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엄성섭‧유아름의 뉴스를 쏘다>(이하 ‘뉴스를 쏘다’)에서 패널로 참여한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이화여자대학교(이하 이대)의 기숙사 신축 건과 관련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특혜를 줬다’고 주장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 민원이 제기된 가운데, 의견진술을 위해 방심위에 출석한 TV조선 관계자가 ‘조 대표는 합리적 근거가 없이는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해 방심위에서 잡음이 일었다.
방심위는 11일 오후 방송심의소위원회(이하 방송소위)를 열고 ‘뉴스를 쏘다’의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14조(객관성) 위반 여부를 심의했다. 제작진 의견진술 청취 후 심의를 진행했으나, 프로그램에 대한 법정제재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지난 해 11월 18일 방송된 ‘뉴스를 쏘다’에 출연한 조 대표는 ‘이대 기숙사 신축에 관련해 특혜가 있다’는 내용으로 대담하던 중, 그 특혜의 주체가 박 시장이라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이 방송에서 “지난 10여 년간 이대 권력을 소위 진보 또는 좌파 쪽에 있던 분이 잡았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최순실과 (이대가 연관이) 그렇게 됐느냐. 의문점에 실마리가 이대 기숙사에 있다. 이대 기숙사 (자리), 거기는 절대 건축 허가가 날 수 없는 곳이다. 절대 보전지역이다. 그런데 박 시장이 밑에 연구원 몇 사람 시켜서 (비오톱) 등급 하향을 해 가지고 건축 허가를 내 줬다. (그 자리는) 도심 숲이다. (기숙사 지으려고) 나무 1200그루 잘랐다. 축구장 3개 정도 면적이다” 등의 발언을 하면서 박 시장의 지시로 (이대가) 산림청에서 산지 전용(산지의 용도를 바꾸는 것) 허가도 받지 않고 불법적으로 건축 허가를 받았고 이 때문에 감사원의 감사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비오톱-특정한 식물과 동물이 하나의 생활 공동체를 이루어 지표상에서 다른 곳과 명확히 구분되는 생물서식지. 이대 기숙사가 지어진 위치인 ‘북아현숲’은 기존에 절대보전지역에 해당하는 비오톱 1등급이었다가 2등급으로 하향 조정된 뒤, 기숙사 신축이 진행됐다.)
그러면서 조 대표는 “지금부터 말하는 것은 설(추론)”이라고 하면서 “어떤 이유에 의해서 기숙사 문제를 가지고 여론이나 공권력이 (박 시장을) 조여 오니까, 거기에 탈출구를 만들기 위해 생각하고 있다가, 최순실을 통해 ‘어떻게 하면 박근혜 정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차에 이런 사건 일어난 것 아니냐”는 발언까지 했다. 방심위는 이런 조 대표의 발언이 이대 기숙사와 관련한 사실을 왜곡하고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고 심의를 진행했다.
방송소위에 의견진술자로 참석한 손형기 TV조선 전문위원(보도본부 시사제작에디터)는 “‘박근혜 정권이나 청와대와 전혀 결이 다른 최경희 전 이대 총장이나 이대 지도부가 어떻게 정유라 사건에 연루됐을까’에 대해 주목하다가, 감사원이나 산림청의 많은 시정 권고에도 불구하고 불법으로 이대 기숙사가 신축된 시기가 정유라의 이대 특혜 입학 시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는 걸 알게 됐다”며 “TV조선은 취재‧보도를 함에 있어서 ‘팩트’와 함께 어떤 추론이나 합리적 의심에 근거해서 지금과 같은 국정 농단을 밝혀냈는데, 조 대표의 이런 발언도 그 추론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TV조선에서 조갑제 선배를 모시고 가장 많은 방송을 한 사람인데, 그 양반은 절대 ‘팩트’나 합리적 근거가 없이는 이야기하지 않는 분”이라며 “조갑제 선배는 광주항쟁(5.18 광주 민주화 운동 지칭) 북한군 개입설이나 박 시장의 아들 박주신 병역 논쟁 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다가 외톨이가 되신 분”이라고 주장했다.
TV조선 제작진의 이와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방심위원들은 조 대표의 방송 중 발언에 대해 “추론이 너무 황당하다(김성묵 소위원장)”, “명확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장낙인 상임위원)”, “추론 근거가 객관성 측면에서 미흡한 건 사실(하남신 심의위원)”이라고 하며 반박했다.
특히 야권 추천의 윤훈열 심의위원은 ‘단순히 조 대표가 이대 기숙사 의혹에 문제 제기를 했다는 것만으로 TV조선 제작진이 방심위에 출석하게 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윤 위원은 “의견진술자는 ‘이게(문제제기를 한 게) 왜 문제가 되냐’고 하지만, (의견진술자가) 심의 자리에 나온 이유가 좌파에 대해 비판을 하고 우측을 강화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며 “‘게이트 키퍼(Gate Keeper)’로서의 방송의 기능을 생각할 때 만약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관련 의혹을 충분히 파헤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혹‧추론‧설만 가지고 방송하며 부추기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가지고 뭔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게 잘못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야권 추천인 장 상임위원은 방송에서 조 대표가 언급한 이대 기숙사 신축 관련 의혹 중 몇 가지 부분에 대해 반박하기도 했다.
해당 방송에서 조 대표는 ‘박 시장이 밑에 연구원 몇 사람 시켜서 (비오톱) 등급 하향을 해 가지고 건축 허가를 내 줬다’고 발언했다. 11일 방송소위에 나온 TV조선 손 전문위원도 “(박 시장이) 비오톱 조정해주니 서대문구청에서 공사 허가를 내 준 것 아니냐”며 “2014년 7~8월에 이에 대해 (서대문구) 주민들이 항의하고, 산림청에서 권고도 내려오고 했는데 그 시기가 정유라가 (특혜 입학 문제로) 이대 왔다 갔다 한 시기”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장 위원은 “방송에서 조 대표는 서대문구청 이야기는 안 하고 ‘박원순 밑에 연구원’ 이 얘기만 했는데, 이 말 그대로 하면 박 시장이 건축 허가를 내 준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며 “감사원에서도 2015년 7월, 주민단체가 제기한 특혜 시비에 대해 ‘대학생의 주거문제 해소를 위해 공익적으로 필요한 사업’이라고 했고, (비오톱 하향 조정에 대해서도) ‘부당하지 않다’고 했으며 (다만) ‘서대문구는 산지전용허가기준에 부합하는 지 여부를 검토했어야 된다’면서 (서대문구에) ‘주의’ 처분을 내렸다. (방송에서 조 대표가) 비오톱 1등급에서 2등급으로 하향 조정한 건 서울시고, 서대문구에서 건축 허가 내 줬다고 말씀하셔야지 중간에서 (서대문구 이야기를) 쏙 빼 버리면 어떡하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TV조선 손 위원이 “서대문구가 자의적으로 1200그루의 나무를 자르도록 허가 낼 수 있었겠나. 서울시가 (비오톱) 하향 조정한 것도 최 전 총장이 서울시 환경자문위(※최 전 총장이 2013년 7월부터 서울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것을 지칭한 것으로 추정)에 있고, 박 시장과 결의 비슷하게 했다고 의심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본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잠시 설전이 벌어졌다.
시기 부분에 관해서도 TV조선과 방심위원 사이에 의견 차가 있었다.
TV조선 손 위원이 계속해서 ‘정유라 씨의 이대 특혜 입학 시기와 이대 기숙사 신축 관련 특혜가 있었던 시기가 일치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자 장 위원은 “박 시장이 서울시에서 비오톱 내려 준 시기가 언제냐”고 질문했다. 이에 손 위원으로부터 “2013년 5월”이라는 답변이 돌아오자 장 위원이 “(정유라 특혜입학 시기와) 1년 이상 차이가 난다. 그 시점이 맞다고 보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조갑제 방심위 안건 총 7건…가중 제재해야 VS 개인의 잘못을 왜 방송에 가중하나” 방심위 의견 차
이날 방송소위에서 방심위원들이 일관되게 해당 방송 중 나온 조 대표의 발언의 부적절성을 지적했지만, 법정 제재 여부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야권 추천의 두 위원(장낙인‧윤훈열 위원)은 TV조선의 프로그램이나 조 대표의 발언이 자주 방심위 안건으로 상정된다는 점을 들어 법정제재를 위한 의견진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위원은 “TV조선, 조갑제 씨 그동안 심의 많이 했지만 상당 부분 행정지도로 합의가 됐고, 지금까지의 심의 기준을 봤을 때 (이번 방송도) 행정지도를 줘도 될 만한 사안인 건 인정한다”면서도 “누적된 게 좀 있고 경종을 울린다는 차원에서 (방심위) 합의로 법정제재하면 어떨까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 동안 조 대표와 관련해 방심위에 상정된 안건은 통상 7건에 달한다. 11일 방송소위에서도 의견진술이 진행된 TV조선 <엄성섭‧유아름의 뉴스를 쏘다> 11월 18일 방송분 이외에, 신규 심의 안건으로 같은 프로그램의 12월 2일 방송분이 상정됐다. 조 대표가 박 대통령 비판여론과 수사 관련해 ‘박정희, 육영수 여사의 따님이면 과오가 있어도 봐 줘야 하는 것 아니냐’ 등의 발언을 한 <엄성섭‧유아름의 뉴스를 쏘다> 12월 2일 방송분 역시 의견진술이 결정됐다. 다만 7개의 안건이 모두 같은 프로그램과 관련된 것은 아니었으며, 조 대표가 출연한 방송 채널도 채널 A, TV조선 등으로 다양하다.
반면 여권 추천의 김성묵 소위원장과 하남신 심의위원은 ‘행정지도 선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 위원은 “의견진술자가 이야기한 대로 서울시의 사전 조치로 봐서는 여러 가지 전개 과정에서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토론 프로그램에 논객이 나와서 자기의 생각을 설명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객관적이지 않고 명확한 ‘팩트’에 근거하지 않은 점은 아쉽고 그런 과정에서 박 시장에 대해 일부 시청자가 오해할 만한 내용이 포함된 것도 사실이나, 토론 프로그램이라는 점과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언론사 간 경쟁보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행정지도 정도로 방송사에 우리(방심위)의 의지를 전달할 수 있지 않겠냐”며 행정지도인 ‘권고’를 주장했다.
김 소위원장 역시 “바람직하지 않은 추론으로 토론하며 TV조선이라는 채널에서 그걸 방송한 건 분명히 잘못이지만, 조갑제 씨의 문제들이 TV조선의 다른 프로그램에도 있으니 중과되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같은 프로그램에서 연거푸 (문제가) 됐다면 그럴 수(법정제재를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우리가 개인에 대해 심의를 하는 것이 아니므로, 다음에 다시 한 번 이 프로그램이 (방심위에) 온다고 하면 충분한 합의를 하는 게 어떠냐”며 행정지도인 ‘권고’를 주장했다.
갑론을박이 오갔지만, TV조선 <엄성섭‧유아름의 뉴스를 쏘다> 11월 18일 방송분에 대한 법정제재 여부는 결국 미정이다. 이날 방송소위에 참석한 4인 위원 중 야권 추천 위원 2인은 법정제재, 여권 추천 위원은 행정지도를 고수하며 마지막까지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당 방송에 대한 법정제재 여부는 향후 방심위 9인 모두가 참석하는 방심위 전체회의에서 결정된다.
한편, TV조선은 오는 2월 1일부터 ‘옴부즈맨 제도’를 신설한다고 11일 방송소위에서 밝혔다. 지상파 심의 담당자 출신의 인사 4명으로 구성된 일종의 모니터링 위원회를 구성해 생방송 부조정실에 이들이 배석하게끔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방송되는 시사 프로그램을 실시간 모니터링해서 연출자에게 곧바로 ‘피드백’을 내려보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방심위는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만들고 더욱 절제된 방송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해 줘 다행이고 감사하다”며 “앞으로는 품격있고, 맥락있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