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과 로망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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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의 티적티적] <나 혼자 산다>, <미운 우리 새끼> … 일상의 교감과 볼거리의 가치

지난 8월 말 <미운 우리 새끼>(SBS)가 1인 가구 관찰형 예능의 원조 <나 혼자 산다>(MBC)와 같은 시간대에 편성되면서 흥미로운 그림이 그려졌다. 김건모에서 허지웅까지 장가를 가지 못한 30대 후반에서 50대의 중년 싱글남들의 일상을 그들의 어머니와 함께 들여다보는 관찰형 예능으로, 똑같이 1인 가구를 조명하지만 <나 혼자 산다>와 달리 핵심 정서는 전통적인 가족관 고수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들을 여전히 엄마의 시선으로, 남자는 여자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재미의 핵심이다. 파일럿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고루한 성 역할관을 드러낸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됐었다.

그런데 불만은 이내 잠잠해졌다. <미운 우리 새끼>는 <나 혼자 산다>와 엇비슷한 시청률로 출발해 5회 차에 이르러 2배 정도로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원조가 아류에 잡혔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는 데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캐스팅의 신선함과 중년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어머니들의 입담도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1인 가구를 바라보는 두 프로그램의 상반된 시선과 전략이다.

▲ ‘나혼자 산다’에서 출연자들의 일상은 우리가 익히 기대하는 연예인다운 볼거리와는 거리가 멀다. 주거환경도 평범하고 삶의 양식 자체가 타깃 시청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MBC

벌써 4년째 방송 중인 <나 혼자 산다>는 점점 더 타깃을 구체화하는 듯하다. 럭셔리한 집에서 화려한 나날을 보내는 연예인보다 오늘날 도시 청춘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인물들을 집중 발굴했다. 김반장, 기안84, 슬리피, 이국주, 이시언, 박진주, 이선빈, 최덕문 등이 그런 인물들이다. 이들의 일상은 우리가 익히 기대하는 연예인다운 볼거리와는 거리가 멀다. 주거환경도 평범하고 삶의 양식 자체가 타깃 시청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테리어랄 게 딱히 없는 작은 원룸이나 빌라 등 젊은 세대의 주거 공간에 카메라를 비추고, 이국주의 저녁 술상이나 화려한 런웨이를 누비고 온 모델 한혜진의 단출한 저녁상 위에 외로움을 올린다. 연예인이라기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나와 비슷한 누군가의 일상과 고민을 지켜보고 마주하는 공감과 교감이 재미의 포인트다.

그런 반면 <미운 우리 새끼>는 연예인의 삶을 엿보는 볼거리와 재미를 앞세운다. 특이하게도 이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소년처럼 굴면서, 현실의 무게는 넘어섰거나 드러내지 않는다. 출연자들은 대부분 자기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이들이다. 어머니 눈에는 하나같이 부족함 투성이인 천진난만한 소년들로 비춰지는 것은 일종의 정지작업이다. 박수홍이 클럽에 가서 놀고, 김건모가 오락과 자전거에 빠져 있고, 토니가 지저분하게 사는 모습을 재밌게 지켜보게 되는 것은 공감해서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곳과 다른 즐거운 세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박수홍이 클럽에 가서 놀고, 김건모가 오락과 자전거에 빠져 있고, 토니가 지저분하게 사는 모습을 시청자들이 재밌게 지켜보게 되는 것은, 공감해서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곳과 다른 즐거운 세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SBS

동시간대에 편성된 두 프로그램을 놓고 시청자들은 본질에 충실한 정서적 접근, 방송 문법을 개척하는 새로움, 원조에 대한 도의적 감정 등을 넘어서서 <미운 우리 새끼>의 손을 들어줬다. 일상의 교감보다는 볼거리의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한다는 뜻이다. 다 자란 중년 아들이 여전히 모성애의 대상이 되는 원더랜드의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몰려들었다. 격차가 점점 벌어지자 <나 혼자 산다>도 최근 연예인다운 볼거리가 있는 이소라의 싱글라이프로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두 프로그램의 대비 속에서 읽을 수 있는 맥락은 관찰형 예능의 현재다. 비슷한 소재를 다루지만 전혀 다르게 풀어내는 두 프로그램을 비교해보면, 관찰형 예능이 지금껏 믿고 걸어온 길인 정서적 접근, 일상과의 교감이 왕도가 아닐 수 있다는 결론을 갖게 된다. <미운 우리 새끼>의 성공은 여전히 욕망이 주관하는 환상과 로망이란 가치가 높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하다. 이는 <아빠 어디가>를 넘어서서 여전히 롱런하고 있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 이미 한 번 겪은 바 있는 사례다. <미운 우리 새끼>가 고리타분한 가족관과 성역할관을 갖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후발주자임에도 원조를 누르고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시청자들이 바라는 욕망이, 일상과의 접점보다 더 보고 싶은 볼거리가 무엇인지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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