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토론과 직접행동이 민주주의 확장시킨다
상태바
더 많은 토론과 직접행동이 민주주의 확장시킨다
[chat&책] 진 샤프 ‘독재에서 민주주의로’를 읽고
  • 이용석 독서가
  • 승인 2016.11.09 00: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재자는 절대 그들이 스스로 말하는 만큼 강하지 않다. 민중은 절대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약하지 않다.”

-<혁명을 시작하는 방법How to start a revolutiono> 시작 자막-

멀게는 지난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와 지난해 민중총궐기부터 가깝게는 지난 주말 20만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박근혜 하야를 외친 대규모 거리시위까지, 많은 사람들이 대규모 집회에 대해 저마다 의견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굳이 청와대로 행진하는 것을 고집하냐는 사람들과 그래도 청와대로 가야하지 않겠냐는 사람들이 토론을 한다. 집회 사회자가 혐오에 기댄 발언을 하면 항의를 하고 우리들의 저항행동이 어떠해야 하는지 토론을 한다. 경찰을 밀치는 사람들과 말리는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가끔씩 감정이 격해지거나 논쟁이 산으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이런 토론과 논쟁은 퍽 반가운 일이다. <독재에서 민주주의로>는 이러한 논쟁과 토론을 하는 데 참고할 지점이 많은 책이다.

<독재에서 민주주의로>는 세계적인 비폭력 직접행동 연구자인 진 샤프가 사회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위해 쓴 실용적인 지침서다. 진 샤프는 버마 민주화 운동 그룹의 요청으로 이 책을 썼는데 이후 밀로셰비치에 맞선 세르비아의 오트포,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과 무바라크를 무너뜨린 이집트의 활동가들도 이 책을 참고했다고 한다.

진 샤프는 독재정권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고 민주 세력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잘 훈련된 군대와 경찰을 보유한 독재정권과 폭력적인 수단으로 맞서기보다는 비폭력 직접행동이 독재정권의 약점을 공략해서 그들을 무너뜨리는 데 효과적이라고 역설한다. 이는 진 샤프만의 주장은 아니다. 마리아 J. S.와 에리카 C.는 1940부터 2006년까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사회운동을 분석했는데, 비폭력적인 수단이 폭력적인 수단보다 성공률이 두 배 이상 높게 나왔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민주화 운동 5년 뒤 민주화 실현율이다. 성공한 민주화 운동이든 실패한 민주화 운동이든 비폭력적인 수단을 썼을 때 민주주의가 확장될 가능성이 높았다. 

▲ 진 샤프는 독재정권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고 민주 세력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잘 훈련된 군대와 경찰을 보유한 독재정권과 폭력적인 수단으로 맞서기보다는 비폭력 직접행동이 독재정권의 약점을 공략해서 그들을 무너뜨리는 데 효과적이라고 역설한다. ⓒ『Why Civil Resistance Works: The Strategic logic of Nonviolent Conflict』 Maria J. S. and Erica C., 2008

물론 비폭력이라고 만능은 아니다. 비폭력 투쟁도 희생이 일어나고 많은 경우 실패한다. 다만 폭력적인 수단에 의존할 경우보다 성공률이 높고 희생을 줄일 수 있을 뿐이다. 진 샤프는 민주화 운동의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략이 있어야 하고,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 책은 내가 출판노동자인 시절 한국 사회운동에 시사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번역 출간을 기획한 책이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길 바라고 있고, 대규모 거리시위에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 이 책을 출간하기를 정말 잘했다. 물론 박근혜 정부는 이 책에 나오는 독재정권들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우리가 몰랐던 시절에도 박근혜 정부가 굉장히 비민주적이고 독재적인 면이 다분하지만 정부 자체를 ‘독재정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꼭두각시 정권일 수는 있지만 일반적인 독재정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렇더라도 독재정권과 맞서는 이들을 위해 쓴 <독재에서 민주주의로>가 유효한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생각한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독재든 아니든, 권력이 가지는 근본적인 속성과 한계는 비슷하기 때문이고, 민주주의를 확장하려는 사회운동의 전략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진 샤프의 권력이론은 한나 아렌트가 권력을 바라보는 방식과도 비슷하다, 이 글 첫머리에 인용한 다큐멘터리 <혁명을 시작하는 방법>의 시작 자막이 의미하는 것처럼, 제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고 하더라도 대중의지지, 암묵적인 동조가 없다면 권력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운동 전략과도 이어진다. 직업적인 활동가가 아닌 많은 사람들 권력과 자신의 일상을 포기하거나 희생하지 않은 채 펼치는 소극적인 저항도 권력자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공한 민주주의 운동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거리시위부터, 소수의 훈련된 활동가들이 사회운동가들이 펼치는 퍼포먼스를 비롯한 직접행동, 그리고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저항의 방식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역시나 문제는 전략이다. 박근혜 정권을 중단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저항들이 무엇인지, 각각의 저항들의 세부적인 목표는 무엇이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와 같은 이야기들이 풍성해져야 한다. 대규모 집회의 방식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판적인 고찰을 하고 나름의 대안을 내고 그에 대해 반응하는 일련의 과정은 이러한 과정이다. 저항행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행동의 목적과 방식, 즉 전략에 대한 이해가 높을수록 행동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리고 위에서 내려오는 전략을 수행하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토론에 참여해서 결정한 전략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진 샤프, 2015) ⓒ현실문화

염두에 두어야 할 것 하나. 진 샤프는 민주주의 혁명 이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독재자를 물러나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독재자가 물러난 뒤에 또 다른 독재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하고 민주주의를 안착시키는 일이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박근혜 하야만큼이나 더 중요한 것. 박근혜 이후다.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해야 한다. 박근혜 이후에 대한 상상을 소수에게만 맡기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 대규모 집회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박근혜 이후의 한국사회에 대해서도. 특히 여성들, 장애인들, 성소수자들, 이주민들과 같은 이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

*이용석: 병역거부자. 출판사 다닐 때는 노동조합 활동을 했고, 현재는 평화단체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다. 효과적인 사회운동 방법을 배우기 위해, 그러면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긴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