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화면 속 노년의 삶,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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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화면 속 노년의 삶,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겹쳐보기] ‘할머니의 먼 집’과 KBS ‘명견만리-효의 미래: 셀프부양시대’
  • 구보라 기자
  • 승인 2016.11.07 1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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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할머니의 먼 집>(이소현, 2015) ⓒ이소현

다큐멘터리 <할머니의 먼 집>(이소현, 2016)은 “아흔셋,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서울에서 취업준비를 하던 감독은 할머니를 곁에서 지키기 위해 할머니가 계신 곳, 전남 화순으로 찾아간다. 어쩌면 자극적이게 들릴 수 있는 ‘자살’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할머니의 먼 집>은 지나치게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게, 손녀가 바라보는 93세 할머니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일상 속에서 할머니가 느끼는 외로움과 불편함, 할머니를 사랑하는 가족들이 각자 다른 가치관으로 부양 문제를 두고 대립하는 모습 또한 여과 없이 드러낸다.

사실 이런 모습은 TV에서는 보기 낯설다. 이제까지 TV 속 노년의 삶은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였다. 전자는 휴먼 다큐멘터리에서, 후자는 뉴스에서 나타난다. EBS <장수의 비밀>과 같은 휴먼다큐멘터리에서는 100세가 가까운 나이에도 가족과 친구들이 가까이 또는 함께 살아가며 행복한 모습이 나오고, 뉴스에서는 “잇단 독거노인 고독사…”‘괜찮으세요?’ 한 마디만”(연합뉴스), “[특별기획] 노인이 울고 있다”(TV조선), “TV 시청하며 시간 보내는 노인들…빈곤 문제도 악화”(JTBC)라는 제목처럼 불행한 노년의 삶이 나온다.

물론 두 모습 다 대한민국의 현실이지만, 전체인구의 13.2%를 차지하는(2015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는 657만명) 노인들 중에서, 이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할머니의 먼 집>에서는 바로 그 지점을 보여준다.

특히 <할머니의 먼 집>에서는 할머니의 일상, 특히 손녀와 함께할 때의 모습이 주로 나온다. TV도 라디오도 켜지지 않은 조용한 집에서, 빗자루로 바닥을 쓸어내리거나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 등은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모습일 수 있지만, 생각해보면 자식이거나 손자인 관객들이 그다지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그리고 그 장면을 통해 “다 늙어서 더 살아서 뭐하겠냐”며 자살시도를 했지만 묵묵히 하루하루를 보내고 버텨내는 할머니의 마음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 다큐멘터리 <할머니의 먼 집>(이소현, 2015) ⓒ이소현

묵묵히 할머니를 찍던 감독은 카메라를 고정하고,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나란히 가만히 앉아있거나 할머니의 귓밥을 파주고 조잘거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고장 나버린 시계 대신, 새 시계를 사드리면, 할머니는 “세상이 이렇게 좋아서, 하느님이 나를 안 데려가는갑다”라며 환하게 웃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래왔듯이, 할머니는 쌀을 씻고 밥을 안치고 반찬을 만들고, 손녀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런 일상 속 장면 외에도 명절에 모인 가족들은 할머니가 계속 이것저것 하려고 하면 “가만히 앉아서 쉬고 계시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손녀와의 일상에서는 할머니는 언제나 ‘챙겨주는 사람’이지만, 다른 가족들 사이에서 할머니는 ‘챙겨드려야 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그리고 “귀가 어두우니 목소리 듣고 너희들에게 안부 전하고 싶어도 전화도 못해, 어디 나가고 싶어도 다리가 불편하니 나가지도 못 해”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통해 늙어가며 겪는 일상의 불편함과 외로움 또한 알 수 있다.

결국 다큐멘터리에서 가족들은 갈수록 기력이 쇠하고 우울해 하는 할머니를 두고 “혼자 계시게 둘 수 없다”며 부양 문제로 갈등을 빚는다. 할머니를 사이에 두고, “보내자”, “보내지 말자”며, 때로는 언성을 높이는 가족들의 모습이 어쩌면 보는 사람에 따라서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이소현 감독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닌, 부양 문제를 고민하는 가족이라면 반드시 하고 넘어가야 하는 주제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할머니의 먼 집> 도입부에서 얘기했던 할머니가 자살을 시도한 이유도, 자신이 챙김을 받기만 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외롭고 더는 살아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가족 내에서만 해결하기에는 벅찬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다큐 속 할머니처럼 우리나라의 많은 노인 또한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하고 있다. 이는 영화를 본 관객 중에서 감독에게 자신의 할머니/할아버지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며 그렇기에 더 공감했다는 연락이 SNS로 많이 왔다는 사례나 2007~2009년 65세 여성 노인의 '자살생각률'은 38.4%에 육박했다는 통계결과에서도 알 수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지난 3월 발표된 '2016년 제1차 여성건강포럼' 자료)

그리고 이처럼 더 이상 개인의 ‘효’만으로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불가능한 지금, 노인 단독 가구가 67.5%인 상황에서 어떻게 부양 문제를 해결해야 좋을지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5월, KBS <명견만리> ‘효의 미래 – 셀프부양시대(5월 6일 방송)’편에서는 한국의 사례, 일본과 독일의 안정적인 요양제도 사례들을 살펴봤다. 그리고 ‘행복한 노년의 삶’을 위해서는 가족 개개인이 아닌 사회가 함께 부양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시사했다.

▲ 지난 5월, KBS 〈명견만리〉 ‘효의 미래 – 셀프부양시대(5월 6일 방송)’편에서는 우리나라의 사례, 일본과 독일의 안정적인 요양제도 사례들을 살펴봤다. 그리고 ‘행복한 노년의 삶’을 위해서는 가족 개개인이 아닌 사회가 함께 부양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시사했다.ⓒKBS 화면캡처

이제까지 TV에서는 행복한 노인과 불행한 노인처럼 극단적인 모습만 보여줘 왔지만 이렇게 <할머니의 먼 집>처럼 할머니의 삶을 들여다보며, 우리나라 노인들의 삶을 보여주거나 KBS <명견만리> ‘효의 미래 – 셀프부양시대’처럼 현실적으로 자식들이 부양할 수 없는 여건 속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한 노년의 삶’을 가능케 할 지 현실적 대안을 모색하는 등 장르는 다르더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하거나 행복하지 않은 노년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지 등 노년의 삶에 대해 다각적으로 바라보고 접근하는 TV 프로그램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그렇게 된다면 고령화 시대를 맞는 우리 사회도 노년의 삶에 대한 성숙한 이해를 바탕으로 제도적·정서적 여건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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