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더욱 강하게, 저항을 더욱 효과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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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더욱 강하게, 저항을 더욱 효과적으로
[chat&책] ‘행동하는 양심’, ‘함께 가만한 당신’을 읽고 활동가의 역할을 생각하다
  • 이용석 독서가
  • 승인 2016.12.06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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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안이 발의되었다. 탄핵에 앞장섰던 김무성은 탄핵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가 또다시 탄핵으로 돌아섰다. 신중론을 펼치던 민주당은 탄핵만이 길이라고 하고, 더 강력한 입장을 견지하던 국민의 당은 한때 탄핵에서 발 빼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이 혼란스런 시국에 중심을 잡고 있는 유일한 세력은 광장에 모인 이들이다. 사실상 촛불이 흔들리는 정치권을 압박해서 특검을 시작하게 됐고, 국정조사를 시작했으며, 탄핵안이 발의되었다. 우리는 어쩌면 앞으로 21세기 가장 성공적인 비폭력 캠페인으로 기록될 수도 있는 역사를 살아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막강한 힘을 보여주고 있는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세력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 대규모 거리 시위를 주도해왔던 민주노총을 비롯한 사회운동 그룹은 여전히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지만, 예전처럼 집회를 주도하기보다는 거대한 촛불의 일부로 참여하고 있다. 진보정당 지지자들부터 새누리당 지지자들까지, 좌우를 막론하고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오로지 대통령의 퇴진을 위해 모여 있다. 과거에 없던 이 다양성은 정치권을 압박하는 가장 큰 힘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과 입장이 다른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전에 없던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집회 방식에 대한 이견, 집회 문화에 대한 다른 감각이 충돌한다. 특히 예전부터 광장에서 싸워온 이들 중에는 지금의 촛불집회를 너무 온건하고 착해서 답답하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태극기를 상징으로 쓰거나 애국가를 부르는 것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DOC 노래 가사에 대한 비판과 출연 무산, 집회 내에서 일어난 성추행에 대한 여성들의 외침은 또 다른 층위의 충돌이다.

▲ ‘행동하는 양심’(박현주, 2009)ⓒ검둥소 / ‘함께 가만한 당신’(최윤필, 2016) ⓒ마음산책

나는 이런 충돌들이 무척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된다. 서로 다른 세계들이 광장에 모여 일어나는 충돌, 언론에서는 지금의 촛불집회를 질서 있는 집회, 시민의식의 발로로 묘사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광장은 온갖 충돌과 갈등이 빚어지는 뜨거운 용광로 같다. 전에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일어나는 다양한 세계의 충돌. 나는 이 충돌이 우리가 박근혜 이후 만들어가야 할 민주주의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광장을 지켜온 이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부터 박근혜 정부와 싸워왔던 이들, 아니 그 이전 어느 정부가 들어섰든지 간에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부당한 일에 저항해왔던 이들, 다시 말해 직업적인 활동가들은 촛불의 광장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비폭력과 합법의 선에 갇힌 시민들을 답답해하고 비판하는 것은 활동가의 옳은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개인적으로는 태극기와 애국가는 국가의 상징이지 시민의 상징일 순 없다고 생각하고 차벽에 붙은 스티커를 떼는 건 썩 좋은 결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스티커를 뗀 사람들이, 애국가를 열창하는 사람들이 다들 착함과 순수에 대한 강박에 갇혀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략적으로 가장 낮은 수위의 비폭력 방식을 채택했다고 본다. 그래야 더 많은, 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고,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우리의 힘이 더 강해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활동가들이 지금의 촛불집회에 대해 느끼는 한계도 중요하다.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리고, 탄핵을 하고, 그 이후 어떤 나라 어떤 사회가 될 것이냐를 결정하는 데까지 생각한다면, 광장의 촛불이 아직까지 담고 있지 못한 목소리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경련 건물을 기습 점거한 활동가들의 투쟁 같은 것들이 더 많이 조직될 때 촛불집회와 시너지를 일으켜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앞으로 탄핵이 완료될 때까지 지난한 과정이 이어질 텐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이 힘을 이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투쟁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새로운 방식으로 한계를 뚫어주는 것이 활동가들이 해야 할 역할이다. 시민들의 소극성 혹은 준법적인 모습을 질타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침을 무슨 군사작전 하듯 하달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동참할 수 있는 새로운 판을 깔아주는 역할,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용기를 북돋을 수 있는 투쟁을 기획해서 몸소 실천해나가는 역할이 활동가들의 역할이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많은 귀감을 줄 수 있는 이들이 있다. 미국의 평화운동가이자 가톨릭 사제인 대니얼 베리건, 필립 베리건 형제가 그들이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행동하는 양심』, 『함께 가만한 당신』을 통해 살펴봤다. 베리건 형제는 일명 ‘케이턴스빌(Catonsville)9’이라 불리는 사건으로 유명해졌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한 지 한 달 뒤, 가톨릭 사제복을 입은 두 명을 포함한 아홉 명의 시민이 볼티모어 외곽 케이턴스빌의 징병사무소에서 징병 서류를 몽땅 가지고 나와 불태웠다. 네이팜탄에 죽은 베트남 사람들을 상징하기 위해 네이팜탄으로 불을 붙였다 한다. 이 사건은 당시 미국 내 베트남 전쟁 반대 투쟁의 양상을 바꿨다. 당시 미국에서는 베트남 전쟁 반대 여론이 강했고 거리 시위와 성명이 끝이질 않았지만 전쟁이 멈출 거 같지 않았다. 사회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지만, 사회 변화는 요원해 보이는 상황에서 활동가들은 돌파구가 될 방식을 고민하기 마련이다. ‘케이스턴빌9’은 거리 시위에만 머물러 있던 반전운동의 양상을 바꿨다. 이후 미국 곳곳에서는 ‘케이스턴빌9’을 본 따 어디 어디 몇 인조를 결성해서 기리시위보다 더 적극적인 비폭력직접행동을 펼쳤다.

베리건 형제는 세계 평화운동에 길이 남을 또 다른 비폭력 직접행동을 펼쳤다. 1980년 미국의 군수 기업 제네럴일렉트릭의 공장에 침입해, 마크 12A 핵탄두에 들어가는 노즈콤 부품을 망치로 부쉈다. “칼을 쳐서 보습을”이라는 성경 말씀에서 따온 일명 ‘쟁기 날 운동(Ploughshare Movement)’의 시작이다. 이후 많은 평화활동가들이 베리건 형제의 투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직접행동을 펼쳤다. 1996년 영국의 평화활동가들은 인도네이시아에 수출되어 동티모르를 폭격할 예정인 호크기의 조종 장치를 망치로 때려 부쉈다. 이 행동에 참여했던 앤지 젤터는 “더 큰 범죄를 막기 위한 행동의 공익성”을 인정받아 무죄를 선고 받았다.

베리건 신부 형제의 활동은 활동가들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영감을 준다. 박근혜 탄핵 정국이 하루하루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광장의 촛불은 유일하게 중심을 지키며 이 초유의 사건을 정공법으로 풀어가는 힘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에선가 우리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할 수도 있다. 혹은 촛불의 힘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함께 병행할 다른 전략이 필요할 수도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할까? 존경하는 여러 활동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이용석: 병역거부자. 출판사 다닐 때는 노동조합 활동을 했고, 현재는 평화단체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다. 효과적인 사회운동 방법을 배우기 위해, 그러면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긴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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