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국가 기간 방송이란 말이 지금처럼 뼈아프게 들리는 경우가 없었다. 국정의 기본 가치가 흔들리고 있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맞아 온 한국의 언론이 뛰고 있는 상황에서 공영방송이라는 KBS의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수신료를 KBS 대신 한 종편방송사에 주자는 조롱 섞인 비난의 대상으로 KBS는 전락했다.
공영방송 KBS의 간판을 달고 프로그램 제작 일선에서 뛰고 있는 우리 PD들 또한 시청자들을 볼 낯이 없는 심정이다. 참담하고 참혹 하다라는 마음과 함께 그동안 KBS 내부의 적폐가 쌓이고 쌓여 그 근본을 드러낼 때까지 외면하고 회피하고 있었다는 자괴감이 들 뿐이다. 시청자들에게 어떠한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크나큰 죄를 지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 세월호 사태 때 KBS는 길거리에서 성난 시청자들에게 내쫓겼다. 그 참담함을 우리는 기억도 못하고 있다.
세월호 사태와 길환영 사장 퇴진 사건을 겪으며 공영방송으로서의 뼈를 깎는 쇄신의 약속을 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전히 권력의 홍보 도구라는 오명을 벗지 못한 KBS의 현실에 대해서는 모든 시청자들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한다.
우리 KBS PD들은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하는 역할이 공영방송 KBS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자 존재 이유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자각하고 있으며 그 역할에 실패한 KBS는 어떠한 이유로라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이 위기는 KBS의 존폐가 달린 신뢰의 위기임을,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선택이 KBS의 명운을 좌우할 것임을 인식하고 있다.
이에 우리 PD들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다음과 같이 회사와 경영진에게 요구한다.
첫째, 회사는 즉시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일상적 경영 행위를 제외한 KBS의 모든 활동과 역량을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으로 추락할 대로 추락한 KBS의 신뢰 회복에 집중하라!
둘째, 회사는 즉시 회사 내 각 협회, 노조 단체와 위기 극복을 위한 대화기구를 만들라!
셋째, 제작본부장과 각 프로덕션 담당들은 PD협회와 협의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프로그램 제작 계획을 세우고 어떠한 유무형의 검열도 받지 않고 독립적인 방송이 가능할 안전장치를 마련하라!
이상의 요구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시급하면서도 최소한의 요구이다. 더 이상의 신뢰 추락은 공영방송 KBS의 존재를 한국 언론사에서 지워 버릴 수도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PD들은 더 이상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이제부터 공영방송 KBS를 지키는 일에 모든 역량을 모을 것이다.
2016. 10. 27
KBS PD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