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보다 여전히 ‘청소아줌마’를 고집하는 언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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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기의 ‘톡톡’ 미디어 수다방] 한국 사회에서 아줌마는 존중의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

▲ 구속된 고위공직자에게 이전 직책을 꼬박꼬박 달아주는 언론이, 아파트경비원과 택배노동자에게도 ‘정당한’ 호칭을 불러주는 언론이, 유독 중년의 ‘여성’ 청소노동자에게는 ‘청소아줌마’라는 호칭을 고집한다. 한국 사회에서 그 호칭이 존중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희박하다는 점에서 이건 명백히 차별적이다. 그 차별이 의도적·관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 뉴시스

<“염병하네” 청소아줌마 출연에 광화문 ‘들썩’> (헤럴드경제 2월5일)

<‘염병하네’ 청소아줌마 “나라꼴이 이게 뭔가…억울한 건 국민”> (뉴시스 2월4일)

<촛불집회 나온 “염병하네” 청소아줌마> (국민일보 2월4일)

 

지난 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14차 주말 촛불집회를 다룬 일부 언론의 기사 제목이다. 이날 집회는 특검에 소환되는 최순실에게 “염병하네”라고 일갈해 주목을 받았던 청소노동자 임모 씨가 참석해 화제를 모았다.

 

발언자로 마이크를 잡은 임씨는 무대에 올라 “정말 억울한 건 나와 우리 국민인데, (최씨가) 민주주의가 아니다, 억울하다고 외치는 모습을 보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화가 났다”고 당시 상황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

 

‘청소아줌마’로 비판받은 언론 … 제목에서 여전히 ‘청소아줌마’ 표기

 

많은 언론이 관련 내용을 기사로 다뤘다. 하지만 필자는 많은 기사들이 불편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상당수 언론이 여전히(!) 임씨를 제목에서 ‘청소아줌마’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줌마는 존중의 의미보다는 주로 상대방을 낮출 때 사용되곤 한다. 오죽했으면(!) 국립국어원마저 “아줌마는 상대방을 높이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종업원이나 친한 사이가 아닌 종업원에게는 사용하지 말라”고 하고 있을 정도겠는가.

 

임씨의 “염병하네”라는 발언이 처음 화제를 모았을 때 대다수 언론이 그를 ‘청소아줌마’라는 호칭으로 기사를 쓰거나 제목을 뽑았다. 하지만 호칭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자 일부 언론은 ‘청소아줌마’라는 단어 대신 ‘청소노동자’ ‘환경미화원’으로 수정했다.

 

하지만 이 뿐이었다. 일부 언론은 이후 차별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아줌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대다수 언론은 14차 촛불집회에 등장한 임씨를 ‘청소아줌마’로 표기했다. 심지어(!) 진보언론으로 평가받는 프레시안마저 <청소 아줌마 “죄 지은 사람이 잘사는 현실…염병하네!”>(2월4일)라는 제목으로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청소아줌마’라는 호칭과 관련해선 진보와 보수언론의 구분이 별 의미가 없었다는 얘기다.

 

‘청소아줌마’ 호칭 사용 … 진보와 보수언론 구분이 별 의미가 없다

 

이상한 것은 기사와 제목이 따로 논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청소노동자’ ‘환경미화원’이라고 표기했던 상당수 언론이 제목에선 ‘청소아줌마’를 고집하고 있다. 기자들이 기사본문에서 ‘청소아줌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건, 아줌마라는 호칭과 관련한 논란을 나름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왜 제목에선 여전히 ‘청소아줌마’가 등장하는 걸까. 취재기자와 편집기자 혹은 데스크의 생각과 판단이 다른 걸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엔 언론이 ‘청소아줌마’를 제목에서 고집하고 있는 데에는 나름의 의도가 있어 보인다. 한때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던 대통령과 비선실세가 일개(?) ‘청소아줌마’로부터 비판을 받는 상황을 극대화해서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얘기다.

 

소설가 한지혜 씨도 이 같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 기자와 언론사 간부라면 한번 쯤 읽어봐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청소아줌마’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그러니까 그들이 기사화하고 싶었던 내용은 청소노동자가 일갈한 내용 자체가 아니라 한 나라의 국정을 제 맘대로 주무른 소위 비선 실세가 ‘청소아줌마’에게도 욕설을 듣는, 권력의 끝과 끝에 서 있는 자들의 역설적 처지였을 것이다. 동시에 굳이 ‘아줌마’라는 표현을 썼던 것은 최순실을 ‘무식한 강남아줌마’로 규정했던 의식 그대로의 대립항이었을 것이다.” (경향신문 2월1일 한지혜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가>)

 

구속된 고위공직자에게 이전 직책을 꼬박꼬박 달아주는 언론이, 아파트경비원과 택배노동자에게도 ‘정당한’ 호칭을 불러주는 언론이, 유독 중년의 ‘여성’ 청소노동자에게는 ‘청소아줌마’라는 호칭을 고집한다. 한국 사회에서 그 호칭이 존중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희박하다는 점에서 이건 명백히 차별적이다. 그 차별이 의도적·관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청소아줌마’라는 언론의 용어선택이 “정치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차별적이었다”는 소설가 한지혜의 지적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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