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 직접행동의 가장 강력한 무기,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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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직접행동의 가장 강력한 무기, 유머
[chat&책]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을 읽고
  • 이용석 독서가
  • 승인 2016.11.23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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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민중총궐기 때 경찰 차벽을 꽃 벽으로 만들 거라는 계획을 듣고 참 멋있고 괜찮은 비폭력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경찰의 합법 프레임을 넘어설 필요가 있지만, 대규모 거리 시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안전하게 최대한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함께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고, 차벽을 꽃 벽으로 꾸미는 것은 안전하면서도 시각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저항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집회가 끝나고 난 뒤 일부 시위대가 경찰들이 무슨 죄냐며 차벽 스티커까지 다 떼어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커를 붙인 사람들의 의사표현을 막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비폭력에 대한 강박이 너무 지나쳐 스스로의 행동을 검열하는 건 아닌가 싶어 짜증스럽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스티커 뗀 이들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도덕성에 대한 강박이 지나치다는 이야기, 쥐 고양이 생각해준다는 이야기, 경찰이 허락한 평화집회라는 비아냥, 비폭력에 대한 왜곡이라는 비판 등등. 그 가운데 한 페친의 글이 눈에 띄었다. 그는 자기가 보기에 ‘스티커 떼기’가 굴종적인 심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 오히려 일종의 자랑스러움의 발현일 수도 있다면서, 스티커를 뗀 사람들에 훈계를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움을 찾는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제대로 조직된 형태의 비폭력 불법 직접행동”을 기획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활동가들의 역할은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정치의식이 낮다고 훈계하거나 타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순간 망각했던 것이다.

▲ 지난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있는 경찰버스 ⓒ뉴스1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능하면 위험하지 않고 재미있어서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경찰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는 않는 방식을 찾고 싶었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을 꺼내들었다. 오트포르(‘저항’이라는 뜻)의 리더 스르자 포포비치가 쓴 이 책은 밀로셰비치 몰아낸 세르비아 민주주의 혁명 과정과 그 이후 세계 다양한 곳의 활동가들의 독재자에 맞선 민주주의 운동을 지원한 경험을 쓴 책이다. 자신들의 경험을 분석해 민주주의 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오트포르와 스르자 포포비치가 무조건 옳은 건 아니다. 사회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효과적인지 아닌지에만 너무 매몰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책에서도 그런 모습이 슬쩍 엿보인다. 오큐파이 운동이라든지,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내지 못한 운동에 대한 평가는 스르자 포포비치의 의견에 잘 동의가 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도 많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과반이 훌쩍 넘는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고 주마다 주말에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리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는 ‘웃음’에 대한 이야기다. 유머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스르자 포포비치는 유머가 두려움을 없애고 자신감을 심어준다고 말한다. 독재자들은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심는 것으로 권력을 유지하는데, 유머는 권력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려서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것이다. 몇몇 기발하고도 재밌는 사례들을 소개해준다. 나는 이 책의 백미가 바로 이 유머에 대한 분석과 사례 소개라고 생각한다.

밀로셰비치에 저항하던 초창기 시절 일군의 활동가들이 녹슨 드럼통을 구해 드럼통 가운데에 밀로셰비치가 사악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그려놓고 광장 한 가운데 그것을 설치했다. ‘얼굴 때리기 단돈 1디나르(2센트 정도)’라는 안내판을 붙여서. 사람들은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이내 밀로셰비치의 얼굴을 때리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게 되었다. 경찰이 출동했지만 드럼통을 때렸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잡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결국 경찰은 드럼통을 연행해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 아이디어는 정치적 의사 표시를 어려워하는 이들도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낮은 수위의 직접행동이었고, 무엇보다 재미있었으며, 마지막에는 독재정권의 상징인 경찰이 드럼통을 연행해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해서 사람들이 경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가장 강력한 종교국가지만 종교 다음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이란에서 펼친 두 여성 활동가의 기발한 캠페인도 인상 깊었다.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한국과의 경기에 두 여성은 남자처럼 보이는 옷을 뒤집어쓰고 경기장에 들어갔다. 원래 이란에서는 경기 중 응원하는 사람들이 던지는 거친 욕설로부터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의 경기장 출입을 금지했다. 두 여성은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남성 변장을 벗어던지고 축구를 관람하는 자신들의 사진을 SNS에 올렸다. 경찰은 그녀들의 존재를 즉각 알아차렸지만 굉장히 난감한 상황에 빠져버렸다. 두 여성을 연행하자니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테고, 그대로 두자니 3,500만 이란 여성들에게 저항의식과 정치의식을 심어줄 테니 말이다.

창의적이고 유머 가득한 직접행동은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권력을 조롱하면서도 안전할 수 있다. 폴란드의 자유노조는 억압적인 공산당 정권에 맞서서 유머로 무장한 집회를 기획한다. 1987년 10월 정부가 러시아 혁명 70주년을 축하하는 동안 자유노조는 자신들만의 기념집회를 가졌다. 철저하게 정부와 공산당의 과장된 언어로 전단지를 만들어 배포하면서 시민들에게 붉은 색을 입고 광장으로 나오라고 지시했다. 곧 거리는 온통 붉은 색으로 넘쳐났다. 신발, 스카프, 장갑, 모자, 립스틱 등등 모두 붉은 색으로 치장을 하고 거리에 나와서 정권의 과장된 이데올로기를 외쳐대었다. 교조주의를 제대로 조롱하고 비꼰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로서는 자신들의 구호를 외치는 이들을 잡아갈 수 없었다. 결국 경찰은 빵에 빨간 케첩을 바르고 다니는 행인 한 명을 체포하는 것으로 촌극을 마무리했다.

물론 이 다양한 사례들은 그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스르자 포포비치도 말하는바 나라마다 사회마다 유머 코드는 다르다. 각자의 상황과 문화에 맞는 유머러스하고 창의적인 저항 방식은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다. 유머는 투쟁을 재밌는 것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하고, 권력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부각시켜 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면서 왠지 그쪽 편으로는 가고 싶지 않게 만든다.

유머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재미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권력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위의 사례들도 재밌기만 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교조주의를 비꼬고, 법의 맹점을 공략하고, 경찰을 딜레마에 빠뜨려 그들이 스스로 본모습을 폭로하게 만들기 때문에 효과적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이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정말 기발하고 창의적인 패러디와 상징물과 퍼포먼스는 넘쳐난다. 뭔가 부족한 한 부분, 바로 권력이 사실은 우스꽝스러운 본모습이라는 걸 스스로 폭로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합법과 불법 사이를 교묘하게 줄타기 하면서 경찰을 우왕좌왕하게 만들고,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들이 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직접행동이 필요하다.

*이용석: 병역거부자. 출판사 다닐 때는 노동조합 활동을 했고, 현재는 평화단체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다. 효과적인 사회운동 방법을 배우기 위해, 그러면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긴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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