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되감기] ‘단지 세상의 끝’, 단 하나의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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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되감기] ‘단지 세상의 끝’, 단 하나의 위안
  • 신지혜 CBS 아나운서
  • 승인 2017.01.2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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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세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에너지를 던져줄 것인지, 제한된 시간 속에서 얼마나 팽팽한 긴장을 함께 느껴야 할지, 한정된 공간에서 부풀어가는 갈등이 얼마나 커질지, 그로 인해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우리는 심호흡을 하고 걸어 들어간다. 루이와 함께 루이의 집으로. ⓒ <단지 세상의 끝> 스틸

루이. 섬세한 얼굴선과 깊은 눈을 가진 남자. 그는 지금 12년 만에 집으로 가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떤 상황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러가는 그의 마음에 설레는지 서먹한지 불편한지 불안한지 행복한지 들떠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의 집에서는 어머니와 동생 쉬잔, 형 앙투완 그리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수 카트린이 그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한껏 치장을 하고 요리를 준비했고 동생은 어릴 때 이후 보지 못한 오빠에 대한 기대감을 감출 수 없으며 형은 자기만의 삶을 위해 가족을 떠난 동생에 대한 분노를 꾹꾹 눌러 담고 있고 형수는 처음 만나는 ‘가족’인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금은 난감한 상태로 그를 기다린다.

칸의 총아라 불리는 자비에 돌란. 그가 천재인지 아니면 과대평가된 감독인지 이런저런 재능이 많고 외모까지 출중한 아이돌인지 아니면 외적 화려함 때문에 과소평가된 예술가인지 논란이 많지만 <단지 세상의 끝>은 아마도 그가 받고 있는 이러저러한 불신을 많이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연극을 원작으로 하고 있어서일까, 영화 또한 연극적인 요소들로 채워져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 때문에 <다우트>나 <미스 줄리> 혹은 <더 디너>같은 영화들이 떠오른다. 한정된 시공간에서 인물들의 대사와 표정, 몸짓과 손짓으로 하나하나 작은 것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려 정점에 이르러서는 고조된 긴장감을 한 순간에 터뜨리는 전개방식과 그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방식과 언어에 많은 것을 기대며 응축하고 터뜨리고 생략하고 설명하며 팽팽하게 관계들을 설정해가는 요소가 관객들을 불편하게 몰입시킨다.

 

처음부터 우리는 눈치 채고 있다. 영화 속 세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에너지를 던져줄 것인지, 제한된 시간 속에서 얼마나 팽팽한 긴장을 함께 느껴야 할지, 한정된 공간에서 부풀어가는 갈등이 얼마나 커질지, 그로 인해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우리는 심호흡을 하고 걸어 들어간다. 루이와 함께 루이의 집으로.

 

가족. 그것은 무엇일까. 가장 친밀하기도 하고 가장 낯설기도 하고 가장 따뜻한 품으로 안아줄 수 있지만 가장 매몰차게 대할 수 있는 구성원.

루이가 12년 만에 집으로 온 이유. 가족들은 모두 그 이유를 알고 싶었을 것이다. 어미니도 형도 동생도 형수도 모두. 하지만 그들은 결국 자기자신의 시건, 자기자신의 관점, 자기자신의 마음에 갇혀 루이를 바라보고 재단하고 자신의 마음을 투영해서 바라보다가 루이의 이야기는 하나도 듣지 못하고 루이의 마음은 하나도 받지 못한다.

루이의 가족들은 루이를 구심점으로 서로가 활이 되어 팽팽하게 당겼다 풀었다를 반복한다. 어머니와 쉬잔과 카트린이 한 현이 될 때 앙투완은 반대편에서 당긴다. 어미니와 쉬잔과 앙투완이 한 현이 될 때 카트린은 다른 방향에서 그들을 당기고 쉬잔과 앙투완과 카트린이 한 현이 되면 다른 쪽에서 어머니가 현을 당긴다. 그 구심점은 루이.

▲ 널 이애하지 못하지만 사랑한다는, 그 마음만은 누구도 빼앗지 못하리라는 어머니의 말. 그것이 루이와 우리를 향한 단 하나의 위안이 아니겠는가. ⓒ <단지 세상의 끝> 포스터

그 가운데 위치한 루이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시선과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받으면서 정작 그 자신은 끝끝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자칫 루이라는 구심점이 흔들려버리면 그 팽팽한 긴장감으로 이루어진 균형이 깨어지고 말리라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고 느끼고 있다. 아마도 루이 자신도 그것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원심력이 커질수록 구심점은 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사방에서 당기는 힘의 균형이 깨져버리면 그 때야말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루이는 집에 돌아간 이유를 말하지 못했고 하고 싶은 말을 꺼내지 못했고 자신을 둘러싸고 가족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우물쭈물 꺼내고 집어넣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했을 것이다.

 

결국 루이는 자기자신을 하나도 풀어놓지 못한 채 주섬주섬 마음을 챙겨 다시 떠나간다. 앞으로는 자주 오겠다고, 거짓말을 남긴다. 그것이 루이가 가족들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므로.

그리고 아는지 모르는지 그런 루이의 마음을 덮는 어머니의 대사가 마음에 남는다. 널 이애하지 못하지만 사랑한다는, 그 마음만은 누구도 빼앗지 못하리라는 어머니의 말. 그것이 루이와 우리를 향한 단 하나의 위안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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