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PD의 고백 ⑥] ‘좋은 친구’에서 ‘엠빙신’이 된 MBC를 지켜보며 절망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PD의 고백 ⑥] 모 MBC PD의 고백

▲ MBC PD들이 16일부터 MBC 사옥에서 '정우식 특혜 비리'와 관련한 책임자를 규탄하는 릴레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PD저널

아이와 침대에 함께 누웠다. 침대맡에서 광화문에 나온 파란 고래와 고래 등에 타고 있던 304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 또래 친구들이 물 속에서 하늘로 올라 별이 된 사람들을 그리고 오렸다고 한다. 세월호도 알고 박근혜 퇴진도 입에 올리지만 아이가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아빠, 왜 착한 사람들을 안 구해주고 죽어?” “어, 그건…” 답을 주려고 말을 꺼내기 시작했지만, 그 죽음을 모른 척하는 것도 모자라, 갈갈이 찢어 온 애비의 조직 MBC 탓에 답은 더 군색했다. 장광설이었는지 이야기를 채 끝마치기도 전에 가늘게 코고는 소리가 이불 틈으로 새어 나왔다. 어깨에 외풍이 닿아 엎드려 자는 아이의 뒷덜미까지 이불을 끌어다 놓았다.

2014년 4월 16일은 무고한 생명들이 스러져간 날이기도 했지만, MBC가 완전히 망가졌다는 최종 신호를 보낸 시점이기도 하다. 한 보도 담당자는 “완전 깡패네, 유족 맞아요?”(2014.4.25)라며 실종가 가족을 폄훼했다. 어떤 부장급 기자는 “뭐하러 거길 조문을 가. 차라리 잘됐어. 그런 X들 조문해줄 필요 없어”(2014.5.8)라며 유가족을 깎아 내리는데 급급했다. 우리는 세월호를 다루자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 돌아 오는 답은 같았고 어느 순간 입을 닫았다. MBC에서 세월호는 금기어가 되었다. 세월호에 대한 MBC의 태도는 시청자들이 MBC를 ‘좋은 친구’가 아닌 ‘엠빙신’으로 부르며 포기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우리가 공정방송을 외치다 쫓겨다니는 피해자에서, 가해자이거나 잘봐줘야 방조자가 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나는 MBC의 메인 현관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상암동 이전과 함께 로비에 크게 내걸린 ‘음수사원(飮水思源)’이 쓰여진 액자가 보기 싫어서다. 혹시라도 지나치게 될때는 그 글귀를 보게 될까봐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한다’라는 근사한 뜻이지만, MBC를 장악한 정권의 부역자들에게는 다른 의미다. 지난 연말연시, 사장이 사무실을 ‘순시’했다. 그런데 몇몇 부서에서 큰 소리가 났다고 한다. 사장이 왔는데도 사원들이 일어나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업무하느라 몰랐던 사원들은 어리둥절했고, 보직간부들은 전전긍긍했다. P 본부장은 극우 인터넷 언론사 대표에게 머리를 조아린 녹취록이 공개되었지만 오히려 출처를 문제삼았다. K 본부장은 기획안의 단어 하나, 말 한마디로 꼬투리를 잡아 프로그램 제작을 방해한다.

지난 8월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날 있었던 민방위 훈련의 한 장면은 MBC의 상태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처음 본 남자 아나운서는 “지금 안광한 사장님을 비롯한 임원진 여러분께서는 실내에서 심장제세동기 실습을 하고 계십니다. 직원 여러분께서는 사장님과 임원진 여러분들께서 바깥으로 나오실 때까지 잠시만 대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연신 외쳤다. 뙤약볕 아래서 그 일행들이 나올 때까지 야외 훈련은 미뤄졌다. 한참 후 노란 점퍼때기를 걸치고 조폭처럼 줄지어 부스 하나하나를 여유있게 이동하며 체험하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봐야했다. 아나운서는 이렇게 외쳤다. “안광한 사장님 일행께서 다음 부스로 이동하여 체험을 하실 예정입니다.” ‘사장님 일행’에게 당신의 근원은 무엇이냐 묻고 싶었다. 천박한 친박 방송을 위해 ’음수사원’이라는 완장을 두른 자들의 부박함이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MBC라는 흉기에 적용되지 않는다. 차디찬 물 속에 죽어간 사람들을 폄훼하고, 헌법 가치를 무시하는 데 가담한 MBC의 가해자들은 ‘생각할 능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다. 정권의 비선실세 아들을 드라마에 반복 캐스팅했다는 의혹에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국민 예능프로그램의 PD가 500회가 이어진 프로그램을 더 잘 만들고 싶다며 시스템을 바꾸자고 해도, 눈앞의 이익을 위해 귀를 막고 있다.

주말 아침 대담 프로그램 진행자는 회당 수백만원의 출연료를 받아가며 보직간부들을 쥐고 흔든다. PD수첩과 다큐멘터리는 의제설정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가해자들에게는 시청률 2% 대 뉴스의 신뢰회복보다, 두어달 앞으로 다가온 사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부역자들끼리의 혈투가 더 뜨거운 이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 후배가 병마와 싸우고 있음에도, 여전히 사원들을 감시하고 갈라치기 위한 곳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MBC의 경영진과 보직간부들은 자리를 차지하고, 서로 상호작용하고 네트워킹하면서 그 폭력성이 배가되었다.

“아빠, 왜 착한 사람들을 안 구해주고 죽어?”라는 아이의 당연한 물음. 나는 뒤집혀 가라앉는 배 안에서 어이없고 억울하게 죽어간 생명을 설명할 수 없었다. 설명은 하지 않고 정권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언론이 되었는지, 왜 MBC가 그 최전선에 있는지 말하지 못했다. 나는 다른 채널의 뉴스를 보고, 다른 채널의 시사프로그램을 본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고, 저들이 원하는 일을 원하는 방식대로 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무력해졌지만 저들은 더욱 능동적인 가해자가 되었다. 혹시라도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보다 고개를 들 수 있을까? 그때 가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자신이 없다. 나는 가해자 집단의 일원으로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말을 하더라도 지난 몇 년간의 흉포한 만행에 대해 속죄할 수 없을 것 같다. 시청자들 역시 오래도록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용서받을 수 없는 MBC라는 가해자의 한 사람으로 절망한다.

* 필자의 요청으로 익명으로 게재합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