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시대’가 특별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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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생각할거리를 던져주다

▲ 감정이란 더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할 공감 사안이라는 것을 <감정시대>가 말하고 있다. ⓒ EBS

“슬프다”, “짠하다”, “현실 그 자체다” EBS <다큐프라임-감정시대>(이하 <감정시대>)에 대한 시청소감이다. 지난 5일부터 5부작으로 방영된 <감정시대>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감정을 통해 들여다보는 시리즈로, 대중에게 잔잔하지만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켰다. <감정시대>는 2016년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감정을 통해 소개한다. 자칫 낯설게 느껴질 법한 소재이지만,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 모멸감, 공포, 상실감, 그리고 슬픔 등 개인의 감정을 사회학적 시선으로 풀어내 관심을 모았다. 누군가는 작금의 시대를 풍요의 시대라고 외치지만, 정작 날이 갈수록 살기 팍팍해지고 마음껏 감정을 드러내기 어려운 시대. <감정시대>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1부 ‘을의 가족-불안의 대물림’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신이 원치 않는 방식으로 실직한 가장과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가장의 실직은 가족의 해체로 이어지고, 개인에게 가난의 대물림으로 전가된다. 대물림 과정에서는 불안이 피어난다. 출연자들은 평범한 아빠, 가장, 남편, 아들로서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구조적 한계에서 쉽사리 탈출구를 찾지 못한다. 불안이 현실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가장들은 “실직은 어둠이다”, “실직은 사망신고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는 게 너무 무서워요”라고 속내를 밝힌다. 이렇게 한 번 무너진 가족의 삶과 기억은 쉽사리 복원되지 않는다. 정규직이어도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이 가중되는 작금의 현실이 중첩된다.

2부 ‘감정의 주인’은 ‘감정 노동자’라고 불리는 서비스 노동자들이 느끼는 모멸감에 대해 말한다. 최근 대형마트의 비정규직과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송곳>이 방영돼 사람들 사이에 반짝 관심을 모았지만, 이후 감정노동자의 소식은 뉴스거리로만 전해졌다. <감정시대>는 ‘갑질’이라는 틀에 갇혀 우리가 놓쳤던 감정 노동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대형마트의 계산원, 백화점의 판매원, 텔레마케터 등은 일터에서 가혹할 정도로 엄격한 통제 아래 감정이 관리된다. ‘고객 만족’이라는 구호 아래 감정까지 빈틈없이 통제하라는 고객응대 매뉴얼이 통용되고 있다. 과도한 폭언과 성희롱 발언에 노출됐던 한 마트 직원은 “스스로 보호할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수치심보다도 모멸감을 더 크게 느꼈다고 고백한다. 감정을 조작화해 이윤을 극대화할수록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훼손되는 현실에 처한 것이다.

이어 <감정시대>는 이른바 ‘아저씨’라고 불리는 중년들이 느끼는 마음을 ‘가장’이 아닌 ‘나’의 감정과 만나는 과정(3부 아저씨의 마음)과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에도 자살 유가족은 죄인처럼 숨어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통해 자살 유가족의 고통과 슬픔(4부 너무 이른 작별)을 다뤘다. <감정시대>의 정점은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다룬 5부 ‘스무살, 남아있는 자의 슬픔’에서 드러난다. 해당 방송분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그간 ‘기억’이라는 감정에 얼마나 많은 오해가 덧씌워졌는지를 조심스레 보여준다. 제작진은 특히 세월호를 기억해야 한다는 당위적 접근이 아니라 사고 당시 친구의 상실을 겪은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일상에 스며든 ‘기억’을 넌지시 보여준다. 생존자들은 자신의 팔목에 세월호를 상징하는 리본을 문신으로 새기고, 떠난 친구를 기리는 자리에 참여하면서 ‘그들만의 연대’가 아닌 타인과 감정을 연대함으로써 또 다른 공존의 기억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감정시대>가 조명했듯이 우리 사회가 처한 총체적 모순을 풀어내려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최근 진행된 ‘세월호 7시간 청문회’로 불리는 청문회에서도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을 두고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증인들의 모르쇠 발언이 이어졌다. 이미 사회 곳곳에서 만연한 책임 떠넘기기와 모르쇠 태도는 사회 안전망을 갖추지 못한 곳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사회 현상과 긴밀하게 연결된 감정을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전가하는 데 일조한다. <감정시대>를 본 시청자들이 “현실 그 자체”라고 호응하는 이유는 사회 전반에 퍼진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감정시대>는 내밀한 감정으로 사회적 병폐를 고발하고, 경고하는 다큐멘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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