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정상화 요구에 대한 '바른 정당'의 입장을 밝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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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 원내대표님께 드리는 공개서한

▲ 지난 달 21일 국회 앞에서 열린 언론장악방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 ⓒ 전국언론노동조합

주호영 원내대표님과 ‘바른 정당’의 성공과 번창을 기원합니다.

 

저희 한국PD연합회는 KBS · MBC · SBS · EBS 등 대표 채널은 물론, 케이블TV와 지역방송사를 포함한 우리나라 대다수 방송사의 3,000여 PD들을 대표하는 단체입니다. 1987년 6월항쟁 직후 결성된 뒤 <추적60분>, <PD수첩>,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비롯, 국민의 사랑을 받는 다양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PD들은 일관되게 저희 협회를 통해 방송의 독립과 표현의 자유를 추구해 왔습니다. 우리 PD들은 이 나라의 건강한 방송문화 발전에 큰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방송에 반영하고 권력의 일탈을 감시 · 비판함으로써 건강한 여론형성과 민주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우리 PD들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헌정유린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이라는 불행한 사태와 함께 지난해가 저물었습니다. 새해,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등 모든 분야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습니다. 이 상황에서 ‘바른 정당’이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실현하겠다고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한 결단이었습니다. 따뜻하고 정직한 보수 세력의 출현을 고대해 온 많은 국민들은 ‘바른 정당’이 이러한 열망에 부응하리라 믿으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새해 첫날, ‘바른 정당’(당시 개혁보수신당)은 ‘진짜 보수’와 ‘가짜 보수’의 차잇점 10가지를 정리하고, ‘진짜 보수’를 지향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명시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청와대와 기존 새누리당을 ‘가짜 보수’로 규정하고, 이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진짜 보수’를 지향하는 걸로 개혁보수신당의 정체성을 밝힌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선언에 따르면, ‘가짜 보수’는 국민을 ‘통치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반면, ‘진짜 보수’는 국민을 ‘자유와 민주의 주체’로 본다고 했습니다. 언론과 관련, ‘가짜 보수’는 ‘일방적 홍보 대상, 중요한 질문엔 묵묵부답’인 반면, ‘진짜 보수’는 ‘건전한 여론의 전달자, 진솔한 공감과 소통의 창구’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바른 정당’이 표방한 ‘진짜 보수’의 언론관은 한국PD연합회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언론의 모습과 그다지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우리 PD들은 ‘바른 정당’이 내세운 ‘진짜 보수’의 가치에 박수를 보내고자 합니다.

 

그러나 지난 주 ‘바른 정당’은 이 개혁 선언의 진정성과 실현 의지를 의심케 할 만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뼈를 깎는 쇄신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바른 정당’이 겉과 속이 다른 행보로 의구심을 일으킨다면 이는 국민들의 불행일 뿐 아니라 ‘바른 정당’에게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작년 7월 발의된 방송법 등 공영방송 관련 4대법 개정안은 저희 PD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을 장악한 지난 4년 동안, PD들의 취재 제작 활동이 크게 위축되어 시청자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것은 저희 PD들에게 쓰라린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일은 한시도 미룰 수 없는 중차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국회의원 과반수인 162명이 발의한 이 법안이 통과되기는 커녕, 국회 미방위에서 6개월이 넘도록 이렇다 할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이 사태에 대해 기존 여야는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미뤄 왔는데, 이 또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야당은 새누리당 소속인 신상진 미방위원장과 박대출 간사가 논의를 가로막았다며 여당 탓을 했고, 여당은 여타 법안을 우선 처리하고 방송관련법은 별도로 논의하자는 제안을 야당이 거부했다고 변명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굳이 여기서 시비를 따지자는 건 아닙니다. 무척 늦은 감이 있습니다만 국회에서 곧 이와 관련한 공청회가 열리게 된 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바른 정당’은 기존 여야의 입장에서 자유로운 입장이므로 이 사안에 대해 합리적인 해결 방향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주 원내대표께서는 지난 3일,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이 ‘공영언론의 지배구조 개선,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 보장 등 제도 마련’을 요구했을 때 “언론의 본래 기능이 그것”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방송관련법 개정안에 대해 동의하는지 확실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정치권력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언론이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신 걸로 보도됐습니다. 주 원내대표께서는 “당 지도부가 결정하고 의원들이 토론도 없이 따라가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이 사안에 대해 강력한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은 것은 유감이지만, 평소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소신을 밝힌 걸로 이해했고, 공영방송의 독립이 필요하다는 개인적 입장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이종구 ‘바른 정당’ 정책위의장은 “이 사안은 상당히 정치적인 이슈로, 노사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며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은 주 원내대표가 밝히신 입장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정치에서 방송이 독립해야 한다는 게 개정안의 목적인데 오히려 ‘정치적인 이슈’로 간주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됐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주 원내대표의 의견은 무엇인지요? 이종구 정책위원장의 발언이 ‘바른 정당’의 공식입장인지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국민 앞에 ‘바른 정당’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천명하고 국민의 신뢰를 구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한겨레신문의 새해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최순실 국정농단 이후 시급한 과제 중 ‘언론 개혁’을 세 번째로 꼽았습니다. 이는 검찰 개혁과 관료 개혁에 이어 15.9%로, 재벌 개혁의 11.7%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국민의 여론이 이러한데도 ‘바른 정당’이 이 문제를 ‘신중히 하겠다’는 것은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CBS 노컷뉴스는 박근혜 정부의 언론통제는 박정희 유신체제 때와 똑같다고 지적했습니다. 언론을 마치 ‘관보’처럼 취급한다는 것이지요. “공영방송 인사와 제작에 관여하지 않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公約)은, KBS · MBC 등 공영방송에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장을 임명하면서 공약(空約)이 돼 버렸습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하필이면 (대통령이) KBS를 봤네. 한 번만 도와주시오”라며 공영방송에 ‘보도지침’까지 내린 정황이 공개됐습니다. ‘정윤회 문건’을 취재하던 언론사에 대해서는 “선제적으로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청와대가 지시한 정황이 故 김영한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통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언론의 견제 · 비판 기능을 마비시킨 결과 상당수 언론은 권력에 ‘알아서 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권언유착과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던 MBC 언론인 6명은 여전히 해직 상태고, YTN 해직 언론인 3명 역시 3000일째 현업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박근혜 정부 4년 만에 180개국 중 70위로 역대 최하위로 떨어졌습니다.

 

언론의 추락은 민주주의의 죽음이며, 이는 곧 국민의 불행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국민 여론은 언론개혁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국민의 염원을 외면하면서 ‘바른’ 정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만에 하나, ‘바른 정당’이 박근혜 정부의 언론 농단을 계속 이어 나갈 방침이라면, ‘도로 새누리당’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른 정당’의 일부 의원들은 박근혜 정부에게 장악된 KBS와 MBC를 그대로 둔 채 대선을 치르는 게 유리하지 않을까,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받고 있습니다. 독립된 공영방송 체제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면 대선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크며, KBS와 MBC가 편파 방송으로 지원해 줘야 이길 수 있다는 식으로 주판알을 튕긴다면 큰 오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KBS와 MBC는 박근혜 정부에 장악된 뒤 시청자의 신뢰를 잃고 매체력이 급속히 추락했고, 두 방송사가 대선에 미칠 영향력은 과거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는 게 방송계의 중론입니다. KBS의 경우, 일베의 글을 퍼날러 물의를 빚은 차기환 KBS 이사 - 이 사람은 MBC 이사도 했지요 - 는 최순실 재판에서 문고리 3인방의 한 명인 정호성의 변론을 맡고 있는 모습이 TV 화면에 나와서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MBC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청와대가 낙점한 이사진과 경영진의 전횡은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와 닮은꼴의 퇴행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대통령의 지지율과 MBC 뉴스의 시청률이 4%로 같이 간다는 말들이 시중에 회자되고 있겠습니까?

 

이석수 감찰관 녹취 파일을 석연치 않은 경로로 입수 · 보도해 청와대 하수인 노릇을 자처한 MBC는 지금도 태블릿 PC를 검증해야 한다는 박근혜 · 최순실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MBC는 지난 대선에서 야권 대선후보를 공산주의자로 매도하여 명예훼손으로 벌금형을 받는 극우 인사 고영주가 이사장으로 버젓이 앉아 있습니다. 드라마에 비선실세 아들이 오디션도 건너뛰고 변칙으로 캐스팅되는 일마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방송계의 정유라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보이는 전형적인 부패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런 KBS · MBC의 도움을 바라며 대선에 임하는 게 ‘바른 정당’의 이미지와 어울릴까요?

 

지금 ‘바른 정당’은 언론개혁이라는 최소한의 국민적 요구 앞에서 망설일 정도로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말로만 개혁을 앞세웠을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개혁안을 내놓은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소심한 자세로 어떻게 수권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건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과거, 노태우 대통령은 5공화국과 거리를 두기 위해 평생 동지 전두환을 백담사로 유배 보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민자당 출신이라는 정치적 오점을 씻기 위해 전두환과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교도소로 보냈습니다. 이 정도의 결단이 없으면 과거와 결별하려는 의지를 국민 앞에 입증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취한 조치였습니다. ‘바른 정당’은 KBS와 MBC를 장악하여 국정을 망친 박근혜 정부와 선을 긋고 이와 다른 개혁적인 모습을 확실히 보여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수 유권자의 신뢰를 상실한, 허울뿐인 공영방송의 도움으로 대선을 치르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방송 장악의 근시안적인 유혹에 빠질 경우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게 될 게 우려됩니다. 헌재와 특검 등 모든 일정을 감안할 때, 방송관계법 개정안의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KBS와 MBC의 현 체제에서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바른 정당’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대선을 유리하게 치르기 위해 기존 KBS와 MBC의 지배구조를 유지하려고 집착할 필요가 없는 셈입니다. 상상하기 싫으시겠지만, ‘바른 정당’이 야당이 됐을 경우를 상정해 봅시다. 공영방송 정상화 법안은 정권에 충성하는 극단적인 인물들이 KBS와 MBC를 좌우하는 것을 방지할 든든한 견제장치가 될 것입니다.

 

과거 국민들은 KBS와 MBC를 ‘고봉순’, ‘마봉춘’이라 친근하게 불렀습니다. ‘국민의 방송’ KBS와 ‘만나면 좋은 친구’ MBC는 어디로 갔습니까? 공영방송의 언론자유가 보장되어서 자유로운 권력비판이 가능했다면, 이른바 최순실 일파에 의한 국정농단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지도록 방치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공영방송이 권력의 일탈을 감시하고 경고했다면, ‘이게 나라냐’는 탄식은 최소한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때문에, 언론의 자유는 모든 자유를 가능케 하는 근본 자유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곧 열리게 될 공청회에서 ‘바른 정당’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방송관계법 개정안은 완벽하지 못할 수도 있고, 만병통치의 명약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 개정안에 전체적으로 찬성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세부 조항에 문제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견이든 보완책이든, 자신 있게 표현해 주십시오. 대안을 제시해 주십시오. 최소한 새누리당처럼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꽉 막힌 태도를 보이지는 마십시오.

 

언론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만 ‘바른 정당’이 수권정당으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는 조언을 다시 한 번 드리며, 주호영 원내대표님과 바른 정당 의원님들의 건투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2017. 1. 12

한국PD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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