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는 개고생, 시청자는 웃는다...안동MBC '깨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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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교육가서 처음 만난 민방의 PD 한 명이 날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놀라서 어떻게 아냐 했더니, 어느 날 자기네 팀장이 PD들을 모두 불어다 앉히곤 USB 하나를 던지며 뱉은 말이 “다들 이 프로그램 모니터 해. 야, 회당 100만 원으로 이렇게 만든단다.” ⓒ 안동MBC

“실패한 자는 핑계거리를 찾고 성공한 자는 방법을 찾는다.”

1년, 아니 6개월도 가지 못 하리라 다들 말했다. 그래서 필자는 2번의 대상포진과 방법을 맞바꾸어야 했다.

 

국내 최초로, 그것도 옹색한 지역에서 시도하는 국내 최초 다문화부부 버라이어티 퀴즈쇼 <깨소금>(안동MBC 제작, 서현PD 연출). 세상은 점점 작아지고 있으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만나는 일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농어촌 10쌍의 부부 중 4쌍은 다문화 부부라는 새로운 통계들이 이미 범람하고 있다. ‘차별, 시혜, 갈등’의 프레임을 걷고 다문화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을 짜고 싶었다. 웃고, 즐기고, 찌지고, 볶으며 하루하루를 닫는 모습은 인류 보편적 군상이다. 결국 차별도 시혜도 갈등도 필요없다. 너나 나나, 엎어 치나 메치나 그 나물에 그 밥이니 그저 쓱쓱 잘 비벼 고소한 다문화 비빔밥을 차리기 위해 깨소금이 뿌려져야겠다 싶더랬다.

 

방송의 객체였던 다문화인들을 방송의 주체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자 시작된 <깨소금>은 벌써 4년 째 깨를 볶고 있다. 어려운 문제가 나오지도 않고 ‘운칠기삼’이란 말이 깨소금에서 유래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운발이 좌지 하니 새싹 출연자들도 부담 없다. 머리보단 몸으로, 이성보단 촉으로, 개인기보단 팀워크로 맞히는 퀴즈들이 그들을 반긴다.

 

그렇게 매주 65분을 명랑 운동회 하듯 웃고 즐기다보면 어느새 하단엔 크레디트가 흘러간다. 차려낸 밥상이 쉬워보여도 차리기까지는 곳곳이 암초인 것이 함정.

 

얼마 전 교육가서 처음 만난 민방의 PD 한 명이 날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놀라서 어떻게 아냐 했더니, 어느 날 자기네 팀장이 PD들을 모두 불어다 앉히곤 USB 하나를 던지며 뱉은 말이 “다들 이 프로그램 모니터 해. 야, 회당 100만 원으로 이렇게 만든단다.”

 

결국 PD들의 원망은 고스란히 안동 깨PD의 몫이었다. 100만 원으로 참기름 짜듯 쥐어짜는 깨PD는 졸지에 전국 단위의 민폐PD로 낙인 찍혔다. 이 지면을 빌려 본의 아니게 회사로부터 유탄 맞은 곳곳의 무고한 희생자들에게 사죄의 뜻을 전한다.

그렇게 사과는 입으로만 때우고 얼른 깨소금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야겠다. 본의 아니게 대(對)PD 사과문을 하게 됐지만 어쨌든 담당PD 입장에선 작가 1명을 데리고 심히 개고생하는 프로그램이다. 회사의 지원은커녕 핍박을 견뎌내며 아등바등 잔뿌리를 뻗어간다. 프랑스 속담에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란 말이 있다. 깨소금 또한 초반의 다문화부부 대상에서 친구, 가족, 동료, 지인 등 모든 형태의 다문화 팀들이 출연 가능하게끔 확장, 진화했다. 어려운 시절, 날품 팔아 고생한 부모가 고단한 현관문턱을 넘어 세상의 무게를 집 안으로 들일 때도 내 새끼의 상장 한 장이면 가슴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조차 복귀하는 법. 깨소금은 분에 넘치게 과한 상들을 받아주며 그렇게 제작진의 어깨를 토닥였다.

▲ 단일민족의 기치를 외쳤던 대한민국은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시작했던 7년 전의 깨PD가 더 나은 다문화 사회의 도래에 상상의 일조를 했었기를 바란다. ⓒ 방송화면 캡처

100% 자발적 신청으로 이뤄지는 출연 선정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러브콜이 날아든다. ‘지역에서 시작해 지역을 뛰어 넘었으니 물 들어온 김에 노 저어볼까나?’ 회사 옥상에서 담배 연기로 구름을 만들어내며 그려봤던 상상이 결국 올 해 가을, 베트남으로 날아가게 만들었다. 호치민에서 한국의 이주 여성과 친정 부모님이 팀을 이뤄 펼쳐낼 ”깨소금 in 베트남“이 벌써부터 신짜오신짜오 한다. 사람 냄새라는 인류 보편적 감정이 베트남에서도 고소한 잔향을 남기리라 기대한다.

이미 대한민국엔 윤수일, 인순이, 박일준을 비롯해 필리핀 출신 국회의원 이자스민이 있다. 근자에 다문화 대통령이 나오지 마란 법 없다.

 

“언젠가 더 나은 세계가 도래하기 위해서는 이미 그런 세계를 상상하고 설계하기 시작한 사람이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 -에드몽 웰즈

 

단일민족의 기치를 외쳤던 대한민국은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시작했던 7년 전의 깨PD가 더 나은 다문화 사회의 도래에 상상의 일조를 했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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