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공동제작, 거스를 수 없는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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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Baby on the way' 시리즈, 6개국 공동제작 과정과 의미

“엄마가 저렇게 아파할지는 전혀 몰랐어. 그래, 정말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 일어날 수 있는 일들도 미리 상상해봤는데 엄마가 이렇게 아픈 건 미처 생각 못했어”

동생이 태어나기 직전 진통으로 아파하는 엄마를 보며 타냐는 결국 병원 구석에서 혼자 눈물을 터뜨리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엄마가 동생을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동생이 태어나 함께 성장해가면서 우리 아이들은 몇 뼘이나 자라나고 있는 걸까.

지난달 말 방송한 EBS <Baby on the way 시즌2-내 동생은 0살>에서는 15분씩 6회에 걸쳐 6개국 아이들을 비춘다.(▷다시보기) 아이들은 각각 다른 환경 속에서 이제 막 태어난 동생과 함께 다양한 생각을 품고 살아간다.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가 볼 수 있는, 어린이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가 거의 없는 현실 속에서 평범한 아이들의 일상에 대해 다른 시각에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 EBS 〈Baby on the way 시즌2-내 동생은 0살〉 ⓒEBS

특히 <Baby on the way> 시리즈는 국제 공동제작을 통해 한국뿐 아니라 6개국 아이들을 보여준다. 2015년 말 방영한 시즌1 <너도 동생이 있니?>에서는 한국, 캄보디아, 싱가포르, 몽골, 미얀마, 부탄 등 아시아 6개국 아이들을, 지난해 말 시즌2에서는 이탈리아와 칠레가 합류해 한국,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칠레, 이탈리아 등 3대륙 6국가 아이들의 모습을 따라갔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삶의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어떤 다른 생각을 가지고 동생을 맞이하는지, 또 그런 와중에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예능, 드라마 등에서 국제 공동제작 사례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 공동제작 다큐멘터리 <Baby on the way>의 제작 과정과 그 의미를 살펴봤다.

연이은 밤샘작업, 의사소통 위해 상호이해 필수

<Baby on the way>는 한국방송전파진흥원(이하 KCA)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돼 제작비를 지원받아 공동제작을 시도할 수 있었다. 아시아 태평양 방송연맹(ABU)에서 어린이분과 의장을 10년 이상 역임했던 정현숙 EBS CP는 어린이 다큐멘터리가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정 CP는 기획안을 바탕으로 KCA에서 피칭을 해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될 수 있었다.

제작비를 확보한 후에는 공동제작에 참여할 국가들을 모집했다. 정 CP는 이전에도 10여년 간 아시아 여러 국가를 순회하며 어린이 프로그램과 관련한 강연을 해왔다. 이 경험들을 바탕으로 도움을 주고받을만한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선정했다.

▲ 남한길 EBS 글로벌사업부 부장이 지난해 11월 '2016 국제 공동제작 컨퍼런스'에서 EBS 〈Baby on the way〉 시리즈 공동제작에 대한 사례 발표를 하고 있다. ⓒPD저널

EBS는 교육 공영방송이기에 타방송사와 여러 가지가 다르긴 하지만 파트너 선정과정에서 경제적인 고려도 뒤따랐다. 남한길 EBS 글로벌사업부 부장은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열린 ‘2016 공동제작 국제 컨퍼런스’에서 “구체적인 차후 사업계획이 있는 게 아니더라도 공동제작으로 상호를 이해하는 것이 향후 또 다른 사업으로 이어질 기대감을 가지고 파트너를 선정한다”고 밝혔다.

이후에는 주제의식을 공유한 국가들이 각국에서 촬영할 가족과 주인공 후보를 물색하고 사전 조사하는 작업을 거쳤다. 이어 6월 초 서울에서 6개국 제작진이 모두 모여 3일 동안 집중워크샵을 통해 각국 촬영대상자를 선정하고 방향을 정했다. 각국에서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정 CP는 기본 일주일 단위로 보고를 받고 인터넷을 통해 수시로 어떤 점이 장점이고 어떤 점이 부족한지, 어떤 촬영이 더 필요한지 등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어린이들에게 꾸밈없는 모습을 얻어내기 위해 아이들과 접촉하고 자연스러운 촬영을 하는 데에만 두세달이 걸렸다.

그렇게 촬영이 끝난 후에는 100시간에 달하는 촬영본을 바탕으로 각국이 1시간 내외로 가편집을 해 한국으로 넘어왔다. 한국에서는 각국이 일주일 동안 밤을 새가며 정 CP와 각국 담당PD, 편집기사가 모여 15분 분량으로 방송을 재편집했다. 정 CP는 “벽마다 포스트잇으로 도배를 해가며 방송 골격을 다시 만들고 기승전결을 만들어 나가는 회의를 하고, 정리가 끝나면 다시 또 회의를 하고, 커트 하나하나를 두고 의견을 조율했다”고 전했다.

국가마다 이런 과정을 거쳐 6개국의 편집본이 모두 마련된 후에는 EBS에서 후반 작업에 들어갔다. 음악을 작곡해 새로 입히고, 특히 시즌2에서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표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붙이기도 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방송이기에 더빙작업에도 공을 들였다.

▲ EBS 〈Baby on the way 시즌2-내 동생은 0살〉 기자 설명회 및 시사회에서 정현숙 EBS CP가 이야기하고 있다. ⓒEBS

경제적 효과보다 무시할 수 없는 건 '문화리더십'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그럼에도 공동제작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잃는 것보다 훨씬 많다. 현실적으로 각국이 모여 투자하니 재정적적으로 큰 규모의 제작비가 확보된다. EBS의 경우 경제적 효과보다는 문화교류에 더 큰 방점을 두고 사업을 진행했지만 경제적 효과도 무시할 수는 없다. 또 공동제작에서의 우호적인 경험을 통해 차후 사업도 계속해서 쌓아갈 수 있다는 점이 큰 효과다.

공동제작을 통한 문화교류 역시 중요한 한 축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유럽과의 공동제작과 달리 상대적으로 방송환경이 한국보다 늦게 발전한 아시아 국가들과의 공동제작은 얻을 것이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공동제작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간 경험은 당장의 경제적 가치보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훨씬 더 큰 효력이 있다.

<Baby on the way> 시즌1 역시 지난 한 해 동안 ‘프리쥬네스(Prix Jeunesse:짝수해마다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국제 청소년상)’ 본선에 진출하고 재팬 프라이즈(Japan Prize:일본 NHK가 주관하는 교육 프로그램 국제상)를 수상하는 등 어린이·교육 프로그램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아왔다. 여러 자리에서 국제 대표 사례로 선정돼 정현숙 CP가 다양한 국가에서 발표를 하기도 했다. NHK로 판권 수출도 이뤄지고, 지난해 광저우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는 중국과 시즌3를 위한 MOU도 체결했다.

정 CP는 “유럽과 미국은 이미 포화상태라면 아시아는 계속 커가는 시장이다. 그 안에서 저력을 미리 닦아둘 수 있다”며 “(한국이) 문화중심체로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굉장히 중요한 토대”라고 밝혔다. 이어 정 CP는 “15년 간 이쪽에서 일하면서 (나로부터) 교육받은 사람들이 방송본부장이 되고 네트워크장이 됐다. 전혀 계획한 게 아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도 부산물"이라고 전했다.

▲ EBS 〈Baby on the way 시즌2-내 동생은 0살〉 ⓒEBS

하지만 아직 방송사 차원에서 공동제작에 주력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는 없다. EBS 역시 회사 차원에서 공동제작 사업을 독려했다기보다 정현숙 CP가 KCA 지원사업에 적극적으로 지원한 경우다. 특히 한류 열풍이 이어지고 있는 아시아 방송시장에서 프로그램 수출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함께 제작을 도모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 입장에서 공동제작으로 얻어지는 실익을 따지기 어렵고 제작 과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드라마 두 편을 공동제작한 경험이 있는 윤현기 CJ E&M 드라마PD는 ‘2016 공동제작 국제 컨퍼런스’에서 “중국대비 임금을 많이 주기도 힘들고, 여러 상황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가서 가장 힘든 건 ‘내가 왜 여기 와있나’하는 동기부여 때문”이라며 “역량보다 태도가 중요하다. 내가 왜 가는지, 뭘 할 건지, 스스로를 내가 왜 그들의 파트너가 돼야 하는지 증명하고 베트남 시장에 접근하는 게 맞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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