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시민들은 스스로 대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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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언론위원회, ‘촛불과 민주주의’ 시국포럼 개최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이는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이라는 비판을 받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엄정한 심판이었다.

많은 이들은 이런 심판이 가능했던 원동력이 6차, 7차를 넘어 이제 8차를 바라보고 있는 대국민 촛불집회와 여기에 모여 촛불을 든 200만의 국민에게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혹자는 ‘촛불 혁명’이라는 말까지 쓴다. 그만큼 촛불은 ‘2016년 판 광장 민주주의’ 그 자체였고 국정농단과 헌법 유린 사태에 대한 1차적 책임을 분명히 묻는 성과를 이뤄냈다.

그러나 학계 및 언론계 등에서는 촛불 민심과 탄핵안 가결을 마냥 기쁘게 바라보지는 못하는 모양새다. 그 동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을 때마다 시민은 광장에 모였고, 촛불을 켰고, 그에 따라 직선제 개헌, 민주 정부로의 평화적 정권 교체 등의 변화가 일어났지만, 그 때마다 대한민국은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퇴행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 언론위원회는 15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촛불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시국 포럼을 열고, 정치학‧사회학 등 학계 인사 및 언론계‧법조계 전문가들과 함께 촛불 민심의 본질과 그 동안 한국 사회에 있어 왔던 광장 민주주의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되짚고 촛불‧탄핵 정국 이후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하는 시간을 가졌다.

▲ 지난 15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 주최로 '촛불과 민주주의' 시국포럼이 열렸다. ⓒ사진 제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촛불 시민들, 정치권에 이용당하는 것 원치 않아…시민‧사회적 약자 대표성 강화하는 방안 고민해야”

NCCK 기획위원이자 역사 전문가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이날 포럼의 발제자로 나서 1960년 4‧19 혁명부터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미선이‧효순이 추모 집회와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2008년 한미 소고기 협상 반대 집회(일명 ‘광우병 소고기 반대’ 촛불 집회)에 이르기까지 해방 이후에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던 발자취를 훑어봤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 ‘짜릿한 역사의 경험’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한 교수는 “이번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 역시 분명 놀라운 역사의 진보와 발전이지만 ‘과연 이것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1987년 6월 항쟁에서 민주주의를 꿈꾸며 직선제를 요구했지만 바로 그 직선제로 군부 출신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선된 것을 ‘역사의 실패’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지난 역사에서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살아있는 원동력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던 시민들”이라며 “촛불 시민들은 정치권에서 순수한 촛불 민심을 이용하려 드는 것을 원치 않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대표하기 원하므로, 이런 부분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일준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한민국은 분단-군정-전쟁 등을 겪으며 형성됐기 때문에, ‘국가-시민사회’의 관계에서 국가가 압도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게 됐다”며 “검찰 개혁, 국정원 개혁 등을 이야기하지만 몇몇 인물을 교체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정치 구조 자체를 새로 구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태욱 한림대 국제대학원 교수 역시 정 교수의 주장과 입장을 같이 했다. 최 교수는 “국가는 선거제도, 정당체계, 권력구조, 이 세 가지가 맞물려 돌아가는데 이 중 하나만 뜯어고친다고 해서 새로운 정치체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며 “이 세 가지를 모두 고쳐줘야 하는데, 지금의 정치인들은 그저 권력구조만 바꾸려고 아우성”이라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단순히 대통령을 바꾸는 데서 그치기보다는 근본적인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내년 대선에서 이슈가 될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대표성 강화 같은 선거구조 개편, 지역주의 해소를 반영한 정당구조 개편, 그리고 권력구조 개편까지 모두 담은 방안을 구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홍구 교수는 “한국에서 광장정치, 거리정치가 자주 나타나는 이유는 대의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촛불 내부의 소통을 통해 새로운 대의제를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촛불‧탄핵 정국 이후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의 백지화를 고려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강문대 변호사는 “이번에 촛불 집회를 통해 확실히 국민은 스스로가 권력의 중심이란 것을 실감하며 자신감이 생겼고 그러면서 전 사회적으로 도덕적 의식도 고양됐지만, 87년 6월 항쟁 이후 실패했던 경험처럼 또 다시 ‘죽 써서 개 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이러려고 탄핵을 했나’ 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대통령 퇴진 그 자체를 넘어서 그 동안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여러 정책의 중단 및 폐기 등 탄핵의 실질적인 의미를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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