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400년의 여행①]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의 만남, 최초의 오페라를 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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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2017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개막작 '오르페오전' 프레스콜에서 출연진이 열연하고 있다. ⓒ 뉴시스

연재를 시작하며

<클래식, 400년의 여행>을 2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헌재의 탄핵 판결과 벚꽃 대선을 가슴 조이며 기다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연일 쏟아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뉴스를 보느라 피곤하다는 사람도 꽤 있지요.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2월, 분노와 지친 마음을 잠깐 내려놓고 마음을 다독여 줄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 고전 시대, 낭만 시대를 거쳐 우리 시대까지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며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으로 이 힘든 시기를 헤쳐나갈 활력을 조금이나마 충전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 글을 통해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면 간접적으로나마 프로그램 제작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본문에 원어로 병기한 작곡가 이름과 곡 제목을 유투브 검색어로 활용하면 음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1. 르네상스 시대 : 클래식 음악의 태동
        
①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의 만남, 최초의 오페라를 낳다
② 중세 천년, 그레고리오 성가와 음유시인들
③ 백년전쟁에서 콘스탄티노플 함락까지
④ 마드리갈, 인간을 노래하다
⑤ 콜럼버스의 항해와 <가브리엘의 오보에>

       ①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의 만남, 최초의 오페라를 낳다

타임머신을 타고 1,600년, 르네상스의 영광이 빛나는 이탈리아 피렌체로 가 보자. 다비드상이 아르노강을 내려다보는 가운데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 시내 한가운데 우뚝 서 있고, 우피치 궁전과 베키오 궁전 앞 광장에는 화려하게 치장한 인파가 오가고 있다. 자동차, 엘리베이터, 하수처리 시설이 없다는 점을 빼면 오늘날의 피렌체 구시가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10월 6일, 메디치가의 마리아 공주와 프랑스 왕 앙리4세의 결혼식이 열리는 날이다. 피티 궁에서는 흥겨운 춤곡과 마드리갈이 펼쳐졌고, 우렁찬 팡파레에 이어 신랑과 신부가 입장했다. ‘최초의 오페라’ <에우리디체>(L’Euridice)가 막을 올렸다. 후세가 ‘클래식 음악’이라 부르게 될 서양 음악의 위대한 전통이 기지개를 켜는 순간이었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막강한 부와 권력으로 1434년부터 1737년까지 약 300년 동안 토스카나 지방을 통치했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예술을 후원했을 뿐 아니라, 상당수가 실력 있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메디치 가문의 결혼식은 그들의 경제력과 예술적 안목을 과시할 좋은 기회로, 수백명의 스탭이 준비한 희극과 음악이 무대에 오르곤 했다. <에우리디체>는 메디치 가문의 축제 음악, 그 결정판이었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이야기는 죽은 아내를 되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저승을 다녀오는 지극한 사랑을 담고 있기 때문에 메디치가의 결혼 축하 공연으로 제격이었다.

16세기 중엽부터 이탈리아의 인문학자들은 ‘아카데미’라는 문예살롱을 중심으로 문학, 연극, 철학, 과학, 음악 등 고대 그리스의 문화 전통을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피렌체의 ‘카메라타’**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정신을 되살려 새로운 음악 형식을 만들고자 했다. 그들은 “그리스 연극에는 항상 음악이 동반됐고, 연극은 음악이 있어야만 진정한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카메라타’ 멤버들은 단순한 대사의 낭송이 아니라, 시의 운율에 따라 극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음악으로 연극을 공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리누치니가 대본을 쓴 <에우리디체>에 먼저 곡을 붙이기 시작한 사람은 자코포 페리(Jacopo Peri, 1561~1633)였다. 그런데, 선배 줄리오 카치니(Giulio Caccini, 1551~1618)***는 이 오페라에 출연하는 딸과 제자들이 부를 노래를 자기가 직접 작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치니가 훌륭한 성악가이자 페리의 선배였기 때문에 그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고, 결국 <에우리디체>는 두 사람의 공동 작품이 된다.

이 오페라가 초연된 피렌체 피티 궁의 객석에는 이웃 만토바의 궁정 악장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도 앉아 있었다. 곤차가 가문이 지배하던 만토바는 피렌체를 예술의 라이벌로 여기며 경쟁심을 불태우고 있었는데, 몬테베르디는 이 날 <에우리디체>를 지켜보고 7년 뒤인 1607년, 걸작 <오르페오>(L’Orfeo)를 발표하여 피렌체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다. 몬테베르디는 곤차가 공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40명의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동원하고 부족한 성악가를 다른 도시에서 ‘빌려 오는’ 등 심혈을 기울여서 새 작품을 썼다. 저승 장면에서는 트럼본이 활약하고, 천상을 묘사할 때는 하프와 바이올린이 노래했다.

<오르페오>는 스케일만 큰 게 아니라, “음악과 시를 어떻게 잘 녹여낼 수 있을까”라는 중요한 물음에 대해 궁극적 해답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됐다. 당시 카르멜회 신부 케루비노 페라리의 평을 보자. “시의 내용은 아름답고, 그 형태는 더욱 아름다우며, 소리 내어 읽으면 가장 아름답다. 음악은 자기 몫을 다하면서도 시와 정말 잘 어울린다.” 아직 ‘오페라’라는 장르가 없었기 때문에 악보에는 ‘음악적 우화’(Fabola di Musica)라고만 써 있었다.

피렌체와 만토바,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이었던 두 도시 사이의 경쟁에서 최초의 오페라가 탄생한 것은 흥미롭다. “만토바의 오르페오는 피렌체의 에우리디체를 곁눈질 했는데, 어쨌든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토머스 포리스트 <음악의 첫날밤>, p.66)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의 탄생으로 바로크 시대가 열렸고, ‘클래식 음악’이 탄생했다고 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두 작품이 ‘최초의 오페라’의 영예로운 타이틀을 다툴 수 있었던 가장 큰 음악적 이유는 뭘까?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교회의 다성 음악이 주류였지만, 16세기말에는 가사를 명료하게 전달하고 자유로운 개성의 표현을 가능케 하는 모노디(monody)가 출현했다. 모노디는 ‘기악 반주의 단선율’이란 뜻으로, 쉽게 말해 오늘날 ‘노래’라 부르는 것의 원형이다. <에우리디체>는 이 모노디를 연결해서 만든 최초의 음악극이었고, 통주저음의 반주 위에서 리듬과 화음을 갖춘 선율을 노래하는 모노디는 바로크 오페라의 중요한 특징이 됐다.

그렇다면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중 어느 쪽을 최초의 오페라로 보는 게 옳을까? <에우리디체>가 먼저 세상에 나왔으니 당연히 ‘최초’라 하겠지만, 오늘날의 오페라에 필적할 만한 음악적 규모와 스펙터클을 지닌 <오르페오>를 최초의 오페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다.**** <에우리디체>는 특별한 고음악(ancient music) 이벤트가 아니면 잘 공연되지 않는 반면, <오르페오>는 요즘도 세계의 무대에 자주 오르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몬테베르디는 <오르페오>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이 작품은 공작 전하의 수호별 아래서 태어났습니다. 바라옵건대, 전하의 은혜에 힘입어 이 작품이 인류가 존속하는 한 계속 살아 있기를 희망합니다.” (같은 책, p.69)

* 1589년 메디치가의 돈 페르디난도 1세와 로렌의 크리스티나 공주가 결혼할 때는 화려한 막간극(Intermedio) <순례의 여인>(La Pellegrina)이 연주됐다. 마렌치오, 카치니, 바르디, 페리 등 피렌체의 ‘카메라타’에 속한 음악가들이 총출동하여 집단 창작한 이 작품은 르네상스 음악의 최종 결산이라고 할 만한 걸작이다. 르네상스 궁정의 대표적인 여흥이었던 막간극(Intermedio)은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음악 공연으로, 오페라의 발생을 예고한다. 

** 카메라타는 ‘동호회’나 ‘사교 모임’이란 뜻으로, 16세기말 피렌체 바르디 백작의 집에 모여 고대 그리스 예술의 부흥을 논의한 지식인과 예술인들의 모임이었다. 카메라타의 멤버로는 시인 리누치니와 타소, 류트 연주자이자 음악 이론가인 빈센초 갈릴레이(1527~91, 천문학자 갈릴레이의 아버지) 등이 있었다.  

*** 이 사람은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로 이름이 알려져 있지만, 이 곡은 소련의 블라디미르 바빌로프(1925~1973)가 1970년 작곡하여 옛 거장에게 경의를 표하려고 가명으로 발표한 것으로 밝혀졌다.
 
**** 1597년 피렌체에서 공연된 <다프네>가 최초의 오페라 아니냐는 의견이 있지만, 악보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논외로 한다. ‘오페라’(Opera)는 라틴어로 ‘작품’이란 뜻인 ‘오푸스’(Opus)의 복수형이다. 시와 음악을 결합시켰을 뿐 아니라 세트, 의상, 분장, 조명 등 무대미술까지 포함된 종합예술로 이해할 수 있다. 17세기부터 18세기말까지, 작곡가들은 오페라로 히트해야만 부와 명성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겨졌다. 그만큼 바로크 시대와 고전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음악 장르로 통한 게 오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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