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대통령 비판 언론? 적개심 갖고 불이익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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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 김영한 비망록 분석 결과 공개…청와대 수석 비서관 회의서 조직적 언론 통제 정황

<세계일보> 정윤회 보도 및 일본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의 ‘세월호 7시간’ 의혹 보도 통제, KBS 이사회 구성 관여 및 정부 비판적 보도하는 언론에는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주라’고 지시. 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은 2일 오전 ‘박근혜 정권의 언론 통제, 문화 검열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 임인자 연극인,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 등 언론‧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비망록과 관련한 생생한 증언을 전했다.

▲ 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는 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박근혜 정권의 언론 통제·문화 검열 규탄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사진은 비망록의 일부. ⓒ언론노조

언론노조가 공개한 비망록은 총 74페이지 분량이다. 비망록의 내용은 김영한 전 수석이 청와대 근무 시절에 일정과 해야 할 일, 그리고 수석 비서관 회의 대화록 등을 적어놓은 것 등 이다. 지난 2014년 6월부터 약 7개월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근무했던 김 전 수석은 <세계일보>의 정윤회 비선실세 보도 파문 직후인 2015년 1월 자진 사퇴했고, 지난 8월 사망했다.

비망록에서 ‘장(長)’이라는 한자로 자주 등장하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윤회 비선실세 논란이 불거졌던 2014년 11월부터 12월까지 이 문제를 보도한 <세계일보>를 통제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처음에 ‘정정 보도를 요구하라’던 김 전 실장은 이 방안이 잘 통하지 않자, 비선실세 논란을 집중 보도하는 <세계일보>와 JTBC 등의 언론에 대해 ‘황색지’라고 하거나 그런 언론에는 ‘적개심을 가져야 한다’고 발언했다. 심지어 김 전 실장은 <세계일보>에 대한 세무조사와 압수수색, 사장 교체 등 좀 더 ‘강압적인’ 방법을 지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조한규 전 사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청와대 홍보수석 라인이 <세계일보> 측에 접촉을 시도했고, 이른바 ‘차은택-최순실’ 라인으로 일컬어지는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통일교 재단에 직접 압력을 행사해 자신을 해임시켰다’고 주장한 바 있다.

▲ 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는 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박근혜 정권의 언론 통제·문화 검열 규탄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왼쪽부터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 ⓒ언론노조

또 김 전 실장이 2014년 8월 3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칼럼을 썼던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해 ‘응징’을 지시했다는 내용도 있다. 2014년 8월 7일자 비망록에는 김 전 실장이 ‘산케이를 잊지 말라’, ‘추적하여 처단토록 경찰 및 국정원으로 팀을 구성하라’고 한 정황이 기록돼 있다.

비망록에 따르면, 청와대는 KBS의 이사장 및 이사 선임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성재호 언론노조 KBS 본부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길환영 전 사장이 해임된 후 진행된 사장 선임 과정에서 이사회 표결로 조대현 전 사장이 선임됐는데, 조 전 사장은 청와대가 원하는 인물이 아니었다”며 “이 때문에 청와대는 ‘여당 추천 이사들이 배반을 했다’고 주장하며 그 책임을 물어 이길영 전 이사장의 사퇴를 종용했고, 곧이어 이인호 현 이사장을 내정했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 김 전 실장이 ‘정부에 우호적인 언론에는 금전적인 지원을 해 주고 비판적인 언론은 ‘응징’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도 비망록에 등장한다. 김 전 실장은 정윤회 비선실세 의혹을 다뤘던 <시사저널>과 <일요신문>에 대해 ‘본때를 보여주라’, ‘집요하게 불이익을 주라’고 지시했고, 실제로 청와대는 2014년 이들 언론사를 상대로 수 천만 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비망록에 있는) 김 전 실장의 말들을 보면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생각날 정도”라며 “김영한 비망록의 핵심은 ‘언론과 여론을 어떻게 조작하고 통제할 것인가’에 있고, 지금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그 동안 언론과 여론을 조작‧통제해 온 박근혜 정부의 실상”이라고 비판했다.

▲ 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는 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박근혜 정권의 언론 통제·문화 검열 규탄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사진은 비망록의 일부. ⓒ언론노조

“문화예술계의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다이빙 벨’엔 압력 넣고 ‘국제시장’은 지원하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필두로 한 청와대의 통제와 압력은 언론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까지 손을 뻗었다. 지난 2014년 10월 2일 고 김 전 수석은 비망록에 “‘장(長, 김 전 실장 지칭)’이 문화예술계의 각종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고 적었다.

그 대표적인 조치가 바로 영화 <다이빙 벨>과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에 대한 압력이다.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전 MBC 기자)와 안해룡 감독이 제작한 <다이빙 벨>은 세월호 참사 당시 있었던 다이빙 벨을 둘러싼 논란을 다뤘다. 이 영화는 개봉 이후 상영관을 여는데 난항을 겪어 ‘외압 논란’이 일었고, 그나마 독립 영화사인 ‘시네마 달’의 ‘고군분투’로 소수의 상영관을 열 수 있었다.

그러나 부산시를 통해 <다이빙 벨> 상영을 결정한 이용관 전 부국제 집행위원장에게 사퇴 압박을 하고 결국 이 전 위원장이 사퇴하는 등 부국제에 대한 압력은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비망록에는 바로 이 <다이빙 벨>의 상영과 흥행을 막기 위한 청와대 측의 각종 조치들이 언급돼 있다. 이와 관련해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비망록에 ‘시네마 달’에 대한 내사를 지시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시네마 달’ 관계자들은 실제로 통신 및 통장 내역을 감찰당했다”며 “청와대는 부산시를 통해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이 영화 상영을 반대한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까지 퍼뜨리려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청와대는 영화 <국제시장>에는 상당한 관심을 쏟은 것으로 보인다. <국제시장>이 제작 과정에서 투자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김 전 실장이 ‘관장 기관을 정해 대응해야 한다’고 지시하는 내용이 비망록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국제시장>은 ‘산업화 시대 아버지 세대의 역경과 애환을 그려 감동을 자아냈다’는 호평과 ‘독재 치하였던 산업화 시대를 미화한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은 영화로 <다이빙 벨>과 마찬가지로 상영 전후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따라서 <국제시장>과 <다이빙 벨>에 대해 청와대가 다른 태도를 보인 것을 선뜻 납득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 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는 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박근혜 정권의 언론 통제·문화 검열 규탄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영화 <다이빙 벨>에 대한 비망록 내용(왼쪽)과 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비망록 내용 중 일부. ⓒ언론노조

청와대는 박 대통령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 전 실장의 조종을 받는 ‘허수아비’로 희화화한 삽화 ‘세월오월’을 그린 홍성담 화백에 대해서도 압력을 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비망록에는 청와대가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였던 김종덕 전 홍익대 교수에 대해 ‘방어에 최선을 다 하도록’ 지시하고 ‘2014 광주 비엔날레 개막식’에 걸기로 돼 있었던 ‘세월오월’의 게시를 막는 한편, 보수단체를 움직여 홍 화백을 고발하도록 지시한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다.

임인자 연극인은 “청와대의 문화예술계 검열 및 통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서 놀랍지도 않다”며 “청와대가 국가기관을 이용해 초헌법적 범죄행위 저지른 것에 대해 문화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려와 분노를 느끼며,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구속 수사해 엄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청와대에서는 항상 민생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비망록에 민생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었다”며 “청와대 수석 비서관 회의는 그저 대통령 심기 불편한 것만 신경 쓰고, 누가 어떻게 대통령을 곤란하게 하는지만 주시하는 곳”이라고 꼬집었다.

김환균 언론노조위원장은 “오늘은 비망록 가운데 언론과 문화예술계 관련 부분만 공개했지만, 아직 공개하지 않은 부분에 국정교과서 문제나 전교조 해산, 그리고 세월호 관련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다”며 “(김 전 수석) 유족과의 협의를 통해 아직 공개하지 않은 부분들까지 추가로 모두 공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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