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이 '무한도전' 휴방을 환영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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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의 티적티적] 변화 아닌 '정상화' 주력

▲ 시즌제는 오늘날처럼 짧아진 생명주기와 콘텐츠 경쟁력이 중요해지는 오늘날 필수적인 편성 방식이다. 급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시청자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관심사를 연동하는 정서적 접근이 필요한 요즘 예능 콘텐츠에 알맞은 문법이다. ⓒ MBC

<무한도전>이 7주간의 재정비 기간에 들어갔다. 불안 요소를 다잡아 다시 내달려야 할 연초인 점, 강연과 SNS, 인터뷰는 물론 연말 시상식에서 준비기간을 원한다며 공개 발언한 점, 마지막 방송 전개상 불필요했던 ‘휴방’을 알리는 녹화분을 추가한 점 등 여러 정황상 준비된 휴식이라기보다 직전에 퍼져버린 상황처럼 보인다. 방송사 수뇌부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승인할 수밖에 없는 무력시위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난 11년간 함께해온 시청자들은 휴방 소식에 축하와 찬사 일색이다. 지금 현재 <무도> 멤버 구성과 제작 시스템으로는 과거와 같은 완성도와 신선함을 기대하기 무리임을 시청자들도 함께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작진은 이번 휴방을 휴식이나 휴가가 아니라 재정비와 정상화라고 강조한다. 유재석은 방송에서 “제작진이 생각할 여유를 갖고 많은 아이템을 개발하기 위한 7주”라고 설명했다. 김태호PD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휴식기나 방학과 같은 표현은 모두 틀리다”며 선을 긋고 “회의·준비·촬영 전반에 대한 정상화 작업을 하기 위함이다. <무도> 본연의 색깔을 찾아오겠다”고 밝혔다. 덧붙여 “지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쉬겠다는 의미 역시 맞지 않으며,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지금보다는 (휴방 기간을 갖는 게)훨씬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돌려서 말했지만 요약하면 시즌제를 위한 일종의 도발적 도전이고, 시청자들은 7주간의 행복을 기회비용으로 삼으면서 그 일탈을 응원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왜 시즌제일까. 지난해 연말 한 강연에서 김태호PD는 “2009년까지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해봤다. TV 밖에서의 도전이 필요하지만 아직 하지 못했다”고 했다. 한 회 분량을 기획하고 촬영하는 데 최소 2~3주가 걸리는 기존의 제작시스템으로 10년 이상 매주 완성도 높고 새로운 방송분을 마련하기에 한계에 봉착했다는 뜻이다. 게다가 캐릭터쇼의 밑바탕이었던 성장 스토리는 몇 년 전에 끝났다.

여기에 또 다른 예로, 2015년 혜성과 같이 등장해 새로운 방송 트렌드를 이끌었지만 지금은 3~4%대 시청률로 동시간대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마리텔>이 시사하는 바도 크다. 아무리 새롭고 화제성이 높은 포맷을 선보여도 캐스팅 이외에 다른 변화를 준비할 시간 없이는 지속가능한 재미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언니들의 슬램덩크>처럼 성장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는 예능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시즌제는 오늘날처럼 짧아진 생명주기와 콘텐츠 경쟁력이 중요해지는 오늘날 필수적인 편성 방식이다. 급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시청자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관심사를 연동하는 정서적 접근이 필요한 요즘 예능 콘텐츠에 알맞은 문법이다. 적은 비용으로 고효율을 장기간 누리고자 하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어렵게 마련한 브랜드 가치를 길게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자, 높아진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콘텐츠 제작 방식이다. 또한, 앞으로 방송사들이 주요 비즈니스 모델로 삼아야 할 콘텐츠 판매와 유통을 위한 포맷이기도 하다.

 

물론, 지상파에도 시즌제가 있다. 나영석 사단의 성공이 워낙 눈부셔서 그렇지 시즌제가 종편과 케이블의 전유물은 아니다. <1박2일> 시즌3, <해피투게더3>, <K팝스타> 등이 현재 시즌제를 표방하고 있는 예능이다. 또한 시즌2를 준비 중인 <언니들의 슬램덩크>나, 편성표에서 사리진 <진짜사나이> <미래일기> 등도 시즌제를 언급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시즌제와는 거리가 먼 단어만 빌려온 시즌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동안 쌓아온 브랜드 자체를 폐기하긴 아까우니 멤버교체나 포맷 교체, 제작진 교체 등 쇄신 수단의 명분으로 활용하거나 ‘폐지’라고 못 박는 대신 언제라도 다시 꺼낼 수 있게 슬쩍 걸쳐 놓는 대기명단 정도로 단어를 빌려 쓰는 정도다.

▲ 즉 시즌제의 당위성은 <무도>가 앞으로 돌아와 증명해야 할 숙제다. 다행스럽게도 휴방 직전에 마련한 ‘너의 이름은’ 특집이 프로그램과 캐릭터에 새로운 미션과 가능성을 남겼다는 점에서 기대는 크다. ⓒ 방송화면 캡처

<무도>의 휴방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10년간 토요일의 일상으로 자리 잡은 이 프로그램은 늘 첨단에 서서 예능의 장르적 범주와 개념과 위상을 넓히고 높여왔다. 따라서 이번 휴방은 지상파 예능이 텐트폴 프로그램에 의존하는 광고 집행과 인건비 등을 이유로 불문율로 여기는 편성정책에 대한 도전이자 실험이다. 과거 파일럿이란 단어조차 생소했지만 이제는 파일럿 없이 정규 편성되는 사례가 드문 것처럼. 무엇보다 첫발을 내딛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재정비 기간의 가치, 즉 시즌제의 당위성은 <무도>가 앞으로 돌아와 증명해야 할 숙제다. 다행스럽게도 휴방 직전에 마련한 ‘너의 이름은’ 특집이 프로그램과 캐릭터에 새로운 미션과 가능성을 남겼다는 점에서 기대는 크다.

 

시청률은 그럭저럭 나오지만 지상파 대표 예능들은 점점 더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SBS는 결국 <런닝맨>을 폐지했고, KBS2 <1박2일>은 반복되는 게임을 펼치고 있다. <무한도전>은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선 모아나처럼 멈췄던 항해를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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