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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 SBS 스페셜 ‘아빠의 전쟁’이 던지는 메시지…“아빠와 아이가 함께 할 시간을 주세요”
  • 하수영 기자
  • 승인 2017.01.1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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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부터 15일까지 3부작으로 방영된 <SBS 스페셜> 신년 대기획 3부작 ‘아빠의 전쟁’이 묻고 싶은 것은 결국 이것이었다. 대한민국 아빠들도 ‘라떼파파(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끌며 거리를 활보하는 아빠들)’가 될 순 없겠냐고. 라떼파파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는 스웨덴으로 건너간 배우 윤상현이 그 곳의 아빠들을 보며 연신 놀라는 모습을 통해 아직은 라떼파파라는 ‘이방인’을 맞이할 준비가 안 돼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 SBS 스페셜 신년대기획 '아빠의 전쟁' ⓒSBS

1부 ‘아빠, 오늘 일찍 와?’와 2부 ‘더 디너 테이블’에서 볼 수 있었던 대한민국의 야근하는 아빠들, 퇴근 후 아내와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곧장 집에 가지 않고 밖에서 맴도는 아빠들도 스웨덴 아빠들처럼 ‘아이를 돌봐야 해서 야근을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 평균 9시간의 근무를 하면서 아이와는 하루 평균 6분밖에 놀아주지 못하는 게 대한민국 아빠들의 현 주소다.

<SBS 스페셜>이 대한민국 아빠들은 스웨덴 아빠들처럼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단 전제조건이 있다. 국가가 나서줘야 한다는 것이다. 3부 ‘잃어버린 아빠의 시간을 찾아서’ 전체를 할애해서 스웨덴과 독일에서 국가의 장려와 적극적인 지원 하에 이뤄지고 있는 아빠와 엄마의 ‘공동 육아’를 보여준 게 그래서다.

물론 제도적으로는 대한민국도 스웨덴이나 독일에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법으로 아빠와 엄마 두 사람 모두에게 육아휴직 12개월을 보장하고 있고, 육아 휴직 수당도 주기로 돼 있기 때문이다.

법은 그렇지만, 실제로는 아빠와 엄마 둘 다 그 육아휴직을 온전히 다 쓸 수 없는 게 또 다른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특히 아빠의 경우에 그렇다. 육아휴직을 하고 돌아오면 소위 말해 책상이 없어져 있거나 승진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 아빠들은 육아휴직은커녕, 아내와 아이들이 “아빠는 일 중독”이라고 볼멘소리를 해도 “그래도 이렇게 해야 아이들 하고 싶은 거 하게 해 줄 수 있다”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야근을 자처하곤 한다. 혹은 이게 자의인지 타의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 SBS 스페셜 신년대기획 '아빠의 전쟁' ⓒSBS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 자녀가 더 크기 전에, 자녀의 마음속에서 아빠라는 존재가 사라져버리기 전에 방향을 모른 채 달리고 있는 ‘대한민국 아빠’라는 기차를 멈춰 세워야 한다. 그래서 <SBS 스페셜> ‘아빠의 전쟁’은 두 가지 해법을 내놨다. 아빠와 자녀가 함께 하는 ‘더 디너 테이블’ 특집과 독일‧스웨덴의 좋은 본보기를 제시한 것이다.

<SBS 스페셜>은 ‘아빠의 전쟁’ 2부에서 방영됐던 ‘더 디너 테이블’ 특집을 통해 한 달 동안 아빠들에게 ‘미션’을 부여했다. 매일 ‘칼퇴’를 해서 반드시 저녁 7시에 가족들과 식사를 함께 해야 하는 미션이다. 미션에 참여한 세 가족 중 잘 지킨 아빠도 있었고 잘 지키지 못한 아빠도 있었다. 기대했던 만큼 자녀와 아빠 간 극적인 관계 개선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래도 성과는 분명히 있었다. ‘아빠가 그렇지 뭐’ 하던 12살 슬기는 ‘더 디너 테이블’ 30회 중 총 29회 참석한 아빠를 보며 ‘아빠가 그래도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구나’하고 알게 됐고, 아빠하고는 말도 섞지 않던 19살 찬양이는 아빠와 밥을 나눠 먹는 사이로 발전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라는 말을 역으로 적용해 ‘자주 보이면 마음도 가까워 진다’는 논리를 적용한 <SBS스페셜> 제작진의 전략이 어느 정도는 먹혀 들어간 것이다.

<SBS스페셜> 3부 ‘잃어버린 아빠의 시간을 찾아서’에 나온 독일‧스웨덴의 사례는 <SBS스페셜> ‘아빠의 전쟁’ 3부작의 필살기다. 대한민국의 가정과 독일‧스웨덴 가정, 두 사례를 계속해서 대조해서 보여줌으로써 대한민국 아빠들의 ‘위기’를 부각시켰다. 특히 ‘아빠’를 제시어로 주고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더니 한국 아이들은 술, 담배, TV, 컴퓨터 등을 그린 데 반해 스웨덴의 아이들은 아빠의 웃는 얼굴과 ‘하트’가 가득한 그림을 그린 것은 한국 사회의 우울한 한 단면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흔히들 ‘탈조선(벗어날 탈(脫)+대한민국을 조롱하듯이 부르는 말 ‘조선’의 합성어)’이라고 하듯이 대한민국에서 답을 찾지 못해 독일이나 스웨덴으로 떠난 한국인 교민 가정이 방송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SBS 스페셜>이 추구한 궁극적인 답은 아니다. 결국 <SBS 스페셜>이 주장하는 궁극적인 해결책은 그런 이유로 한국을 떠나는 국민들이 없도록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열쇠를 국가(정부)가 쥐고 있다고 말한다.

스웨덴과 독일의 아빠들이 대낮부터 일찌감치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아이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하고, 심지어 학업에 매진하고 있는 아내 대신 휴직을 하고 육아를 전담하는 것은 특별히 그들에게 ‘좋은 아빠 DNA’가 있어서일까? 아니다. 그렇게 해도 불이익이 없도록 정부가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와 엄마 모두에게 보장된 육아휴직 일수를 각자 직접 사용하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소멸되게 했고, 하루에 6시간 이상 근로하는 것을 법적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스웨덴에선 야근이 ‘불법’이다.

이렇게 해서 스웨덴의 아빠들은 대한민국의 아빠들보다 연 500시간 적게 일하지만, 스웨덴의 국가경쟁력과 IT 산업 경쟁력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1인당 국민소득도 5만 달러가 넘는다. ‘불이 꺼지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은 어떤가. 아빠들이 밤낮없이 일에 매달려도 노동생산성이 OECD 34개국 중 하위권인 25위다(2015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도 2006년 처음 2만 달러를 돌파한 이후 10년 넘게 답보 상태다.

스웨덴의 아빠들은 말한다. ‘내 아버지도 지금 대한민국의 아버지들과 똑같았다’고 말이다. 30~40년에는 스웨덴의 아빠들도 일 중독에 휴일에는 자녀와 시간을 보내는 대신 부족한 수면을 채우기 바빴다. 정부의 꾸준한 노력과 기업의 협조, 국민들의 동참으로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라떼파파’들의 사회를 만들었다. 정부가 앞장 섦으로써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아빠의 전쟁’ 3부 말미에는 실적 압박에 시달리던 은행원이 과음 후 돌연 사망한 사건, 엄청난 사교육비로 인한 부담 등 결코 무관해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여러 사회 문제들이 비춰졌다. <SBS 스페셜>은 왜 대한민국은 독일이나 스웨덴 같이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사회를 이루지 못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명한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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