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전쟁’ 3부작이 남긴 것, 좋은 아빠 DNA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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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전쟁’ 3부작이 남긴 것, 좋은 아빠 DNA는 없다
[리뷰] 개인 아닌 우리 사회의 문제...정부 보고 있나?
  • 표재민 기자
  • 승인 2017.01.16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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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답답한 현실을 타파할 의미 있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 덴마크인은 '좋은 아빠 DNA'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덴마크가 해외 주재원이 선정한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 1위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게 된 게 불과 20~30년 전부터 정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 ⓒ 방송화면 캡처

참 인정하기 싫지만, 흔히 말하는 복지 선진국은 달라도 달랐다. 육아에 대처하는 우리와 그들의 차이가 적나라하게 담겼다. ‘전투 육아’라는 씁쓸한 신조어가 공감을 살 만큼 아이 하나도 키우기 어려워 출산과 육아를 포기하는 현실적인 장벽이 있다. 개인의 무책임이나 무능력을 탓할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절벽에 매달린 듯한 절박한 부담이 모두를 짓누른다. 늘 고된 엄마와 아빠들의 애환은 우리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할 공동체 문제다.

 

지난 15일 방송된 SBS 신년 특집 다큐멘터리 <SBS 스페셜-아빠의 전쟁> 3부인 ‘잃어버린 아빠의 시간을 찾아서’는 우리와 달리 육아 휴직이라는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하고 노동만큼이나 휴식을 강조하는 스웨덴과 독일 사회를 짚어봤다.

 

SBS는 신년 특집 3부작으로 <아빠의 전쟁>을 마련, 야근에 시달리느라 가정을 돌볼 여유가 없는 아빠들의 고뇌를 다뤘다. 1부와 2부가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아빠들의 짠한 현실과 이 현실을 만든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했다면, 3부는 이 깊은 어둠의 터널을 벗어날 수 있는 방안 제시에 나섰다.

 

이 다큐멘터리는 엄마들에게 육아 부담이 가해지고, 아빠들이 가정에서 소외되는 현실이 너무나 당연한 우리 사회의 문제를 건드렸다. 시청자들의 뜨거운 공감을 일으킨 의미 있는 주제였다. 이 다큐멘터리의 결론이 담긴 3부는 복지 선진국이 가정의 육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휴식의 시간을 보장하면서도 어떻게 노동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는지에 대해 조명했다.

 

우리보다 1년에 500시간을 적게 일해도 노동 생산성이 높은 나라, 아빠와 엄마 모두 육아 휴직을 자유롭게 쓰는 나라, 육아 휴직 중인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평일 오전에 영화관에 가는 게 특별하지 않은 나라, 야근을 강요하는 실험 카메라가 펼쳐졌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나라가 <아빠의 전쟁> 제작진이 보여준 독일과 스웨덴의 부러운 사회 보장 제도였다.

 

우리의 답답한 현실을 타파할 의미 있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 스웨덴인은 '좋은 아빠 DNA'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스웨덴이 해외 주재원이 선정한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 1위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게 된 게 불과 20~30년 전부터 정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 우리나라는 45위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 스웨덴인의 아빠 역시 한국처럼 아이와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는데 사회가 팔을 걷어붙이면서 달라졌다. 정부가 1974년 세계 최초로 아빠의 강제 육아 휴직을 보장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 처음부터 좋은 아빠 DNA는 존재하지 않고 덴마크와 독일 역시 시행착오 끝에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사회를 만들었다는 것. 삶과 연관돼 있는 복지가 바로 서니 경제와 사회가 더 풍요로워졌다는 것을 우리는 <아빠의 전쟁>을 통해 또 다시 배웠다. ⓒ 방송화면 캡처

물론 처음부터 잘 운용되진 않았다. 엄마가 아빠들의 육아 휴직까지 몰아서 쓰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정부는 끊임 없이 이 제도의 도입 취지를 긍정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당근'을 제시했다. 남자가 육아 휴직을 제도에 보장된 시간만큼 소진하도록 장려금과 세금 감면 혜택을 도입했다. 남녀가 평등하게 육아 휴직을 사용하고 육아 휴직 자체가 특별하지 않은 당연한 의무라는 인식을 위한 제도 마련을 했다.

정부가 법적 장치가 완벽히 운용되도록 유인책을 마련하고 사회 문화적인 인식 변화를 이끌었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우리가 감히 도전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는 게 아니었다. 정부와 회사 그리고 개인의 노력으로 얻은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라는 이름표이기에, 지금의 ‘전투 육아’ ‘돈 버는 기계’라는 씁쓸한 신조어를 타파할 방안일 수 있다.

 

경제 위기를 겪은 한국 사회는 개인이 언제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 사회는 치열한 경쟁을 방조하고 성장이라는 미명 하에 때론 부채질한다. 육아 휴직이라는 법적인 제도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는 틀은 갖춰져 있다. 그런데 그 기본 권리를 이행하지 못한다. 행여나 조직에서 도태될까봐, 불이익을 당할까봐 눈치 보며 쓰거나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긴 노동 시간으로 인한 노동 생산성 하락, 늘 불안하고 쫓기듯 살아가느라 가정을 돌보지 못하는 엄마와 아빠들의 고통이 존재한다. 이는 출산율 저하와 경제 성장률 절벽으로 접어드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빠의 전쟁>이 3부작에 걸쳐 하고자 한 이야기 역시 같다. 아이와 놀아줄 시간이 없는 아빠들, 전투 육아를 홀로 책임지는 엄마들의 문제가 더 이상 개인이 짊어질 무게를 넘어섰다는 경고다. 흔히 우리 사회의 산재된 문제를 다룰 때 선진국과의 비교라는 어떻게 보면 쉽고 뻔한 해답 제시의 절차를 택한다.

이 다큐멘터리 역시 결국엔 해외 사례와의 비교를 들었는데 답이 보이는 결론 도출이다. 그래도 의미가 깊다. 우리 모두가 뜨끔하게 받아들여야 할 주제인 것은 변함이 없다. 처음부터 좋은 아빠 DNA는 존재하지 않고 스웨덴과 독일 역시 시행착오 끝에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사회를 만들었다는 것. 삶과 연관돼 있는 복지가 바로 서니 경제와 사회가 더 풍요로워졌다는 것을 우리는 <아빠의 전쟁>을 통해 또 다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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