 출연료 현황 (출처: https://www.statista.com/chart/2533/women-earn-less-than-men-in-hollywood/)

출연료 차별에 대한 증언은 이어진다. 아마다 사이프리드(Amada Seyfried)도 “내 출연료는 다른 남자 배우와 비교할 때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수준이었어요. 그리고 그것은 관행이었고요”라고 말했고, 엠마 왓슨(Emma Watson)도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서 성차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 같은 차별을 바로 잡아야 한다며 공정임금법 제정에 불을 지핀 건 2015년 2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보이후드(Boyhood)>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패트리샤 아퀘트(Patricia Arquette)였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지금은 여성의 동등한 임금과 권리를 위해 싸울 때”라고 말했다.

임금 차별에 대한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그림 1>에서 보듯이 2014년 미국 남녀 배우 톱(TOP) 5의 출연료를 보면 남자가 2억 5000만불인데 비해 여자는 1억 5천만불로 거의 1억불이나 차이가 난다. 남자 배우 중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Robert Downey Jr.)가 7500만불로 최고의 출연료를 받는데 비해 여자 최고는 산드라 블록으로 5100만불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비교할 때 2400만불의 차이가 난다.

▲ 2016년 세계 남녀 톱 10 출연료 현황 ⓒ포브스/유건식 재편집

<포브스(Forbes)>가 발표한 2016년 세계 남자 배우와 여자 배우 출연료를 보면 상황이 더 심화된 것을 알 수 있다. 남녀 톱 5까지 1억4000만불의 차이를 보였는데 그 격차는 2014년과 비교할 때 4300만불 더 벌어진 결과다. 10위까지 확대해 보면 남녀 차이는 2억 5150만불로 더 악화된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이유로 문화평론가 하재근은 “영화를 제작할 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사람은 대부분 남성으로 설정된다. 여성은 화려한 외모를 강조해 부차적으로 구성되곤” 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출연료는 배우를 통한 작품성으로 보고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도 한계는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에서도 대체로 남자가 여자 배우보다 높다. 그 이유는 드라마의 주된 시청자가 여성이고 여성은 인기 있는 남자 배우가 출연했을 때 드라마 선호도가 높아 출연료도 이에 비례해 증가하기 때문이다. 실례로 영화 <도둑들>에서 출연료로 김윤석은 6억원, 전지현은 3억 8000만원, 김혜수는 3억 7000만원을 받았다.(▷링크)

다음은 출연 분량에서의 차별이다. 남자 배우가 여자 배우보다 두 배 정도 화면에 더 보이거나 대사를 한다는 것이다. 1998년 <디 액시던트 투어리스트(The Accident Tourist)>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과 2014년 <커맨더 인 치프(Commander In Chief)>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지나 데이비스(Geena Davis)가 적극적으로 차별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제작사들이 일부러 여성을 배제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편견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며, 대본에 나온 남녀 배역의 비중을 조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지나 데이비스는 이 일을 위해 2007년 ‘미디어의 성에 관한 지나 데이비스 연구소’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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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는 지난 9월 14일은 뉴욕에서 10월 18일은 LA에서 국제 심포지엄을 열어 미디어 영화, TV 프로그램, 타 미디어에서 나온 배우들의 말하는 시간과 다른 요소들을 이용하여 성별을 판별하는 알고리듬을 개발하였다고 발표했다. 지디-아이큐(GD-IQ, Geena Davis Inclusion quotient)로 불리는 이 소프트웨어 개발에 USC와 구글의 ‘신호 분석과 해석 연구소’의 연구원이 2년간 참여했다. 이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면 90분 영화를 15분에 분석할 수 있다.

첫 번째 연구 대상은 <쥬라기 공원>과 <어벤저스> 등 2014년과 2015년에 노미네이트 된 200개의 영화였다. 연구결과 2015년 영화에서는 전체 분량 중에서 남자 배우는 28.5% 나오고, 여자 배우는 16% 나오는 것으로 분석됐다. 여자가 메인 주인공을 하는 영화에서도 여자 배우가 24%인데 비해 남자 배우는 22.6%로 비슷하게 나왔다. 또한 음성만을 기준으로 보면 남자 배우는 28.4%, 여자 배우는 15.4% 나오는 것으로 나타났다.(▷링크)

또한 양성 평등을 위해 엔터테인먼트 사이트에서 배우가 본인의 나이를 삭제를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캘리포니아 제리 브라운(Jerry Brown) 주지사가 지난 9월 24일 배우가 요구할 경우 데이터베이스에서 나이를 제거하는 법안에 서명한 이유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고용(캐스팅)에 있어서 나이 때문에 차별받는 것을 금지하기 위함이다. IMDB나 StudioSystem 같은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는 본인이 나이를 삭제할 것을 요청하면 5일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

이번 법안은 기존의 나이 공개가 위법이 아니라는 것을 뒤집는 조치로 보인다. 2011년 10월  <피프스 워드(Fifth Ward)>, <어 갱 랜드 러브 스토리(A Gang Land Love Story)>, <언걸프렌더블(Ungirlfriendable) 등에 출연한 42세의 후옹 호앙(Huong Hoang)이 IMDB가 소비자보호법상의 프라이버시를 지키지 않았다고 하면서 100만불의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2013년 4월 IMDB는 아무런 법적 의무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IMDB의 손을 들어 줬다.

이 법안의 통과에 대하여 배우 노조(SAG, Screen Actors Guild) 측은 “그간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공개된 나이 정보로 인해, 캐스팅에 불이익을 겪는 배우들이 많았다”며 “이번 법안을 통해 나이 차별로 커리어에 불이익을 겪는 배우들이 없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반면, 일각에서는 배우들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표현과 출판의 자유를 훼손하는 일이라며 반발하는 목소리도 있다.(▷링크)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남녀 차별은 배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감독도 해당된다. 미국 감독 노조(Directors Guild of America)에서 2015-2016년 시즌 네트워크와 케이블에서 제작된 299개 시리즈의 4000편 이상을 분석했는데, 그 결과 여성 감독의 비율은 17%이고, 남성 감독의 비율은 83%로 확인됐다. 소수인종 감독은 19%이고, 백인 감독은 81%이다. 각각 전년도에 비해 1%씩 개선이 되었다. 이것을 세분화하면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백인 남성 67%, 백인 여성 14, 소수인종 남성 16%, 소수인종 여성 3%의 비율이다.

▲ <그림2> 2015-2016 TV 감독 성별/인종 구성비율 ⓒ미국감독노조

감독 노조는 여성이나 소수인종이 감독한 에피소드가 15%가 안 되는 것을 “나쁜 상태(worst of list)”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샤나라 연대기(The Shannara Chronicles)>, <마르코 폴로(Marco Polo), <마론(Maron)> 등 30편이 해당한다. 이 중에서 <마르코 폴로(Marco Polo) 등 6편은 여성이나 소수인종의 감독을 단 한 명도 쓰지 않았다.

시리즈의 40%이상 에피소드를 여성이나 소수인종이 감독한 것을 ‘훌륭한 상태(Best of List)'로 부르며 <엠파이어(Empire)>, <크리미널 마인드(Criminal Minds)>, <홈랜드(Homeland)>, <모던 패밀리(Modern Family)> 등 전체 시리즈 중 24%인 73편이 해당된다. <빙 매리 제인(Being Mary Jane)>, <게임(The Game)>, (하트비트(Heartbeat)>, <조 에버 애프터(Zoe Ever After) 등 4편은 전부 여성과 소수인종이 감독했다. 2014-2015년 시즌에 ‘나쁜 상태’였지만 2015-2016 시즌에는 ‘훌륭한 상태’로 전환한 사례도 존재한다. <슬리피 할로우(Sleepy Hollow, 11% to 44%)>, 마벨스 에이전트 카터(Marvel’s Agent Carter, 12% to 40%)>, <케이씨 언더커버(K. C. Undercover, 14% to 42%) 등이 바로 그 사례다.

방송 플랫폼별로 여성 감독 기용 비율채용을 보면 지상파가 20%의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고, 베이직 케이블이 가장 낮은 14%를 보이고 있다. 채널별로 보면 여성이나 소수인종 기용 비율을 보면 CBS 41%, Fox와 NBC 유니버설 37%, ABC 32%, Viacom 30%, 워너브라더스 28%, 소니 23%, HBO 22% 순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가장 발달한 헐리우드에서도 임금, 출연시간, 감독 기용 등에서 남녀 차별은 여전하며, 이를 시정을 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뉴욕에서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영화와 연극에 종사하는 여성을 위한 500만불 펀드를 조성하였다. 지나 데이비스는 2008년부터 “미디어의 성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지속되다 보면 머지않아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도 양성평등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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