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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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켄즈>를 보고

▲ <위켄즈>는 게이 코러스 지보이스(G_VOoice)의 10주년 기념 공연을 담기 위해 기획한 영화다, 실제로는 10주년이 지난 뒤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가 있는데, 덕분에 서울시 인권조례 통과를 위한 무지개 농성단과 퀴어퍼레이드에서 보수 기독교 집단의 방해와 난동,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님의 결혼식 등 굵직한 사건들이 영화에 담겼다. ⓒ <위켄즈> 스틸

다큐멘터리 영화 <위켄즈>를 보면서 나는 『노란들판의 꿈-노들의 배움・노들의 투쟁・노들의 일상』이 생각났다. 이 두 작품을 보면서 사람들이 모이고, 지지고 볶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의지하고 상처받으며 이어지는 조직에 대해 생각했다. ‘저이들은 어떻게 저 긴 세월 동안 지속될 수 있었을까?’ 아마도 『노란들판의 꿈』의 부제처럼 배움이고, 투쟁이고, 일상이었기 때문에, 다른 말로 하면 지보이스와 노들야학이 그이들의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 삶들이 부딪혀서 만들어내는 삶과 삶 사이의 파열음이고 세상과 세상 사이의 파열음 때문이지 않았을까.

<위켄즈>는 게이 코러스 지보이스(G_VOoice)의 10주년 기념 공연을 담기 위해 기획한 영화다, 실제로는 10주년이 지난 뒤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가 있는데, 덕분에 서울시 인권조례 통과를 위한 무지개 농성단과 퀴어퍼레이드에서 보수 기독교 집단의 방해와 난동,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님의 결혼식 등 굵직한 사건들이 영화에 담겼다. 한편 『노란들판의 꿈-노들의 배움・노들의 투쟁・노들의 일상』은 노들 장애인 야학의 20년 역사를 정리해서 담은 책이다. 노들야학의 활동가 홍은전은 잘 정리된 자료집 한 권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하고 20년 역사를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가 이 책을 쓰게 되었다 한다.

『노란들판의 꿈』도 그렇지만 <위켄즈>도 시종일관 유쾌하다. 존재 자체가 세상과 불화하는 삶들일 텐데. 굴곡지고 서러운 일상도 많을 테고, 폭력과 차별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일도 많겠지만 영화는 게이들의 피해자성이나 소수자성을 부각하기보다는 그들의 삶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일상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유쾌하되 슬픔과 아픔을 품은 유쾌함이고, 호탕한 웃음이되 눈가에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 웃음이다. 나약하고, 부족하고, 눈물을 참지 못하는 그런 여린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나는 이것이 아주 중요하고 퍽 괜찮은 전략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소수자들이 겪은 부당함이나 피해를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을 때보다 소수자로 살아가는 반짝거리는 모습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것이 지나치게 불화를 회피하거나 누구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착하기만한 방식이어서는 안 되겠지만, <위켄즈>는 그런 흔해빠진 함정에는 쉽게 빠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이들의 삶을 따라 웃고 우는 동안 혐오뿐만 아니라 동점심 따위도 어느 구석자리조차도 자리를 잡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대체 무엇이 그리도 신이 나는지 일요일마다 모여서 노래 연습을 하고, 서로의 목소리에 웃고, 술잔을 기울이며 울고, 시끄럽게 떠든다. 그래도 명색이 합창단인데, 영화에 잠깐씩 나온 어떤 단원들은 노래를 참 못한다. 노래 못하는 이 몇 명 있는 게 뭐 그리 대수이겠는가. <위켄즈>의 주연배우이자 지보이스의 음악감독인 재우 님의 말처럼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 그냥 묻어가면 되는 것”이 합창단의 매력이니 말이다. 사실 노래 못하는 건 아무 일도 아닐 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비교하자면.

대부분의 운동 조직은 정권의 폭압적인 탄압 혹은 있을 수 없는 내부 비리 같은 것들 때문에 무너지기보다는 조직 내부의 갈등 때문에 안에서부터 천천히 무너져 내린다. 이런 갈등은 때로는 특정한 개인의 잘못일 때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어느 한쪽만의 잘못이지는 않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응당 일어나는 의견 충돌, 질투와 시기, 무시와 서운한 감정들이 발단이 되고 감정싸움이 되었다가 얽히고설키고 결국에는 폭발할 뿐이다. 피하면 좋겠지만, 뻔히 알고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지보이스와 노들야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영화와 책에 차마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차고 넘칠 거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 고비와 고비 사이를 건너 지금까지 왔다. 그 힘은 무엇이었을까? 대부분의 조직은 사람 사이의 갈등을 회피하다 결국 걷잡을 수 없고 은폐할 수 없을 정도로 키운 뒤 폭발시킨다. 폭발의 위력은 극대화된다. 갈등에 잘 대처하기 위해 조직 내부에 갈등 상황에 대한 시스템이 갖춰지면 좋겠지만, 그 시스템도 결국 사람이 움직이는 것. 감정이 격하되어 있는 상황에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은 평소의 그것과는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한 편의 영화와 한 권의 책으로 지보이스와 노들야학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감히 진단을 해보자면 이들의 경우는 갈등이 증폭되기 위해 필요한 숨을 공간이 상대적으로 없는 거 같았다. 다른 곳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더 잦은 지지고 볶음을 겪어야 했겠지만, 대신 갈등이 커지기 전이기 때문에 그로부터 받는 상처의 크기는 갈등의 빈도에 반비례할 것이다. 갈등이 숨을 공간이 없는 까닭은, 아무래도 이 조직들이 결국 삶을 살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지보이스의 노래와 노들야학의 공부는 물론 이 세상과 싸우는 무기이고, 그들의 활동은 무기를 벼리는 일인 동시에 무기를 들고 세상과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노래, 공부 그 자가 가장 먼저의 목적이다. 투쟁을 위해 모인 게 아니라 살기 위해 모였고, 다만 삶이 투쟁을 외면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가 세상과 싸우다 보면 가끔씩 잊어버리는 것, 바로 삶이다. 일상이다. 삶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투쟁도 지속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많은 대의와 너무 많은 실무 때문에 종종 삶을 잊어버리거나 팽개치는 경우가 많다. 세상과 열심히 싸우는데 자꾸 지치기만하고, 가슴 한켠이 허전하고, 무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에게 <위켄즈>를 추천하고 싶다. 저들의 유쾌한 삶을 쫒다보면 나도 모르게 흥겨워지고, 잠시 잊고 지내던 내 삶을 찾고 싶어지게 될 테니까. 우리의 삶이 반짝반짝 빛날 때 투쟁 또한 강력해 질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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