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따져보기] ‘치매’ 진부한 소재? ‘오 마이 금비’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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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애라는 보편적 공감대

▲ <오 마이 금비>는 ‘치매’를 극적 전개를 극대화하는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서로의 울타리가 되고자 하는 금비와 금비의 주변인물을 엮어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 방송 화면 캡처

대세 배우도, 아이돌 배우도 없다. ‘흥행 불패’라고 여겨지는 의학, 사극, 성공 드라마도 아니다. 아이돌 대신 아역 배우가 출연하고, 흥행 소재 대신 ‘치매’를 다룬다. KBS 2TV <오 마이 금비>(연출 김영조, 안준용, 극본 전호성>)다. 드라마는 아동 치매에 걸린 딸과 그 딸을 보살피는 아빠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난달 16일부터 방영된 이래 5~6%대의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나 작품 자체로만 보면 드라마적 가치를 충분히 지녔다. KBS가 주최한 경력 작가 대상 미니시리즈 극본 공모 당선작인 <오 마이 금비>는 그간 드라마 속에서 ‘치매’를 대하는 진부한 시선을 비틀어 보편적인 공감대를 끌어내고 있다.

‘치매’는 이미 드라마에서 ‘단골 소재’다. 점차 기억을 잃어간다는 설정 자체만으로도 극적 효과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치매=노인성 치매’라는 대중적인 인식 때문에 고령자 역할에 국한돼 표현됐다. <고맙습니다>(MBC, 2007)에서 카바레의 밴드마스터였다가 아들 내외를 잃고 치매에 걸린 미스타 리(신구 분)의 열연이 대표적이다. 치매 초기 증상을 앓는 순박한 엄마 이영자(고두심 분)가 “마음이 아파서 이거 바르면 괜찮을 것 같다”며 가슴팍에 빨간약을 바르는 장면(<꽃보다 아름다워>(KBS, 2004))은 여전히 회자될 정도다. 최근에는 ‘노인성 치매’를 다루더라도 신파를 최대한 덜어내는 분위기다. <디어 마이 프렌즈>(tvN)에서 조희자(김혜자 분)가 치매 진단을 받고,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이 담담하게 그려졌다.

또한 ‘치매’ 소재는 낮은 연령대의 인물에까지 뻗어 활용됐다. <기억>(tvN)에서 박태석(이성민 분)은 세속적 욕망의 끝을 향해 달리며 승승장구하는 대형 로펌 변호사였지만, 갑작스레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는다. 한창 가정을 꾸려가는 40대 남성에게 치매는 청천벽력과도 같다. 하지만 ‘기억 시한부’라는 불가항력적인 속성은 인물이 변화하는 전환점을 마련한다. 태석이 자신의 삶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변론에 나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시청자의 몰입도를 높였다. 한편 <천일의 약속>(SBS, 2011)에선 치매에 걸린 젊은 여주인공 이서연(수애 분)이 등장했다. 그러나 주인공의 증상이 악화되는데도 우아하게 옷을 차려입고, 반듯한 모습으로만 나와 드라마의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 지난달 16일부터 방영된 이래 5~6%대의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나 작품 자체로만 보면 드라마적 가치를 충분히 지녔다. ⓒ KBS

이처럼 드라마 속에서 치매는 극적 장치로 자주 사용됐다. <오 마이 금비>도 치매 중 ‘아동 치매’를 다룬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 만 하다. 한창 뛰어 놀아야 할 유금비(허정은 분)는 이름조차 생소한 ‘니만피크 병’에 걸려 치매와 유사한 증상을 겪는다. 사실 소재만 보면 눈물샘을 자극할 것 같지만 드라마는 예상을 빗나간다. 투병 중인 금비는 뭐든지 혼자서 척척 해내는 다부진 성격이다. 그에 반해 금비의 부모와 주변 인물들은 시원찮다. 아버지 모휘철(오지호 분)은 평범하게 죽은 바에야 한 탕하는 게 낫다는 사기꾼이고, 친엄마 유주영(오윤아 분)은 자기 인생 즐기기 바빠 딸을 버린 사람이다. 금비와 휘철 부녀와 얽히게 된 고강희(박진희 분)도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소외당하는 등 결핍과 상처를 지닌 인물이다.

<오 마이 금비>의 힘은 ‘아동 치매’를 난관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시선에 있다. 치매는 걸림돌이지만 주변인물이 성장하는 디딤돌이다. 금비는 변변찮은 사기꾼 아버지, 모성애라곤 1g도 없는 엄마, 그리고 자신의 병을 알고서도 포기하기보다 당차게 세상을 헤쳐 나간다. 금비의 난관을 지켜보며 온 몸으로 딸을 거부했던 모휘철과 유주영도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또한 <오 마이 금비>는 치매를 혈연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애절한 사랑을 완성하는 기폭제로 활용해오던 방식에서 탈피한다. 얼마 전 휘철은 금비가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금비의 아빠로 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강희는 어릴 적 받지 못한 사랑을 핏줄도 아닌 금비에게 주고 싶고, 휘철 곁에서 위로하고 싶어 한다.

<오 마이 금비>는 ‘치매’를 극적 전개를 극대화하는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서로의 울타리가 되고자 하는 금비와 금비의 주변인물을 엮어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또한 이들의 고군분투는 인간애라는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시청자들을 무장 해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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