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추천방송] KBS ‘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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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1TV <역사저널 그날> ⓒKBS

▲ KBS 1TV <역사저널 그날> / 12월 17일 오후 10시 30분

외전 <화랑>

1500년 전, 신라에 등장한 꽃미남 사단. 꽃화花 사내랑郞
이들은 고구려와 백제를 넘보는 약소국 신라의 야망이 담긴 집단이었다!
삼한일통(三韓一通)의 중심에 선 사내들!
‘화랑’을 만나 본다!

■ ‘화랑’에 대한 오해 혹은 편견, 우리가 몰랐던 화랑의 진실

“미모의 남자를 택하여 곱게 꾸며 화랑(花郞)이라 이름하고 받들었는데, 무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노래와 음악으로 서로 즐겼는데, 산과 물을 찾아 노닐고 즐기니 멀리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
- 삼국사기-

신라 시대, 곱게 분을 바른 사내들이 풍류를 즐기는 꽃미남 무사 집단으로 알려진 화랑. 한 명의 화랑과 그를 따르는 낭도들로 이뤄진 화랑도는, 진골 귀족 가문의 자제를 인재로 키우기 위해 신라가 야심차게 조직한 청소년 집단이었다! 그런데! 이 화랑도에 ‘여자 화랑’이 있었다!? 화랑의 시작은 아름다운 미녀였다는데..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KBS 드라마 <화랑>의 영상으로 풀어 보는 화랑에 대한 오해와 진실! 우리가 몰랐던 화랑에 대한 이야기들을 알아본다.

■ <배사향공>의 상징 화랑

끊임없는 전쟁으로 혼란한 6세기, 신라의 인재 양성책 중 하나였던 화랑 제도는 신라의 성장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10대 소년들의 순수한 열정과 마음을 이용한 어른들의 전략이 아니냐는 것. 배사향공背私嚮公(개인의 욕심은 버리고 공공의 이익을 향함)’의 정신으로 조국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화랑, 이들의 근본이자 뿌리인 ‘화랑 정신’은 어떤 것이었는지 이야기해 본다.

■ 신라 시대 화랑으로 산다는 것

660년, 황산벌에서 맞붙은 신라와 백제. 신라가 수세에 몰리자 화랑 관창이 나서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3번의 돌격 끝에 결국 적군의 칼끝에 목숨을 잃은 관창. 그런데, 관창보다 먼저 적진으로 향한 이가 있었으니, 또 다른 화랑 반굴이었다. 이처럼 대다수의 화랑이 전쟁에 있어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다. 어린 화랑들이 죽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유는 가장 앞서 싸우는 것이 곧 자신과 가족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었기 때문이라는데.. 귀족의 자제이자 지배층으로 솔선수범의 의무를 가졌던 화랑에게 요구되었던 시대적 역할을 알아본다.

■ 죽지 못한 자의 슬픔

김유신의 아들 김원술은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후퇴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 김유신에게 의절 당하고, 죽임까지 당할 뻔 한다. 훗날을 도모하려 했다는 아들 김원술의 입장과 비겁한 아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김유신! 팽팽하게 맞서는 두 사람의 입장. 목숨이냐, 명예냐, 스튜디오에서 펼쳐진 갑론을박! 과연 화랑이 지켜야했던 가치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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