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출입기자단은 ‘간담회’를 거부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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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기의 ‘톡톡’ 미디어 수다방] 박근혜는 대체 무슨 자격으로 기자간담회를 하는가

▲ 필자는 무장해제까지 당한 출입기자단이 그나마 자존심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기자단 차원의 간담회 거부였다고 생각한다. ‘박근혜씨만이 정한 룰’을 일방적으로 따를 것을 강요하는 간담회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대국민 선언을 기자단 차원에서 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 뉴시스

(※ 필자 주 : 현재 직무정지 상태인 박근혜씨에게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박근혜씨에게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는 PD저널의 입장과는 무관한 필자 개인의 생각입니다.)

 

일방적인 변명이었다. 박근혜씨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고, 세월호 7시간 행적에 대해서도 “대통령으로서 할 것을 다했다”고 했다.

 

‘출입기자단 신년 인사회’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1일 기자간담회에서 박근혜씨는 자신의 일방적 변명만 늘어놓았다. 사전예고 없이 30여분 전에 갑자기 소집된(?) 간담회는 기자들의 노트북 반입이 금지됐고, 영상 촬영도 불허됐다. 1일 방송뉴스에서 전파를 탄 영상은 청와대가 자체적으로 촬영해서 언론사에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트북마저 거부당한 일방적인 간담회 … 기자들은 꼭 거기 있어야 했나

 

이번 간담회는 헌법재판소의 박근혜씨 탄핵심판 첫 ‘변론기일’(3일) 이틀 전에 열렸다. 간담회가 갑자기 ‘소집’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헌재 변론을 염두에 둔 일방적인 언론플레이를 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밝힌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이 같은 판단에는 나름 근거가 있다. 박근혜씨와 청와대는 기자들을 상대로 기자간담회를 요구하면서 ‘노트북 금지-촬영 불허’라는 비상식적인 요구를 했다. 기자에게 노트북과 카메라를 금지하는 것은, 좀 거칠게 말하면 경호실장에게 총기를 반납하고 대통령을 경호하라는 것과 비슷하다. 만약 상대방 국가에서 청와대에게 이 같은 요구를 한다면 이걸 받아들이겠는가.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인 박근혜씨가 언론을 상대로 직접 여론전에 나선 것 자체도 부적절했다.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인 그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30분만에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소집할 수 있는가. 더구나 박근혜씨는 각종 언론 보도를 “왜곡, 허위보도”로 규정하더니 “오보를 바탕으로 오보가 재생산되고 있어 마음이 무겁다”며 언론을 일방적으로 비난했다. 기자들 앞에서 말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오보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언제까지 박근혜씨에게 농락당할 건가

 

이건 기자간담회가 아니다. 박근혜씨와 청와대는 청와대 출입기자단을 철저히 농락했다. 기자들을 ‘무장해제’ 시킨 박근혜씨는 대다수 언론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의혹 보도를 오보로 규정했다.

 

필자가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런 질문을 했을 것 같다.

 

△무슨 근거로 언론보도를 오보라고 하는지 구체적인 사실을 제시하며 말해 달라 △노트북-카메라를 금지시킨 건, 여전히 국민과 불통하겠다는 자세로 보인다. 이걸 거면 굳이 간담회를 하는 이유가 뭐냐 △갑자기 기자들과 신년인사회를 한다고 했는데 헌재 변론기일을 염두에 둔 일방적인 언론플레이를 하겠다는 의도 아닌가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오보를 언급하며 ‘언론 탓’을 했는데,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막강한 공적조직, 이를테면 해경과 해수부 등은 물론이고 국정원의 정보망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일 ‘할일 다했다’는 식의 추상적인 얘기만 하지 말고, 정확히 시간 별로 어떻게 대책을 지시했고, 업무를 수행했다고 얘기해 달라 △대통령은 참사 당일 중대본에서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드냐’고 말했다. 그 발언은 당시 상황을 TV중계로 본 많은 국민들이 봤을 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질문이다. 대통령이 왜 그런 발언을 하게 됐는지 정확히 얘기해 달라 등등.

 

1일 간담회에서 이 같은 질문이 오갔는지 필자는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박근혜씨의 일방적인 기자간담회와 관련된 언론보도를 보면(1일 밤 9시 기준) ‘치열한 질의응답’이 오간 것 같진 않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과 관련한 의혹을 조목조목 반박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사실을 제시하지도 않고, 표현만 강하게 써가며 일방적으로 부인한 것이 어떻게 ‘조목조목 반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 필자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결론은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이번 ‘간담회’를 거부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인 필요성을 고려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박근혜씨가 대통령 직무를 정지당한 상태이긴 하지만 그의 발언이 갖는 나름의 뉴스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취재거부와 기자단 철수도 고려해야

 

하지만 이번 간담회는 박근혜씨가 자신의 일방적인 변명을 늘어놓을 거라고 충분히 예고된 상황이었다. 필자는 무장해제까지 당한 출입기자단이 그나마 자존심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기자단 차원의 간담회 거부였다고 생각한다. ‘박근혜씨만이 정한 룰’을 일방적으로 따를 것을 강요하는 간담회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대국민 선언을 기자단 차원에서 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필자가 예전에도 주장한 적이 있지만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청와대 철수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불통의 상징이 된 청와대에서 기자단 철수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청와대 기자단의 취재거부와 철수’는 더 이상 일방적인 언론플레이나 꼼수가 통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박근혜씨와 청와대에 심어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불통인 그곳’을 박차고 나오기 바란다. 이번 간담회 이후 청와대 출입기자단으로 향하는 국민의 비난 여론을 듣고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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