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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용해 장사하지 않을 것...암환자 만나 많이 깨달았다”

‘KBS 스페셜-앎’ 이호경 PD 인터뷰 표재민 기자l승인2016.12.30 09:5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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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연자들을 섭외할 때 처음부터 하겠다고 하는 분들은 없다. 계속 부탁을 드리고 신뢰를 쌓는 시간이 필요하다. 촬영을 할 때도 혹시라도 제작진이 실수를 할까봐 모두들 긴장한다” (이호경 PD 인터뷰 중) ⓒ KBS

암 환자들의 투병, 그리고 가족과의 작별 과정을 담으며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 KBS 다큐멘터리 <KBS 스페셜-앎>. 숭고한 가족애,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아름다운 시선이 돋보였던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 22일, 23일, 25일 3부에 걸쳐 방송됐다.

 

젊은 엄마들의 투병기를 통해 엄마라는 깊은 책임감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담은 1부 ‘엄마의 자리’부터 남편, 아들과의 작별을 담담하면서도 단단하게 준비하며 깊은 감동을 안긴 2부 ‘서진아 엄마는’,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남긴 3부 ‘에디냐와 함께 한 4년’까지 시청자들을 어지간히 울렸다.

 

4기 암환자가 주인공이고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소재였지만 제작진은 시청자들을 마냥 울리지 않았다. 그 속에서 남은 가족들의 희망을 다루고자 했고, 굳건하게 버티는 암 환자들의 투병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존엄성을 느끼게 했다. 아픈 이들을 집요하게 쫓거나 억지로 감정 몰입을 위한 장치를 집어넣어 눈물샘을 파고들지 않았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호경 PD는 최근 일본 출장을 다녀왔다. ‘앎’의 제작 방식을 배우고 싶다는 ‘다큐 명가’이자 일본 공영 방송사 NHK의 요청 때문이었다. 90여명을 대상으로 우리의 다큐멘터리 제작 방식을 알리고 왔다.

 

그는 “일본 PD들은 처음에 우리가 제작한 영상을 믿지 못했다”라면서 “내레이션이 없는데다가 어떻게 출연자들의 섭외가 가능했을 지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치열하게 질문이 오고갔고 어떻게 기획을 했고 섭외를 했으며 촬영했는 지 8시간 동안 설명했다”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의구심을 가질 만 하다. 가족애를 다루는 MBC 다큐멘터리 <휴먼다큐 사랑> 제작진 역시 기자간담회에서 개인의 사생활이라 할 수 있는 부분까지 제작진이 전부 담는 방식을 외국 PD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제작에 앞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 출연자들과의 두터운 신뢰를 쌓아 다가가는 우리나라 제작진의 노력이 깃든 한국 특유의 인간 다큐멘터리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호경 PD도 촬영보다 출연자들의 마음을 살피고 배려하는 게 먼저였다. 더욱이 큰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을 담는 일이다.

 

그는 “출연자들을 섭외할 때 처음부터 하겠다고 하는 분들은 없다”라면서 “계속 부탁을 드리고 신뢰를 쌓는 시간이 필요하다. 촬영을 할 때도 혹시라도 제작진이 실수를 할까봐 모두들 긴장한다”라고 밝혔다.

출연자들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다보니 제작진이 느끼는 슬픔도 상당히 크다. 이 PD는 “가족들의 고통을 옆에서 보다보니 슬픔과 괴로움이 컸다”라면서 “나와 촬영 감독은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기도 했고, 촬영 후에도 후배 카메라 감독에게 상담을 더 받아보라고 권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 "나 역시 암 환자의 가족이기 때문에 결코 죽음을 이용해 장사할 생각이 없었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이호경 PD 인터뷰 중) ⓒ 방송화면 캡처

3부에 담겼지만 이호경 PD의 누나 역시 암 4기 환자다. 항암 치료를 거듭하는 중이다. 2014년 여름, 암 진단을 받은 누나를 지켜보며 그도 암 환자의 가족이 겪는 큰 슬픔을 이겨내야 했다. 암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이 PD는 “의사를 만나고 오면 누나, 나, 아내 모두 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다르게 해석하는 모습을 발견했다”라면서 “아무래도 어려운 이야기니깐 갑갑한 면이 있었고, 그래서 의사와의 상담을 촬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환우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봉사 활동을 하게 됐다”라면서 “상담 내용을 촬영해서 환우들에게 영상을 보내주면서 이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이 PD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암 환자들과 가족들이 겪는 시행착오를 배울 수 있었다. 큰 도움을 받았기에 봉사 활동을 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만난 환자들과 가족들을 담기로 했다.

 

같이 아파했고 같이 힘들어하며 보낸 2년의 시간이었다. 3부에 나온 의사이자 암환자였던 고 정우철 씨의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 씨는 자신도 아프면서 다른 환우들의 건강을 살피는 진정한 의사였다. 이 PD는 그런 고인에게 많이 배웠다고 했다. 정 씨가 세상을 떠나던 날, 그의 아내는 제작진에게 마지막 모습을 기록으로 담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만큼 제작진과의 끈끈한 믿음이 있었다. 이 PD는 가족들과 환자들을 계속 만났다. 촬영 후에도, 심지어 방송 후에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2부에 출연한 서진이 엄마인 김정화 씨의 마지막을 담으면서 이 PD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에디냐 수녀님이 말씀하신 죽음에 대한 깨달음을 그제서야 이해했다”라면서 “서진이 엄마를 통해 정말 많이 배웠고, 서진이 엄마처럼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고인에게 큰 배움을 얻었다고 털어놨다.

 

이 PD는 행여나 이 다큐멘터리가 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상처를 안겼다는 일부의 의견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환자들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담아 희망을 안기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물론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그리고 좀 더 다르게 생각하는 계기이자 새로운 희망이었다는 호평도 많았다. 이 같은 엇갈리는 시선은 이 PD에게 있어서 늘 조심스러운 접근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지만 또 다시 신중한 제작을 다짐하는 계기가 될 터다.

 

그는 “암환자들에게 절망을 안겼다는 의견이 있어서 깊이 생각하고 있다”라면서 “나 역시 암 환자의 가족이기 때문에 결코 죽음을 이용해 장사할 생각이 없었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희망을 안기고 싶었고 암에 대한 정보를 알리고 싶어서 제작을 했다. 앞으로도 환우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루성 다큐멘터리가 흔히 실수하는 인위적인 눈물 자극 장치가 없었다. 고인과의 작별의 시간, 가족들의 표정을 집중해서 다루거나 감정을 쥐어짜는 배경음악을 남발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더욱이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빛으로 살포시 가린 배려가 더 뭉클하게 다가왔다.

 

그는 “고인이 밝은 빛을 따라가신다는 의미에서 빛으로 표현했다”라면서 “특히 서진이가 엄마의 마지막 얼굴이 예쁘다고 말했는데, 아이의 말처럼 고인의 평온한 표정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연한 빛을 띄우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 PD의 작품에는 설명하는 ‘내레이션’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3부작에도 이 PD의 이야기가 살짝 담긴 3부에만 이 PD의 목소리를 통해 프로그램의 출발점이자 진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전달됐을 뿐이다. 1부와 2부는 내레이션 없이 사연 주인공들의 모습만 담겼다.

 

그는 “7~8년 전부터 내레이션을 넣지 않았다”라면서 “그래서 작가도 없다. 다큐를 만들다보면 내레이션이 필요한 부분은 전체의 10~20% 정도 된다. 그 부분을 위해 무리하게 내레이션을 너무 많이 넣는다고 생각이 들었다”라고 내레이션 없이 방송을 이어가는 이유를 말했다.

 

이 PD는 “내레이션이 없으면 시청자가 좀 더 적극적으로 시청을 하게 되는 것 같다”라면서 “또 제작진이 감정을 강요하지 않게 된다. 대신 제작상에서 내레이션을 대체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한데 이번에는 환자들을 한데 모아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을 택했다”라고 덧붙였다.

 

덕분에 <앎>은 시청자들이 제작진의 의도를 강요받지 않고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작품과 주인공을 바라볼 수 있는 담백한 다큐멘터리였다. 조미료가 적어 좀 더 진정성 있게 깊은 감동을 안긴 배경이 이 PD의 이야기에 모두 담겨 있다.


표재민 기자  jmpy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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