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PD의 고백 ⑧] 웰컴 투 구타유발자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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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PD의 고백 ⑧] 웰컴 투 구타유발자 클럽
[어느 PD의 고백 ⑧] 조성현 MBC PD의 고백
  • 조성현 MBC PD
  • 승인 2017.01.1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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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유발자의 제1조건, ‘지위고하를 막론한 모든 사람들로부터 구타를 유발할 능력을 갖출 것’.

세상에는 특별한 이유 없이 타인으로부터 구타를 유발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구타유발자라 부른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사람, 흔히 ‘조PD’라 부르는 그는 온 우주로부터 구타유발의 기운을 받은 ‘구타유발자’였다.

조PD가 특별히 기억하는 구타의 순간 BEST3

1. 초등학교 6학년, 당시 전교짱이었던 짝꿍의 ‘어깨를 주무르라’는 거듭된 요구에 끝끝내 반항하며 그것이 얼마나 비인격적 요구인지 아느냐고 대들다 구타유발. 코피가 남.

2. 중학교 3학년, 등교 시 실내화를 챙겨오지 않은 학생의 따귀를 때리는 것을 즐기는 학생주임 앞에서 양말만 신은 채로 걷다가 따귀를 한 대 맞음. ‘어머님이 빨아주신 실내화가 아직 안 말랐고, 밖에서 신던 운동화는 벗었으며, 더러워지는 건 내 발이지 학교 건물이 아닌데 내가 왜 맞아야 하느냐?’는 질문 후에 무차별 따귀 세례.

3. 고등학교 2학년 미술시간, 그림을 다 그린 후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데 그걸 본 선생님의 ‘이게 끝이냐’는 질문에 ‘내가 보기엔 분명히 다 그린 그림이다’고 입장을 밝힘. 캔버스로 맞기 시작해, 캔버스가 찢어지는 순간까지 구타당함.

구타 회피, 이렇게만 하세요 - 구타 회피의 3대 원칙

앞선 각 사례를 통해 도출해낼 수 있는 구타 회피의 3대 원칙이 있다.

1. 힘 있는 자의 어떠한 요구 –비록 그것이 비상식적일지라도– 앞에서 입을 다물고,
2. 권력을 쥔 자에게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을 던지지 않으며,
3. 실권을 쥔 사람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면 내 의견 따위는 버리고 힘 있는 자를 따른다.

하지만 문제는 구타 유발자들에게 이런 구타 회피 방법은 습득이 너무 힘든 일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구타유발자로 살아왔어도 그는 운좋게, 정말 운좋게 MBC 시사교양PD가 됐다. 당시의 MBC에는 ‘노조에 가입할 건지’, ‘노무현과 박정희를 비교하라’ 같은, 면접관의 심정적 구타를 유발할만한 질문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입사였을 거다.

▲ 2013년에는 그는 과거 형제복지원의 원장이었던 박인근이라는 사람의 뒤를 캐러 갔으나 촬영 도중 아들에게 들키게 됐다. 이후, ‘우리 아빠는 인권 없나’는 소리와 함께 또 다시 구타를 유발했다. 그리고 그 쪽팔린 순간이 소속사인 MBC도 아닌 SBS를 통해 방송됐다. ⓒSBS 화면캡처

입사 후 벌어진 구타의 순간 BEST3

남들이 다 인정해주는 직장에서 그럴싸한 ‘PD’라는 직함을 달게 됐으니, 구타를 유발하며 살았던 과거는 이제 일단락될 거라 생각하며 행복해한 시간도 잠시, 조PD는 곧 회사원으로서의 첫 구타의 기억을 남기게 된다. 2009년 5월 23일, 봉하마을에서였다.

방송을 마친 바로 다음날, 토요일이었다. 조연출에게 거의 6개월만에 주어진 금쪽같은 주말 이틀간의 휴일에 즐거워하며 신촌으로 가는 길, 회사로부터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에 그는 곧장 봉하마을로 향해야 했다. 그리고 PD 선배가 시키는대로 조문객들을 6mm 카메라로 찍고 있던 그 때, 카메라를 노려보던 한 남자가 다가와 주먹을 날렸다. 피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너무 돌발적인 상황이었다.

그날 저녁, 슬픔에 잠겨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수많은 조문객들과 달리, 그는 멀찍이 서서 금쪽같은 휴가가 사라진 게 서글퍼 한 방울, 영문도 모른 채 맞은 자신의 신세가 서글퍼 한 방울, 그리고 대한민국 대표 구타유발자의 죽음에 자신이 쥔 카메라가 한 몫을 했음에 또 다시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한 번 시작되고 나면 졸업하기 전까지 멈추지 않는 게 ‘구타’라는 놈의 속성임을 잘 알았던 조PD, 결국 그는 파업이 시작된 MBC를 피해 뉴스타파라는 작은 인터넷 매체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한 번 시작된 구타유발의 흐름은 되돌릴 수 없었다.

2012년 11월, 조PD는 아침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가 뉴스타파 때문에 근무하던 건물 같은 층에 찾아온 대선후보가 있으니, 건물을 떠나기 전에 빨리 MBC 방문진 이사에 대한 압력설에 대한 질문을 던지라는 지시였다. 별 생각 없이 해당 대선후보의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다, 나오는 길에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에게 돌아온 건 어디선가 몰려나온 경호원들에 의한 감금과 폭행이었다. 이렇게 찍소리 한 번 못하고 맞다니. 구타유발자 인생 35년에 처음 있는 쪽팔림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지나 그 대선후보는 대통령이 됐다.

2013년에는 그는 과거 형제복지원의 원장이었던 박인근이라는 사람의 뒤를 캐러 갔으나 촬영 도중 아들에게 들키게 됐다. 이후, ‘우리 아빠는 인권 없나’는 소리와 함께 또 다시 구타를 유발했다. 그리고 그 쪽팔린 순간이 소속사인 MBC도 아닌 SBS를 통해 방송됐다. 두 번 쪽팔린 순간이었다.

그 외에도 때로는 법무부 장관 집 앞에서, 때로는 공항 출국장 앞에서. 여기저기서 참 많이도 맞고 살았다. 이정도면 맞으려고 내가 태어났나 자괴감 들고 괴롭기까지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새로운 MBC, 구타가 사라지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기적처럼 구타가 사라졌다. 뉴스타파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MBC로 돌아온 그 때부터였다. 파업을 마무리한 MBC는 진정 구타유발자의 천국이었다. 더 이상 구타를 유발할만한 아이템을 다뤄야 할 일도 없었고, 오히려 구타유발 아이템은 알아서 제거해주는 선배다운 사람들이 관리자로 나타났다.

반면 여전히 구타 회피의 3대 원칙에 익숙해지지 못한 선배들은 여기저기로 쫓겨나게 됐다.

말로만 투쟁하고, 뒤에서만 투사처럼 구는 PD들이 새로운 MBC의 대세로 자리잡아가던 그 순간에도 끝내 영악해지지 못하고 자신이 말한 만큼 행동해야만 했던 선배들. 조PD는 자신보다 높은 구타유발능력치를 지닌 그들을 보며, 자신은 그 정도의 중증은 아님을 감사해했다. 최소한 그 선배들처럼 쫓겨나진 않아야 할 것 아닌가. 지켜야할 가정이 있고, 아내가 생긴 상황에서 그들을 먹여 살릴 의무를 외면하는 게 더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하며.

그런데 그 때부터였다. 조PD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던 순간이.

하루는 상위 구타유발자이자 쫓겨난 최승호라는 선배에게 물었다. ‘아들은 뭘 하고 싶어하느냐’고. 그 선배가 대답했다. ‘PD가 되고 싶다는데?’ 같은 날, 아내와 치맥을 시켜놓고 언론인이 아닌 시청자가 되어 TV를 보던 조PD는 아내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오빠도 JTBC로 이직하면 안 돼?’

그 순간 조PD는 구타보다 더 쪽팔리고 아픈 것이 세상에 존재함을 알게 됐다.

왜 피켓을 드는가? 왜 또 다시 구타를 유발하는가?

구타유발자 조PD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라고 기억하는 때가 있다. 앞에서 말한 고2 미술수업 구타사건 당시, 미술선생으로부터 이미 두어 대 구타당한 후였다. 이미 극도의 공포감이 자리잡은 교실에서 미술선생이 조PD 바로 옆에 앉아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네가 보기에도 이게 다 그린 그림처럼 보이냐?’

친구의 대답은 ‘다 그렸는데요.’였다. 그 둘은 정신없이 맞았지만, 그 후로 절친 하나씩을 얻게 됐다.

조PD는 바로 얼마 전,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왜 그 때 그렇게 대답했냐?’ 친구가 대답했다.

‘다 그린 그림이었잖아.’

▲ 그가 아는 한 가장 ‘사전적 보수주의자’에 가까운 선배, 이근행, 또 그가 아는 한 가장 언행이 일치하는 선배, 최승호. 그 둘이 피켓을 들고 서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MBC PD협회

세상이 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떠들썩해도 여전히 평화롭던 2016년 연말의 MBC, 조PD는 회사 로비를 지나가다 낯익은 얼굴들을 보게 됐다. 그가 아는 한 가장 ‘사전적 보수주의자’에 가까운 선배, 이근행, 또 그가 아는 한 가장 언행이 일치하는 선배, 최승호. 그 둘이 피켓을 들고 서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얼마나 더 맞아야 멈출는지, 그들은 오늘도 구타를 유발하러 나와 있었다.

부끄러웠다. 그라고 답을 몰라 지금껏 입 다물었겠는가? 이제 와 마치 행동하는 양심인 양 나서는 게 남들 눈에 예뻐보일 거라 생각했겠는가. 하지만 확실한 건 이제는 조PD가 ‘다 그린 그림인데요.’ 하고 대답할 차례라는 점이었다. 구타유발자는 결국 맞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고, 맞는 순간 가장 살아있음을 느끼는 법이다. 그래서 조PD는 뒤늦게 피켓을 들었다. 또 한 명의 구타유발자 추가다.

언론인의 제1조건, ‘지위고하를 막론한 모든 사람들로부터 구타를 유발할 능력을 갖출 것’

▲ 구타유발자는 결국 맞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고, 맞는 순간 가장 살아있음을 느끼는 법이다. 그래서 조PD는 뒤늦게 피켓을 들었다. ⓒMBC PD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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