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공동체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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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미션 임파서블? 파서블! ➅] 지역 라디오의 역할과 고민
  • 안병진 경인방송 PD
  • 승인 2017.01.23 11: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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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 라디오는 구천을 떠돌 듯 마음 둘 곳 없는 영혼들을 위한 공동체 역할을 해야 한다고. ⓒ <도깨비> 방송화면 캡처

은탁이는 왜 하필 라디오 피디가 되었을까. 은탁이가 라디오 피디로 계속 살았다면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했을까. 드라마 <도깨비>를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에 내가 살고있는 인천이 촬영지로 나온다 하길래 <도깨비>를 뒤늦게 보기 시작했다. 드라마 곳곳에서 인천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배다리의 헌책방 골목과 송림동 수도국산 달동네, 인천아트플랫폼이 있는 오래된 거리가 나오면 왠지 마음이 뿌듯했다. 송도와 청라신도시에서도 촬영을 했다고 하는데 단번에 어딘지 알아채기는 쉽지 않았다. 하긴 신도시는 어디나 다 똑같아 보인다.

 

인천에서 라디오 방송을 하다 보니, 당연히 지역 정체성을 드러내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인천은 서울과 가깝고 사투리도 없어, 인천이란 지역성을 라디오로 구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문화, 경제 등 많은 부분이 서울 생활권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인천의 현실이다.

 

하지만 음악 역사로 보면 인천은 부산과 함께 록음악의 메카였다. 한국 전쟁 이후 미군 부대가 있었던 부평의 클럽 공간과 80년대 메탈시대 관교동의 지하연습실이 이를 말해준다. 인천에서 매년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을 여는 것도 이런 뿌리가 있다. 이같은 역사를 근거로 록음악 프로그램을 기획했었다.

 

이름 하여 <인천메탈시티>! 공업도시 인천에서 음악도시 인천으로! 기획안을 올렸지만 물을 먹었다. 제목을 순화시켜 <뮤직아지트>란 타이틀로 다음 개편에 다시 올렸다. 노브레인 출신의 기타리스트 차승우(현 더 모노톤즈)와 매일 자정 ‘비방스러운’ 생방송을 기적적으로 해냈다. 록-인디팝 음악이 난무하는 마니악한 방송이었다. 지역을 너머 전국구 방송이 되길 희망했었다. 그 후에도 록음악 도시 인천의 정체성은 <도깨비 라디오>라는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당시에는 프로그램 제목이 후지다고 기획한 후배를 구박했는데, 이제와 보니 타이밍이 안맞았다.(하하)

 

한때 동인천을 앞마당처럼 활보했던 밴드 부활의 드러머 채제민 씨를 디제이로 앉혔다. 인천사람이니까 인천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 이 프로그램도 오래 가지 못해 문을 닫고 말았다. 인천 시민이라고 해서 록음악을 남들보다 더 좋아하지는 않는 것이다. 인천=록음악이라는 단순한 등식은 하나의 명분에 지나지 않았지만 뭔가 남다른 콘텐츠를 하고자 했던 지역 피디로서 해볼만한 시도였다.

 

지역 라디오가 지역을 말하고 담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왕이면 지역의 특색을 찾아 콘텐츠로 만들어야한다. 하지만 지역색이 있다고 해서 지역 청취자들이 들어주지는 않는다. 인천 사람이 록음악을 유난히 더 좋아하지는 않는 것처럼, 단지 지역 사투리를 쓴다고 지역 청취자가 더 들어주지도 않는 이치이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10년 전 쯤,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생방송을 한 적이 있었다. <인생택시>라는 프로였는데 청취층이 기사분들을 비롯한 심야노동자들이었다. 라디오판 심야식당인 것이다. 인천에는 노동자들이 많다. 인천항과 수많은 공장에서 제품들이 밤낮없이 쏟아져나온다. 밤새 일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깨어 생방송을 했다. 물론 생방송 중에 음악 틀어놓고 잔적도 꽤 있었지만, 힘들 걸 함께한다는 동지애가 제작진과 청취자 서로에게 있었다. 밤새 일하는 사람들, 또 밤새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일 년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긴 했지만, 그때 느꼈던 묘한 동지애 덕분에 라디오라는 공동체를 깨닫게 되었다. 라디오는 듣는 이들의 공동체이다. 지역 라디오는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하나의 장이 될 수 있다.

 

은탁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전생에 라디오를 했어야지 왜 이 어려운 시대에 라디오를 택했냐고. 광고 협찬 제작비 따내지 못하면 피디도 아니라고. 공유 도깨비 같은 착한 후원사는 없다고. 그래도 라디오를 하겠다면 지역 라디오는 하지 말라고. 그래도 굳이 하겠다면 지역 공동체를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라고. 이 시대 라디오는 구천을 떠돌 듯 마음 둘 곳 없는 영혼들을 위한 공동체 역할을 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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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짱이 2017-01-23 13:31:14
정말 공감하는 기사입니다! 개인적으로 공동체심을 발휘할 수 있는 공동체라디오가 오래오래 남았으면 좋겠습니다..지원도 늘어났으면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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