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와 운명의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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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와 운명의 2월
  • 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전 MBC PD)
  • 승인 2017.01.20 16: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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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에는 기자, PD, 아나운서들이 매일 피켓을 들고 안광한 사장과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 김장겸 보도본부장, 최기화 보도국장 등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

“언론사 중에 하나는 완전히 밀착돼서 해야 하니까…”

“비선실세 정윤회와 모 방송사 사장의 독대 자리에서 나온 말”이라고 TV조선이 보도했고, “모 방송사 사장은 MBC 안광한”이라고 미디어오늘이 이어받았고, “근거가 없는 터무니없는 음해로,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MBC뉴스가 주장한 내용의 일부다. 보도 전문가들의 모임인 MBC기자협회는 자사의 보도에 대해 “의혹 제기자와 당사자 양측에 대한 취재도 없이 ‘안광한 사장은 그런 일 없다’는 신(神)적 수준의 최종 심판을 내렸다”며 “안광한 사장 개인의 입장을 ‘진실’로 확정해 보도한, 중차대한 ‘공영방송 사유화’의 생산물”이므로, “2017년 1월12일 뉴스데스크 열 번째 꼭지는 기사가 아니”라고 못박았다.

직접 확인취재를 하지 않은 나로서는 TV조선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전후좌우를 살펴보면 사실이라고 보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그 동안 MBC 경영진이 보여준 극단적인 정권 편향적 보도와 MBC 구성원들에 대한 무자비한 억압, 그 배경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MBC가 비선실세 의혹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것도, 안광한 사장이 비선실세를 통해 박근혜 정권과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이었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다음은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19일 방문진 이사회에서 한 말이다.

“여러 매체가 왜곡 조작 방송을 하니 애국시민들이 미흡하지만 MBC만 보고 있다.”

이 발언은 정윤회 · 안광한 독대의 내용과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진다. 여기서 박근혜 탄핵에 반대하는 ‘애국 시민’이란, 박사모 · 일베 · 엄마부대 · 어버이연합 등 극우 집단을 가리킨다. 이들이 지지하는 ‘완전히 밀착된 방송’이 바로 MBC다.

고영주는 야권 유력 대선후보를 공산주의자로 몰아서 벌금 3,000만원 실형을 받은 인물이다. 그의 비호 아래 MBC 경영진은, 아직도 ‘대통령’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는 박근혜에게 충성을 바쳐 왔다는 게 중론이다. 자기 맘에 안 드는 문화계 인사들을 ‘빨갱이’라 부르며 지원 차단을 명령했다고 보도된, 바로 그 최고 권력자다. MBC뉴스가 애국가 시청률이라 불리는 2%대에서 맴돌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들의 진단을 보자.

“중립성을 지키는 뉴스 기조가 시청률 측면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안광한, 16일 방문진 MBC 업무보고에서)

“공정성을 잘 유지해 주기 바란다. 태극기 집회에서 MBC가 절대적으로 환영받는다. 조만간 MBC의 시청률이 확 높아질 것이다.” (고영주, 19일 방문진 이사회에서 MBC 보도본부장 김장겸에게)

‘중립성’, ‘공정성’이란 말에 뜨악해 하지 말자. MBC의 추락에 대해 눈꼽만큼의 책임감도 없다고 분개하지도 말자. 이들에게 뭘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들은, 지금은 여론이 불리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상황이 반전될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리고 있다. 새해 첫날 뜬금없는 기자 간담회를 여는 등 극우세력 결집을 통해 탄핵을 면해 보려는 박근혜와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

MBC 구성원들의 무너진 자존심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안광한과 고영주가 개과천선하여 MBC의 회복과 단합에 나설 가능성은 전혀 없다. 조능희 노조위원장(30년차 시사교양PD)이 현 경영진의 MBC 농단에 맞서 1년 가까이 나홀로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기자, PD, 아나운서들이 매일 피켓을 들고 안광한 사장과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 김장겸 보도본부장, 최기화 보도국장 등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MBC를 되살릴 길은 오직 하나, 다수 국민의 사랑을 받던 MBC를 짓밟은 이들을 몰아내고, 프로그램을 통해 거듭나는 일 뿐이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거듭나야 하며, 이는 적지 않은 시간과 인내를 요구한다. 그래서 MBC 구성원들은 호소하고 있다. “저희를 욕해 주십시오, 하지만 지켜봐 주십시오!”

방송문화진흥회는 다음달 2일, MBC 차기 사장 선임을 위한 일정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탄핵 결정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언론장악방지법이 현안이 된 상황에서 고영주의 방송문화진흥회가 MBC 사장을 선임하는 게 온당한 일일까? 공교롭게도 MBC 새 사장을 선출할 2월말에 헌재의 탄핵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대선이 예상되는 4~5월, 즉 두 달 만에 사장을 새로 뽑아야 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방문진이 2월 사장 선임을 강행할 경우, 정윤회 독대와 정우식 특혜 캐스팅 논란에 휩싸인 안광한이 연임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보도 출신 인물들은 붙들고 늘어질 비선실세나 문고리가 없으니 일단 눈앞의 고영주 이사장에게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영주 이사장은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충성해야 할지,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 사장을 뽑아야 할지, 머리가 조금 아플 것이다. 하지만, 두 달짜리 사장이든 뭐든, 대선 동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권에 유리하게 MBC뉴스를 이끌고 갈 인사를 사장으로 앉히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는 불문곡직 반기문 쪽으로 줄을 서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매사에 ‘반반’인 전직 유엔 사무총장도 그리 든든해 보이지 않아서 문제다. 그는 위안부 발언의 진의를 추궁하는 기자를 향해 “나쁜 X들”이라고 말해 천박한 언론관을 드러냈다. 그의 캠프에는 이명박 정권의 홍보수석으로 언론을 농단한 이동관이 들어와 있다. 이 사람은 자기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듯 “해직된 분들이 해직될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발언으로 공분을 사기도 했다. 고영주와 MBC 경영진의 입장에서 보면 반기문의 언론관이 맘에 들겠지만, 그리 미더운 지도자가 아니라는 점이 목에 걸릴 것이다.

어떤 경우든, 고영주와 안광한은 그 동안 변함없이 충성을 다해 온 박근혜와 운명을 함께 하는 편이 일관성 있어 보인다. 일관되게 모셔 온 ‘주군’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주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다. 법적으로 책임질 부분은 당연히 책임져야 하며, MBC 구성원을 겁박하려고 퍼부은 막대한 소송비도 정산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끝나지 않은 게 남을 것이다. 그 동안 MBC의 편향 보도로 인해 훼손된 국민의 알 권리, 또 MBC 구성원들이 겪은 고통과 정신적 상처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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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 2017-01-26 12: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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