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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식 촛불, 그리고 2017 대한민국에 쏘아올린 희망

표재민 기자l승인2017.01.01 11: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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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만한 역사 교과서보다 <무한도전>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이 일으키는 반향이 더 컸고, 때마다 잊지말고 기억하자는 사회적인 환기가 발생했다. ⓒ MBC

“비판이나 비아냥이 싫어 머뭇거리던 입가/ 뒤돌아 걸어가는 시대 뒤에 고개 숙인 내가 밉다/ 난 한국인 난 한국사람/ 근데 난 아직 두려워 촛불 위에 바람.”

달리 ‘국민 예능’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또 한 번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다. 혼동과 절망의 이 시국, 따끔한 비판에 그치지 않았다. 실의에 빠진 시청자들에게 역사로 위로를 안기고 새 희망을 전했다.

힙합을 떠올릴 때 흔히 촌철살인의 귓가를 ‘때려박는’ 랩을 생각하는데, 진짜 하나 하나 놓칠 수 없는 가사가 무엇인지 <무한도전>의 역사와 힙합의 만남이었던 ‘위대한 유산’ 특집이 펼쳐놨다.

지난 달 31일 2016년 마지막에 방송된 <무한도전>은 기대를 모았던 ‘위대한 유산’의 공연이 공개됐다. <무한도전> 멤버들과 개코, 딘딘, 도끼, 비와이, 지코, 송민호 등 래퍼들이 함께 만든 힙합 공연이었다.

11년간 방송되며 역사 특집을 통해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던 이 프로그램의 새로운 역사 특집이었다. 아이돌 스타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을 꼬집으며,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들을 감쌌던 프로그램. 미국까지 건너가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의 발자취를 돌아봤다. 정부가 거액을 쏟아부어도 이뤄내지 못했을 우리 민족의 자긍심과 역사 의식 고취에 힘써왔던 <무한도전>의 위대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예능에서 공익을 강조하다보면 자칫 계몽적이고 고루할 수 있는데 언제나 촌스럽지 않았다. 재미와 감동, 그리고 공익성까지 놓치지 않았다. <무한도전>은 역사라는 우리가 흘려넘길 수 있는, 당장의 내 삶과 크게 연관돼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수 있지만 공동체적인 보존과 확대가 필요한 주제를 끊임 없이 건드렸다. 웬만한 역사 교과서보다 <무한도전>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이 일으키는 반향이 더 컸고, 때마다 잊지말고 기억하자는 사회적인 환기가 발생했다.

<무한도전>은 지난 8월 도산 안창호를 다뤘던 미국 특집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는 안방극장에 또 다시 역사 특집을 꺼내들었다. 우려 먹기를 극도로 경계하는 이 프로그램의 이유 있는 일탈이었다. 주기별로 비슷하지만 새롭게 변주한 특집을 내놓긴 해도 이토록 빨리 역사 특집을 다시 시작한 이유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 농단으로 대한민국이 뒤숭숭하던 시기인 지난 11월 ‘위대한 유산’이 안방극장에 문을 두드렸다.

▲ 우리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동시에 미래를 내다봤다. 주저앉는 게 아니라 역사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마주했다. 지금의 혼동을 극복할 자신감과 희망을 발견했다. ⓒ MBC

역사 강사 설민석의 강의로 시작됐다. 일단 배우자고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멤버들과 래퍼들이 힘을 합쳐 역사로 노래를 만들어 공연으로 완성했다. 애민정신이 가득했던 세종부터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온몸을 바쳤던 이순신 장군과 독립 운동가들의 큰 희생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우리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동시에 미래를 내다봤다. 주저앉는 게 아니라 역사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마주했다. 지금의 혼동을 극복할 자신감과 희망을 발견했다.

썩어빠진 지도자로 인해 고통을 겪었던 민초들, 안타깝게도 역사는 반복됐다. 그런데 쓰러질지언정 꺾이지 않았던 민초들이 우리 민족이었다. 그 큰 깨달음이 이번 '위대한 유산'에 녹아 있었다. “우리 민족이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설민석 강사의 뭉클한 외침은 배설하듯 쏟아내는 비판을 하겠다고 제작진이 역사 특집을 빨리 집어든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했다. 지금의 아수라장이 발전적인 성장의 발걸음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배양된 방송이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과 수준 높은 시민 의식, 이번에 촛불 민심이 절망 속 함께 확인한 희망이었다.  

▲ 유재석은 방송 말미 공연을 마친 후 윈스턴 처칠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명언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미래를 위해서라도 역사를 잊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역사를 잊지 않고 끊임 없이 의미 깊은 돌직구를 던지며 우리와 우리 사회를 조금씩 바꿔놓는 이 프로그램다운 마무리였다. ⓒ 방송화면 캡처

 

대미를 장식한 힙합 공연도 그랬다. 세종을 통해 현재의 고민을 해결할 지혜를 얻었고, 이순신의 결의를 되새기며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자신감을 선물 받았다. 독립운동가들의 고뇌와 희생을 떠올리며 진정한 애국을 배웠다. 무엇보다도 황광희와 개코가 만든 ‘당신의 밤’은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차용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되는 노래였다.

“비판이나 비아냥이 싫어 머뭇거리던 입가/ 뒤돌아 걸어가는 시대 뒤에 고개 숙인 내가 밉다/ 난 한국인 난 한국사람/ 근데 난 아직 두려워 촛불 위에 바람 / (중략) 오늘 밤은 어둡기에 당신이 쓴 시가 별이 돼/ 광장 위를 비추는 빛이 돼/ (중략) 내 맘도 천천히 쫓아 걸어가지 / 누구의 덕이기에 나는 내 나라와 이름으로 지금을 살아갈 수 있는지 몰라도 그대는 정정당당했던 작지만 명예로운 이 나라의 시인”

촛불 정국 속 래퍼들이 힙합 정신에 입각해 뼈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것이 사실. 결국 힙합으로 포장해 상업적인 노래만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힙합 1세대라 불리는 개코는 나라가 강탈된 시기에도 '시가 잘 쓰여 부끄럽다'는 윤동주 시인처럼 자기 반성의 가사를 내놨다. 촛불을 들고 이 나라를 걱정하고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킨 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인 국민들을 치켜세웠다. 가사 하나 하나가 지난 두 달 간의 대한민국의 기록이었다. 훗날 후대가 기억하고 역사에 남을 장면이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대중의 반응도 뜨겁다. 이 곡은 현재(1일 오전 10시 기준) 멜론, 지니, 네이버뮤직, 소리바다, 벅스, 엠넷뮤직, 몽키3 등 8개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기록 중이다. 이 곡 외에도 하하와 송민호의 ‘쏘아’, 유재석과 도끼의 ‘처럼’, 박명수와 딘딘의 ‘독도리’, 양세형과 비와이의 ‘만세’, 정준하와 지코의 ‘지칠 때면’ 등 ‘위대한 유산’ 수록곡 전곡이 음원 사이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유재석은 방송 말미 공연을 마친 후 윈스턴 처칠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명언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미래를 위해서라도 역사를 잊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역사를 잊지 않고 끊임 없이 의미 깊은 돌직구를 던지며 우리와 우리 사회를 조금씩 바꿔놓는 이 프로그램다운 마무리였다.


표재민 기자  jmpy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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